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로 ‘얻는자’와 ‘잃는자’
  • 이룡범 (경제평론가)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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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민 · 봉급소득자에 큰 타격, 부동산 소유자는 앉아서 돈벌이

금년들어 1/4분기 동안 소비자 물가가 3.2%올랐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금년도 물가상승률은 10%를 크게 넘어서게 된다. 물가상승의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플레로 ‘얻는자’와 ‘잃는자’는 누구이며 국민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는 무엇인지 구체적 예를 통해 살펴본다.

 

인플레는 소득을 재분배한다 :물가가 오르면 맨먼저 주름살이 지는 곳은 家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소득은 약 80만원이었다. 물가가 10% 오르는 경우 80만원으로 살 수 있었던 물건값이 88만원이 되므로 80만원의 소득으로는 종전보다 10% 가량 적은 양밖에는 살 수 없다. 다시말해 실질소득이 감소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물건값이 오르냐에 따라 실질소득의 감소가 소득계층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가계의 소득이 많고 적음에 따라 일상생활을 위해 구입하는 품목에도 차이가 있다. 최근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집세, 식료품등의 생필품, 공공서비스요금 등은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이들 품목에 대한 지출이 전체 가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진다.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88년도 도시가계연보’에 따르면 월간 소비지출액이 1백40만원 수준인 고소득층 가계의 경우 의 · 식 · 주 비용“(식료품+주거비+전세의 월세환산+피복 · 신발비)은 전체 소비지출의 40.6%에 불과한 반면, 월간 소비지출액이 13만원 수준인 영세소득계층의 가계는 75.4%에 달해 영세소득 가구는 고소득 가구에 비해 생필품 등의 가격상승에 따른 충격을 두배 가까이 받게 돼있다. 특히 최근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전 · 월세 가격 상승의 경우, 집세(월세+전세의 월세환산액)가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크기는, 1백40만원 지출가구에서는 2.6%에 불과한 반면 13만원 지출가구에서는 25.9%에 달하고 있다.

신문지상에서는 지난 3월 한달 동안 집세가 20~30% 오른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같은 집세인상은 고소득 가구의 실질소득에는 1% 미만의 미미한 영향밖에 주지 않으나 영세소득 가구에는 불과 한달만에 실질소득이 5~8%나 깎여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장바구니물가와 정부발표의 지수물가간에 괴리감이 크고 집세의 폭등이 사회불안으로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물가상승으로 잃게 되는 실질소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물가가 오르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임대해서 소득을 얻는 사람들은 물가상승 또는 그 이상으로 수입을 늘릴 수 있다. 반면 정액소득자인 봉급생활자, 이자 · 연금생활자의 소득은 물가상승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금은 대개 액수가 정해져 있으며 이자도 물가가 오르면 상승하게 돼 있으나 우리나라는 금리가 규제되어 있어 물가를 일부밖에 반영하지 못한다.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할 경우 임금인상에 물가상승분을 반영하도록 정해놓는 수도 있으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기업의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르면 원자재 · 인건비 등의 원가부담은 높아지나 생산된 제품의 판매가격도 높아져 수익이 호전되고 배당소득이 증가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공산품이 독과점 구조를 이루고 있어 원가상승분을 쉽게 제품가격에 전가할 수 있다. 또 토지 · 건물 · 기계등 기업의 실물자산가치를 높여 생산과 무관한 이익을 가져오기도 하며 감가상각비의 부담을 늘리기도 한다. 이같은 비생산적 수익은 기업의 경영합리화 노력을 태만하게 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인플레는 富를 재분배한다 : 물가상승은 소득의 흐름뿐만 아니라 이미 축적된 富도 재분배한다. 물가가 오르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가치가 높아지는 반면 예금 · 증권 등 금융자산의 실질가치는 낮아진다. 우리나라 토지는, 많이 가진 사람 5%가 전체 사유토지의 65%를 가지고 있다. 부동산 등 실물가격의 상승은 이처럼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불평등을 이보다 더 심화시킨다.

 한편 금융자산은 반드시 누군가의 부채이기 마련이다. 예금은 저축자의 자산이자 은행의 부채이며 채권은 소유자의 자산이자 발행기업의 부채이다. 경제 전체로 보면 기업은 대체로 차입자이며 가계는 저축자 역할을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이 안고 있던 순금융부채는 1백10조원(89년말 기준)이며 가계의 순금융자산은 80조원에 달하고 있다. 어떤 기업이 연간 1천만원의 원리금상환을 위해 10단위의 제품을 판매해야 할 경우 제품가격이 10% 오르면 9단위만으로도 이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빚을 10% 정도 탕감해준 결과가 된다. 빚을 꾸어준 사람에게도 비슷한 결과가 발생한다. 다만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의 경우는 물가상승에 따른 기업수의 증가로 가치가 상승할 수도 있고 물가가 오르면 투자자가 주식보다 실물을 선호하여 주가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식과 부동산이 투자대상으로서 강력한 대체관계를 보이고 있다.

 

인플레는 투기를 부추긴다 : 물가오름세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물건의 구입을 늘리기 때문에 저축률은 낮아진다. 또 기업들도 생산투자보다 부동산투기 등에 눈을 돌리게 된다. 특히 은행예금 금리는 10% 수준인데 물가는 연간 12%정도 오르는 상황이 되면 은행예금은 원금의 실질가치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기를 노리는 부동자금이 급격히 늘게 된다. 지난 70년대말이나 최근의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부동산에 투자된 여유자금은 부동산거래를 위해 산업생산과 관계없이 상당부분이 묶이기 때문에 생산자원이 사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저축률이 낮아지고 여유자금이 투기로 흐르게 되면 생산에 필요한 자금조달도 더욱 어려워지며 기업도 투기에 치중하여 물품의 공급능력이 위축된다. 여기에 물가 오름세 심리가 굳어지게 되면 인플레가 인플레를 동반하게 돼, 연간 물가가 몇십 몇백배씩 뛰는 超인플레(hyperinflation)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플레는 국제수지를 악화시킨다 : 물가의 상승은 수출가격을 인상시켜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제수지도 악화시킨다. 환율이 달러당 7백원이라고 가정하면 국내에서 7천원에 파는 물건은 해외에서 10달러를 받으면 된다. 국내물가가 10% 오르면 국내가격이 7천7백원이 되어 해외에서 11달러를 받아야 하므로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약화되고 수출이 어려워진다. 수입품의 가격이 10달러일 경우 국내물가가 10% 오르면 국산품 가격은 7천7백원으로 수입품 가격 7천원보다 높아, 국산품의 경쟁력은 그만큼 약화되고 수입이 늘어나게 된다. 물가의 상승은 이와같이 국제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가오름세의 피해는 경제적인 측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동산투기 등에 따른 불로소득의 증가는 근로의욕, 저축정신, 기업가정신을 좀먹게 하고, 권력과 결탁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불건전한 풍조를 만들어낸다. 물가상승은 전체적으로 보면 소득과 부를 가진자에게 유리하게 재분배하기 때문에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대립을 격화시키고 물가당국인 정부에 대한 불신도 증폭시키게 된다. 특히 물가가 올라 실질소득이 감소되는 상황인데, 세율이 일정하기 때문에 명목소득의 증가에 따라 조세부담이 늘어나는 반면, 물가불안을 우려하여 정부의 복지지출이 억제되는 경우에 국민의 불만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에도 물가불안은 정치 ·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발전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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