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인 시장’에 경제보복 날벼락
  • 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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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진출 한국기업들 ‘□父 후유증’ 심각 … 4대 교역대상국 중국에 기대


 

 8월24일 한·중수교 공동성명 서명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을 때, 대만진출업체인 (주)한국코트렐은 대만행 비자를 발급받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대만이 한국과의 단교를 통보한 마당에 비자발급이 원활이 이루어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그들의 예상이 적중했다. 주한 대만대사관 직원은 노기등등한 목소리로 비자발급이 전면 중단됐다고 말했다. 한국 외무부에 하소연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행이 청천백일기를 내린 대만대사관이 하루1시간씩이나마 비자발급을 다시 시작해 대만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한시름 놓게 됐다.

 대만정부는 한·중수교 이전부터 거류비자의 연장신청은 허가해주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중수교가 임박했음을 눈치챈 일부 종합상사 대만지사는 직원들의 거류비자 만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아직도 허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대형 건설공사 참여도 무산 가능성

 대만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의 이런 어려움은 곧 닥쳐올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지ㅣ 모른다. 대만전력공사가 건설하는 화력발전소의 전기집진기 (전기로 먼지를 걸러 주는 설비) 설치 용역을 계속 수주해온 한국 코트렐로서는 앞으로 있을 입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회사가 기획관리실의 河杜坤 차장은 “발주처가 공기업인만큼 앞으로 있을 국제입찰에서 대만정부의 정책적인 ‘방해공작’이 예상된다”고 말한다. 반한감정이 고조돼 있어 현지고용인들과 전처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걱정거리다. 대한무역진흥공사에 따르면 대만에 진출해 있는 한국업체는 모두 28개이다. 이 회사들은 주로 종합상사, 항공·해운사, 건설업체 등이다. 삼성물산은 82년에 타이베이에 대만지사를 개설했다. 鄭□崑 대만지사장은 “대만에서는 질투 섞인 반한감정이 가열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 단순한 반한감정이 아니라 질투가 섞였다는 것은 옛날 자기 조상들의 지배를 받았던 한국이 오늘날 외교적으로는 대만보다 더욱 인정받는다는 식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중수교는 이런 대만인들의 생각을 더욱 굳혀주었다는 것이다.

 미묘한 경쟁의식이야말로 그동안 한국 기업체들의 대만 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 한국 업체들은 건설공사에 입찰할 경우 반드시 현지업체를 끼고 참여해야 하며, 건설고사를 따내더라도 현지업체에 재하청을 줘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기술이전을 해주겠다는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그들과 계약을 맺을 수 없었다.

 한국 기업이 대문에서 사업을 벌이기엔 기술이 모자라기도 했다. 건설공사의 경우 특히 그랬다. 선나라인 탓에 대만의 지반은 유달리 약해 고도의 장비와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 업체 대부분은 장비와 기술력 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몇몇 건설업체는 대만에서 철수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해왔다.

 산업구조의 차이도 경제협력의 걸림돌이었다. 한국 기업이 대만에서 어떤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약을 맺을 때, 한국쪽은 계약 상대방이 수십명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는 질려버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중소기업 위주의 대만에서는 그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각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업체의 모든 사장이 계약에 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대만시장은 일본과 더불어 한국이 가장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시장으로 인식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얼마전까지 한·대만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던 것은 세계 최다의 외환을 가지고 있는 대만이 우리나라 기업에 정치적인 배려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올 2월에 徐榮擇 건설부장관이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대만을 방문한 후 건설업계에서는 8백18억달러에 달하는 18개의 대형 건설공사를 한국업체가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흘러나왔다. 대만은 올해부터 국가건설 6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총 3천3억달러에 달하는 대형 건설공사 계획을 세웠다.

 두 나라 정부가 한·중수교를 최대한 늦추는 조건으로 한국 건설업체의 대만시장 참여를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다는 것은 지난 8월22일 金樹基 주한 대만대사가 대만진출 한국기업 피해 진상조사차 찾아간  孫世一 의원(민주당)에게 한 말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앞으로 양국관계는 냉각되고, 국가건설 6개년 계획에의 한국 참여를 비롯한 모든 경제적 우대조치가 철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정부가 외교적으로 불성실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월 이래 대만대사관은 여러번 한국의 외무부 장관에게 한·중수교의 진전상황을 문의했으나 그는 완강히 부인해왔다. 그러다가 8월18일 외무부장관이 ‘중국과의 관계는 진전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 지 3일 만에 한·중수교가 확정되었음을 대사관에 통보했다”고 불평했다.

“길게 보면 단교로 인한 영향 크지 않을 것”

 대만에 진출해 있는 한국업체들에게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말 주한 대만대사관이 서울 명동에 있는 부지를 팔려고 했을 때부터였다. 중국은 면적이 3천평을 넘고 시가로 1천5백억원을 웃도는 이땅을 국교수립 이후에 물려받고자 한국정부에 부지매각을 막아줄 것을 요청해왔다. 한국정부는 중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매각계획을 백지화 시켰고, 이 문제는 한국과 대만 두 나라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됐다. 이 사실이 대만에서 알려지면서 대만인들은 사석에서 한국기업가들에게 늘 “한국 친구는 좋아하지만, 한국정부는 싫어한다”는 말을 해왔다고 한다.

 대만에 진출해 있는 한국업체들은 대만의 6개년 계획에 한국 건설업체가 참여하는 길은 완전히 봉쇄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 외에도 대만이 구상중인 ‘상징적인 보복조치’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무역진흥공사 대북무역관과 삼성물산 대만지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매년 30%씩 쿼터를 늘리기로 약속했던 한국으로부터의 자동차 수입이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작년 대만에 1억1천만달러 상당의 자동차를 수출했고, 올 상반기 수출도 9천2백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5%가 증가했다.

 대만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적용해왔던 우혜관세(우대관세)를 폐지하고 일반 관세를 적용할 가능성 또한 크다. 지난 8월20일 대만 전국공업협회는 관련업계에 피해를 주고 있는 20여개 한국상품에 대해 반덤핑 제소·수입량 제한·추가관세 부담 등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중수교와 한·대만단교로 한국경제가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생상기지 및 시장이라는 측면에서 대만과는 비교할 수 정도로 큰 중국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만이 한국의 8대 교역상대국이라면 중국은 4대 교역 상대국이다. 현재, 중국에 대한 투자액은 대만에 대한 투자에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크다.(도표 참고)

 중국과의 교역액은 지난 1년간 1백50% 증가했다. 교역량 가운데서 홍콩을 거쳐 반입되거나 반출되는 간접교역량은 매년 줄어들어 작년말 기준으로 40%에 불과하다. 대 중국 무역수지는 올해부터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서 이익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기업은 아직 드물지만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은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한 미발표 설문조사 결과 이들의 만족도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진출한 다른 기업들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金時中 연구위원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의 앞날은 대단히 낙관적”이라고 말한다. 실리적인 면만 따지자면 대만과의 경제협력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만과의 경제협력도 머지않아 재개될 것이다. 한국정부는 최고 수준의 민간협의기구를 대만에 설치하려고 노력중이다. 대만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은 이 기구를 통해 민간차원의 협상이 진전되면서 경협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석곤 삼성물산 대만지사장은 “단기간의 영향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오래된 거래선과의 관계는 이번 일로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으니까 길게 보면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중견 무역업체인 맨밴코리아의 朴容□ 사장은 실리에 밝은 중국인 (본토인과 대만인을 모두 합쳐)과 ‘장사’를 하면서 한국이 중효한 점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주로 대만을 상대로 오랫동안 무역업을 해와 대만사정에 정통하다. “중국과 대만은 서로 없어서는 안될 실용적인 관계이며, 두 나라의 관계도 어차피 곧 정상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최고실력자인 鄧小平과 대만총통인 李登□가 같은 화남출신인 점을 서로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듯 중국인들도 같은 민족이라는 감정이 드세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인들 전체가 한국이 대만에 한 일을 기억할 것이다.”

 물론 한·중수교에 관해 한국정부로부터 한마디 통보도 못받은 대만의 한국 기업들도 ‘그 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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