‘수교 시기 투쟁’ 개혁파 승리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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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보수파 반대…“지금 안하면 한국 불만” 논리로 눌러


 두달 전, 한·중 수교가 임박했다고 《시사저널》이 보도한 그대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정상화되었다(제140호 7월2일자 ‘한·중수교 9~10월 이뤄질 듯’ 참조). 《시사저널》은 “수교와 관련된 서류 작성·술어 다듬기·수교 후의 이익관계 정리 등 기술적으로 처리할 문제만 남아 있어 양국 수교가 최종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독점 보도했었다. 당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중수교 문제를 내년으로 넘긴다는 것이었다. 김석우 외무부 아주국장도 연내 수교 가능성을 부인했기 때문에 연내 한·중수교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여겨졌다.

 그 기사에서 인용한 “중국 최고 실력자 등소평의 의중에 정통한 중국 고위층 인사”는 등소평의 장녀인 등림 여사(중국 동방 미술학회 회장)와 양상곤 국가 주석의 양아들인 나유진 유진공사 회장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중순 일본 오사카 소재 유진공사 설립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헌 아·태경제문화연구소 회장에게 양국 수교가 임박한 사실을 전했던 것이다. 윤회장은 나유진씨와 절친한 사이다.

 그런 나유진씨가 아·태경제문화연구소 초청으로 지난 17일 한국에 와서 5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당초 9월로 잡혔던 양국 수교 일정이 북한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혀 한때 연기됐다가 다시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는 곡절을 겪었다고 밝힌다. 북한과의 친선을 저버릴 수 없다는 점과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내세워 한·중수교를 끝까지 반대한 보수파가 중국 외교부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수교를 지금 안하면 한국의 불만을 살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개혁파의 목소리가 보수파의 목소리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하순 중국을 방문한 이상옥 외무장관이 어느날 새벽 이붕 총리를 극비리에 단독 면담한 이후 수교협상은 급진전됐다고 전해진다. 윤석헌 회장은 한·중수교와 관련해 한때 원칙적인 수교 방침만 올해 발표하고 협정 서명은 내년으로 넘겨 새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선물로 주자는 안이 중국 원로와 외교부 관리 사이에 논의됐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민자당 김종필 최고위원이 주최한 환영만찬에 참석한 나유진씨는 중국과 한국이 1천년 동안 폭넓게 문화교류를 해온 것이 양국 수교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은 태평양 시대의 주역이자 동반자로서 더 밝은 양국의 앞날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포항제철·현대자동차 울산공장·삼성반도체 수원공장을 방문하고, 최각규 부총리·정세영 현대 자동차 회장·강진구 삼성전자회장 등과 만났다. 그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 조사와 한·중 합작 문제의, 그리고 한국 내 여론 수렴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중국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이 봐온 것과는 다르게 중국을 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마다 경제성장을 통제하는 계획경제 정책을 추구해온 중국은 올해부터 성장률 통제 정책을 폐지함으로써 자유시장 경제원칙을 본격적으로 채택했다.

 나유진씨는 중국에서 영향력이 큰 ‘태자당’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중국 국무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했고, 일본 경도대에 8년간 유학해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중국의 신진 엘리트이다. 지난 6월 일본의 유진공사 설립 기념식에는 등소평의 장녀인 등림여사가 후견인으로 참석했고, 일본측에서는 가이후·나카소네 전 총리를 비롯한 정·재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유진공사는 형식적으로는 민간기업이지만 중국 고위층이 자기들의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상대국에 전달하기 위해 만든 창구로서 최고 실력자 등소평과 국가 주석 양상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방한은 중국 거물급 인사가 곧 한국을 방문할 것임을 예고한다. 그가 특정국을 방문한 다음에는 반드시 중국 지도층 인사의 방문이 뒤따랐다. 중국의 밀사로 일본과 교섭하고, 미수교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활약해온 그는 오는 10월 일본왕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막후에서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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