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메카' 꿈꾸는 이리 귀금속공단
  • 박상기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90.04.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0개 업체, 3천여명의 종업원…고품질 상품 전환 시급

호남의 관문 裡堅가 ‘보석도시'로 빛을 발하시 시작했다. 이리시와 보석공단측은 '시민의 날'인 지난 4월1일을 기점으로 열흘간 현지 공단에서 생산된 각종 귀금속과 보석을 10% 할인판매하는 행사를 갖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보석디자인작품전'을 열어 정교한 보석가공기법을 일반에 선보였다. 앞으로 이곳이 귀금속 · 보석가공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이탈리아의 밀라노 피렌체, 독일남서부의 포르쯔하임 등과 같이 '보석가공의 명소'로 자랄 것인가. 아니면, 세계의 보석이 집결되고 판매되는 런던 · 텔아비브 · 안트워프 · 홍콩처럼 '보석가공의 메카'로 빛날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고 지방의 '중소기업 공단'이 흔히 그렇듯 자금·기술 · 경영의 부실로 영락하고 말 것인가.

  이 물음에는 단순히 이리 '귀금속보석공단'의 장래만이 결부된 게 아니다. 한국 보석산업의 死活이 직결된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왜냐면 현재 80개업체, 3천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이곳의 '귀금속보석가공단지'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보석생산공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체 및 종업원수만 따진다면, 보석생산단지로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큰 규모이기도 하다.

 

순도높은 原石 구입이 관건

  그러나 76년 6월, 보석단지가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 들어왔다가 두 손 들고 그만들 중소기업이 무려 1백기업체나 된다. 이렇듯 ()입주기업의 60%가 생산을 포기하고 떠날 정도로 위험부담이 큰 데도 해마다 신규참여를 하는 업체들이 줄을 잇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보석가공업협동조합의 金鍾培전무는 그 이유를 '보석산업의 매력' 탓이라고 풀이했다.  "첫째 다른 산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외화가득률 때문입니다. 原石을 전량수입해 가공수출하는데도 평균 50% 이상의 외화 가득률을 나타냅니다. 둘째 보석가공은 기계화나 자동화가 곤란한 업종으로 고도의 수공기술이 필요한데, 우리는 본디 손기술이 뛰어난 민족 아닙니까. 소규모 소사본의 중소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희귀한 영역 이지요. "

  유엔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의 보석교역량은 연 1천억달러를 넘는 방대한 규모로 추정되고 있으며, 매년 10~20%에 이르는 높은 신장률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보석의 주요수입국인 미국 · 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은 특별한 수입규제를 하고 있지 않아 무역장벽에 부딪혀 보석 수출이 좌절될 위험은 거의없다.

  이만한 국내외 여건을 갖춘 업종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곳 공단의 89년도 수출실적은 전년도보다 18% 감소된 5천1백70만달러에 불과했다. 마치 키가 당지 않아 먹을 수 있는 '시렁위의 꿀단지'격이라고 할까. "우리나라는 금 · 자수정 · 玉 등이 극소량 생산될 뿐이어서 원석은 거의 전량 수입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영세한 중소기업의 자본과 능력으로는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곳곳의 보석광산에서 나오는 이 원석을 失占國과 경쟁하며 안정적으로 사들이기가 참 어렵습니다. 또 같은 광산에서 나오는 원석이라도 純度나 광맥의 차이가 조금씩은 있게 마련인데, 이 조그만 차이가 바로 보석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지요. 고품질의 천연원석을 비축하는 문제는 우리 보석가공업체들의 한결같은 숙원입니다 "

  협동조합의 元文奎기획실장은 이곳 업체들의 어려움을 이렇게 대변했다. 그래서 이곳 업체들은 오래전부터 당국에 연리 8%로 1백억원 정도의 '원석 비축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다이아몬드 · 에머럴드 ·루비 · 자수정 등 보석이란 硬度(단단한 정도) 높고, 광택이 아름답고, 빛의 굴절률이 크며, 산출량이 극히 적은 광물을 말한다. 또 보석은 크게 자연에서 얻은 그대로인 天然石과 인공을 가한 合成石으로 나뉜다. 당연히 보석의 가치나 가격 등은 천연석이 훨씬 높다.

  이리 보석공단은 초기에 시중에서 흔히 '인조 다이아'라 불리는 '큐빅 지르코니아' 가공을 주로 했고, 현재도 상당부분 합성석 가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인도· 태국 ·필리핀 등 뒤늦게 보석가공업에 뛰어든 개도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이태리· 서독 ·스페인 등 보석가공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합성석' 가공에서 고품질 ·고가격의 '천연석' 가공으로 주산품 전환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전환 역시 지방공단 몇몇 업체의 힘만으로 해내기에는 벅찬 과제일 것이다.

  보석가공시술은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원석을 자르고 깍고 갈아서 보석알이 영롱한 광택을 내게하는 '연마술'이며, 다른 하나는 그 보석알을 소재로 디자인해서 목걸이 ·반시 · 팔찌 등 최종상품을 만드는 '세공술'이다. "연마술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이곳 회사들이 안정되고 기능인들의 장래가 보장된다면 세계 일류의 보석가공기술자로 클 젊은이들이 많을텐데, 안타깝게도 현실정은 그렇지 못하지요."

  토파즈 · 자수정 ·황수정 · 헬렌스톤 등을 가공수출하는 우림통상의 기술자 金東洙(27)씨의 말이다. 이곳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그의 꿈은 천연석 가공분야의 '名人'이 되는 것. 그런데 일본은 물론 인도 ·스리랑카 · 말레이시아 등에서 5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이곳의 숙련기술자들을 '기술교사'로 스카우트해가는 바람에 업체들이 골머리를 않기도 한다.

 

50만원 이하 보석 현지서 면세 판매

  보석의 수출과 판매를 위해서는 연마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공술이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일류 세공인들이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로 대우받고 있다. 이들은 예술학교에서 양성되며 이들의 작품은 보석상이 아니라 예술화랑이나 미술관에서 판매된다. 무역진흥공사의 초청으로 이리를 방문한 네델란드귀금속연합회 회장 버나드 뱅크씨는 "보석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디자인"이라며 유럽의 동향을 이렇게 알려주었다.

  "보석은 이제 수십년씩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2~3년 동안 쓰고 마는 상품으로 바뀌었어요. 더구나 낮은 가격의 금속제나 인조 장신구는 한 계절용일 뿐입니다. 그래서 보석 은 1년에 2~3회씩 변하는 패션의 흐름을 쫓아가야 해요. 유럽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파리 패션의 선두주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세공기술자가 독창적인 디자인을 개발해내더라도 이를 보호 해줄 장치가 없다. 그래서 '마음 놓고' 남의 디자인을 모방 · 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브릴리안트 크리에이숀 코리아(株)의 金周景전무는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우수 디자인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리 보석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 중 50만원 이하의 보석류는 특별소비세가 면세되 어 이곳의 보석판매센터에서 판매되고 있다. 업자들은 "서민들도 결혼예물용 보석값으로 1백만원 정도는 쓰므로 면세점을 1백만원으로 상향조정해줄 것"을 요청하고있다. 88년말 공단 부근에 연건평 7백70평 규모로 개관한 '귀금속보석판매센터'는 결혼예물 · 기념 선물 ·장신구용 보석을 찾는 손님들로 생기가 돌고 있다. '보석 도시'에의 꿈. 이리 공단의 이 소망이 이뤄지려면 생산업체 · 가공기술자 · 관계당국이 함께 그 꿈을 아끼고 키워 가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