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역사는 현실에 앞선다”
  • 금춘옥 편집위원대우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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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史新論》 신수판 펴낸 李基白교수

'…대륙에 붙어 있는 작은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는 한국의 역사는 그런 이유 때문에 대륙이나 섬나라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움직여왔다. …논농사를 하고 지방분권적 봉건제도가 없었던 한국사회는 정체성의 사회였다. …한민족은 선천적 또는 숙명적으로 당파적 민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민족적 단결도, 독립도 할 수 없는 민족이다.…불교나 유교를 비롯한 모든 중요한 사상들이 외국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한국문화는 독창성이 없는 모방의 문화다.…'

 해방이 된 지 20여년이 지난 1967년, 아직도 많은 사학자들이 일본이 식민시대에 심어줬던 이같은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韓國史新論》(일조각 펴냄)을 통해서 "일제의 식민사관은 한국사의 객관적 진리를 존중하기보다는 현실적인 목적을 위하여 역사적 진실을 외면했다"고 철저히 비판하고 나섰던 李基白교수(한림대). 매해 수차례에 걸쳐 刷를 거듭하던 이 대표적 한국사 개설서가 76년에 개정판이 나온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신수판이 발행됐다.

 "물건 한개만 발견돼도 달라지는 고고학 분야를 많이 수정했고 현재 진행중인 학문적 논쟁도 양측의 학설과 나의 학설을 모두 소개했습니다. 한편 참고서와 논문목록도 배 이상 늘렸고 낡은 논문은 다 빼냈습니다. 건강이 나빠 현대부분을 많이 늘리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두계 이병도박사의 제자이자 해방 이후 첫세대(서울대 사학과 1회 졸업생)로서 손보기 ·  한우근교수들과 함께 '한국사학계의 윗어른'인 이교수가 90년대 초반에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역사학이 학문으로서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정치적 · 사회적 목적달성을 위해 일부 사학자들, 특히 민중사학자들이 "역사를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성이 강하면 역사가 아닐 수 있고," 그러다보면 "과거사실이 필요없다고 봐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발상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교수의 우려다.

 "역사가 사학이 되려면 '잡다한 사실'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돼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학자는 시대적 · 사회적으로 얽혀 있는 ‘잡다한 사실'들을 연결해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줘야 합니다. 사학자 개인의 '시각'이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시각'에 따라 식민사관에서 간신히 벗어난 우리의 근대사학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뛰어났다고 예찬하는 민족주의사학, 역사의 주인이 민중이라는 원칙아래 기존의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민중사학, 실증적 입장에서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역사를 정의하겠다는 실증주의적 사학 등이 그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실증주의적 사학자의 한사람인 이교수에 따르면 첫번째 사고는 신화도 사실이 돼버리고 또한 과거지향적이 돼서 "잃어버린 우리의 국토를 찾자"는 등의 침략주의적 경향마저 띨 우려가 있다. 북한의 유물사학에 견줄 만한 우리의 민중사학은 사학자의 주관에 역사를 맞추려는 폐단이 있다. 이들은 신라와 이조시대가 민중의 시대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신라 때는 진골이, 이조 때는 양반이 모든 주도권을 잡고 민중은 이들의 명령대로만 했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교수의 주장이다.

 현실에서 해답을 얻고 역사를 보느냐 아니면 역사를 보고 현실에 대한 답을 찾느냐 하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학자 이교수는 단호하다. 역사가란 "처음부터 선 · 악을 평가해서는 안되고" "역사가 어떤 공 · 과를 가져왔는지 허심탄회하게 연구해서 과거사실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교훈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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