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권력승계 언제, 어떻게
  • 표완수 편집위원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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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2일로 앞당겨진 최고회의 선거와는 무관

서열2위지만 실질적으로 國事담당…군부는 장악못해

북한의 폐쇄성 스스로 인정, 개방화 추진할 수도

 북한의 '친애하는 지도자' 金正日은 곧 '위대한 수령' 金日成주석으로부터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받게 되는가. 당초 올 11월로 예상되었던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선거가 약 7개월 앞당겨져 4월22일에 실시키로 발표된 것은 과연 그것 때문인가.

 김정일의 48회 생일이었던 지난 2월16일을 전후해서 터져나오기 시작한 북한의 권력승계 관련 보도가 끊이지를 않는다. 국내외 언론들의 보도는 두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김일성주석이 4월15일 자신의 78회 생일을 맞아 아들 김정일에게 국가주석직을 넘겨주기로 결심했다고알리고 있고 다른 하나는 그것과 의견을 달리하는 보도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최고인민회의 9기 대의원선거 조기실시 발표다.

 북한의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는 헌법상 대의원선거를 4년마다 실시하도록 규정돼  있어 헌법대로라면 8기 대의원선거가 85년 11월에 있었으니 9기 대의원선거는 올 11월에 실시하는 게 당연하다. 북한의 조기 권력승계를 주장하는 측은 이같은 시기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북한 사회주의헌법 규정대로 정확히 4년만에 실시된 예는 없다. 제7기 대의원선거는 82년 2월에 실시됐으며 6기 대의원선거는 77년 11월에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조기 권력승계에 회의적인 측은 이같은 관례에 주목,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선거가 앞당겨진 것은 북한의 대내외정책과 관련있는 것이지 김정일에게 국가주석직을 이양하는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는 견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언론이 열띤 보도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로이터통신은 콜린 파월 美합참의장이 3월23일 "북한과 쿠바는 지구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국가"라고 규정하고 북한이 폐쇄사회를 개방하고 남한과 의미있고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홍콩의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는 그 하루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조기실시와 관련,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는가 하면, 다른 전문가들은 동유럽 개혁에 따라 북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해 명목상의 다당제 도입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할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양쪽 견해를 함께 보도했다. 이밖에 자신의 현주소를 평양과 북경에 두고 있는 캄보디아의 반군연합 지도자 노로돔 시아누크는 "김일성주석이 자기가 죽기 전에는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것으로 전해졌으며, 영국의 <파이낸셜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더라도 해외에서 교육받은 젊은 군관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점진적 · 단계적 개방화 양상 나타날 듯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9기 대의원선거를 앞당겨 실시키로 한 배경은 과연 무엇이며 권력승계는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인가? 국내의 권위있는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조기실시를 북한의 대내외정책 수정 가능성과 연결지어 생각한다.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과 소련의 엄청난 변혁 및 이들 국가들과 한국의 수교러시 등 전반적 국제정치적 상황이 크게 바뀌고 있는 데 따른 대응책 모색을 위한 측면과 북한의 악화된 경제사정과 관련된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江澤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3월중순 평양방문과 4월말경으로 예정돼 있는 李鵬총리의 모스크바방문은 북한의 내부적 정책수정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정책수정은 개방화 쪽으로 방향이 맞춰지겠으나 그것은 급격한 개혁이 아닌 점진적 · 단계적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는 게 공통적 지적이다. 한 · 소 관계의 급속한 접근이 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 자체에 회의를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북한문제 분석가들은 권력승계가 별 문제 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으며 권력승계에 가장 회의적인 사람들조차도 승계는 일단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권력승계가 일단 별 무리 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는 김정일 후계체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구축돼왔으며 실질적으로 국사의 많은 부분을 현재 김정일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도 이유로 지적된다.

 김정일 후계체제에 관한 논의는 그가 '당중앙'으로 불리기 시작하던 197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의 권력이 당에서 정부로 옮겨지던 시기로 그때 그는 이른바 3대혁명 소조운동과 함께 당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을 북한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 때였다. 이 대회에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당비서에 임명되었고 당중앙위원 겸 당 정치위원이 되었으며 동시에 당 군사위원회 위원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 그는 주요 당 기구에서 모두 서열 제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을 총체적으로 지도하는 당정치국 상무위원회 서열이 김일성, 김정일, 오진우(인민무력부장) 순이며 당의 최고지도 집행기관인 당 비서국의 서열에서도 김일성총비서에 이어 제2인자이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서열도 김일성, 김정일, 오진우 순이다. 이처럼 20년 가까이 후계자 구축과정이 진행돼온 마당에 김정일 외에 다른 후계자를 생각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재 김정일은 당내에서만 공식 직함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당 · 정부 양쪽에서 모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에서 탈출한 신상옥 · 최은희씨는 그를 실질적으로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권력승계가 이루어진 다음의 김정일체제의 장래에 대해서는 분석가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김정일의 현위치가 김일성의 권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김일성이 사망하면 김정일체제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김일성 이후'의 김정일체제는 일종의 집단지도체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개방 · 개혁을 추진하면서 내외의 상황압력을 수용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 다른 분석가들은 김정일 단일지도하에 개방 · 개혁을 수용하는 체제가 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김일성 이후'의 김정일체제의 성격은 어찌보면 "김정일은 어떤 성품의 사람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로 그는 1942년 2월16일 김일성과 金正淑(자료에 따라 晶淑 혹은 貞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출생연도와 출생지에는 이설이 있다. 출생연도는 42년이 아니라 41년이라는 것(중국의 인명사전)이며 출생지는 백두산의 密營, 혹은 소련의 사마르칸트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는 형(修羅)이 있었는데 어려서(5세 때) 대동강물에 빠져 사망했으며 아래로 여동생(敬姬)이 하나 있다. 그리고 김일성의 후처 金聖愛에게서 태어난 이복여동생 敬甚과 남동생 平日(35 ·駐불가리아대사) · 玄日이 있다. 전쟁중이던 52년 그는 만경대유자녀학원 인민반에 편입, 학교공부를 시작했으며 그후 남산고급중학교(1957), 김일성대학 경제학부(1960)에 입학, 수학한 것으로 알려겼다.

 

"우리는 지금 자기것만 좋다고 한다"

 김정일의 친인척과 학교 동창생들이 '김일성 이후'의 그의 권력기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후계체제가 굳어진 현재 그들은 혁명2세 및 기술관료들과 함께 이미 북한 정치권력의 각 부문에 깊숙이 포진되어 김정일 지지세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군부의 경우는 표면상으로는 김정일의 장악하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유사시 가장 가변성이 큰 요인이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정일, 그는 어떤 성품의 소유자인가.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그의 성품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들이다. 정서불안에다 모험주의적 성격이 강해서 매우 위험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 노름을 좋아하며 노름에서 지기를 특히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 열정적이나 행동이 경박하다는 것, 스피드광이어서 스포츠카운전과 스피드보트 운전을 좋아하며 젊었을때는 연애스캔들을 많이 뿌렸다는 것 등. 이같은 이야기들은 약 8년 동안 북한에 머물면서 그와 가까이 지냈던 신상옥 · 최은희씨에 의해서도 대체로 확인되고 있다.

 최씨와 신씨가 북한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흑은 가끔 전화를 걸어 유별나게 그들의 건강상태나 안부를 묻는 등 인정있는 면모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 최씨와 신씨 본인들은 "그것이 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정일은 또한 북한의 현노선의 결점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최씨와 신씨에게 했다는 말 중 몇가지를 인용해보자. "우리는 지금 딱 말하자면 울타리 안에서 자기것만 보고 자기것만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남의것과 대비 안하고 대비해볼 줄도 모르고…." "북은 (영화에서) 걸음마 떼는 유치원 아이들인데 남은 중등기술 다 손에 넣은 대학생들이다….“ ”남에서는 밥을 먹어야 되겠고 돈을 벌어야 되겠으니까 피나는 노력과 애를 쓰는 결과와 여기서는 그저 출근하고 편안하고 하니까 채찍질하는 사람 없고 하니까 실력차 난다…." 이것은 개방사회 · 경쟁사회의 장점을 그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음을 나타낸 일면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문제로 최근 끓임없이 국내외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북한은 지금 전반적으로 어려운 진통기에 처해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북한에 대한 최근의 각종 보도들은 일면 관측통들 자신의 추측과 희망이 개재된 것일 수도 있으나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처한 객관적 상황이 그런 보도를 가능케 하는 측면이 있음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외적 상황변화와 관련, 북한은 최근 조심스런 수용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보이고 있다.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 · 몽고 등 이전의 북한의 우방들과 한국이 수교하거나 수교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데 대해 북한은 이전과 같은 격렬한 비난 · 공격을 삼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9기 대의원선거 조기실시와 관계없이 어쨋건 지금 김정일체제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체계와 관련, 美하와이대학의 북한문제 권위자 徐大肅교수는 다음과 같은 희망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김정일이 정권을 잡고난 후에는 북한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자유롭고 개방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1세기에는 북한인민들도 창문을 지금처럼 닫아놓고 입으로만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외치지 말고 활개치면서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다녀본 다음에 정말 부러운 것이 없다고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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