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홍역 치르는 베트남
  • 호치민시· 배양수(미원통상 개발부) ()
  • 승인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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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회사 '경제사기'파문…피해자들 4일 동안 항의시위

베트남의 호치민시에서 자본주의적 기업사기사건이 발생해 시 인민위원회청사 앞에서 4일 동안 시위가 일어나는 등 베트남이 개혁몸살을 않고 있다. '도이모이'정책에 따라 문호가 개방되고 개인기업설립이 허용되자 베트남에는 여러 개의 개인기업이 설립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회사가 문제의 '탄 후옹' 향수회사였다. 

  이 회사는 지난 86년 호치민시 제1구에 설립되어 베트남 제일의 향수회사가 되었으며, 호치민시에 21개의 대리점과 각 성에 6개의 대리점을 갖는 베트남 굴지의 개인기업이 되었다.
  이 향수회사에 의한 '돈놀이'는 88년 3월에 공포된 국무회의령제27호와 제50호에 구실을 둔 것이었다. 제27호의 내용은 "국가는 개인경제, 개체경제 단위가 인민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을 허용한다"고 되어 있으며, 제50호 4조에는 "국영사업체의 재산은 자기자본, 신용자본, 다른 자금 원천으로부터의 납입자본을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여 회사의 생산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쉽게 자기의 돈을 이제 막 시작한 개인기업에 맡기겠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 후옹 향수회사는 높은 이자를 주면서 돈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당시의 은행 이자율은 월 7% 정도였으나 탄 후옹은 무려 14~15%의 높은 이자를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갖고 몰려들었으며, 이 회사가 꼬박꼬박 고율의 이자를 지불하자 돈을 불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월 14~l5%의 이자율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으며, 급기야는 앞사람의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뒷사람의 돈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베트남당국은 89년 하반기부터 기업의 그러한 '돈놀이'가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감지하고 주시하기 시작했으며, 11월15일에는 국립은행 지시 제154호를 발표했다. "장기 서비스합작자본을 모으기 위해 단기자금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주요내용이다. 장기 생산자금을 민간으로부터 차용하는 것은 허가하나 단기 고리채활동은 금지한다는 것이다.

  베트남당국이 탄 후옹 향수회사의 '돈놀이'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이 회사의 차입금이 총생산액보다 더 큰 상황이었다. 호치민시 제1구 인민위원장 웬 후 푸옥의 발표에 따르면 차입금액은 거의 1천억동(약 2천4백만달러)에 가깝고, 매일 4백~5백명과 돈거래를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여러 국가기관과 省기관들도 관련돼 있었으며, 특히 이 회사의 부사장은 국영회사인 '남부 세제회사'의 사장을 겸직하면서 '세제회사'에 수십억동의 손해를 끼쳤다.

  감독기관인 시 제1구 인민위원회는 시 인민위에 탄 후옹의 '돈놀이'가 심상치 않음을 보고했고 시 인민위는 검찰로 하여금 내사하도록 지시했다. 내사를 마친 검찰은 지난달 13일 이 회사의 업무를 정지시키고 사장과 그의 처, 부사장, 경리책임자 등 모두 6명을 구속했다.

  그 다음날 수백명의 피해자들이 시 인민위원회 청사 앞에 몰려가 사기당한 돈을 돌려달라는 항의시위를 4일 동안 벌였다. 이와 함께 다른회사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한꺼번에 자신들의 돈을 찾아가기 시작하자 은행업무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당국이 회사의 잔여재산을 분배해줄 것을 약속함으로써 사건은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아직도 피해액이 얼마인지 파악이 안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사건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경제사기사건이며 호치민시 전체 경제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큰 규모였는데, 국외자인 필자에게는 경제개방화로 가는 한 사회주의 국가가 겪어야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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