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감당 벅찬 ‘사퇴종용’
  • 박준웅 편집위원대우 ()
  • 승인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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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선거법 위반” 성토하며 정치문제화

“軍생활 35년과 공직생활의 전부를 걸고 나의 명예와 지지자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자신이 비운 자리를 자신이 메우기 위해 출마를 선언했던 鄭鎬溶후보가 자신의 명예는 물론 지지자들의 자존심까지도 포기하고 나섰다. 

  24일 밤 청와대에서 盧泰愚대통령으로부터 사퇴종용을 받았다고 공개한 鄭씨는 26일 오후 "선거가 과열되어 대구사회가 분열되고 친구들이 반목하는 것을 걱정하면서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인의 자살소동까지 빚으면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어온 정씨

는 결국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외압'에 의해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국민을 당혹과 충격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그의 출마의 변은 이러했다 "국민의 주권행사로 뽑은 국민의 대표를 정치게임의 희생물로 삼을 수는 없다. 우리가 좋아서 국회로 보낸 정호용이를 우리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의사당으로부터 물러나게 한 정치행태는 우리들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이 상처를 우리 스스로 어루만지고 치유해야만 한다. 아울러 비정하기만 한 이 땅의 정치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순진한 사람이 당하기만하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선거구민들의 자존심에 더욱 큰 상처를 내고 비정하기만 한 정치판의 단면을 국민들에게 재삼 확인시켜준 셈이 됐다.

  정씨에 대한 사퇴압력은 집요하면서도 냉혹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친인척과 측근은 물론 여권의 실력자들이 총동원되어 설득과 회유와 압력을 계속한 사실이 정씨와 부인金淑煥씨의 입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정씨는 "목숨을 걸고 선거를 치러낼 것이다. 나와 집사람 단 두표가 나오더라도 끝까지 선거를 치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굳은 결의를 거듭 밝혔다. 이처럼 완강한 자세에 여권이 손을 들자 노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던 것 같다.

  대구 서갑 보선이 거대여당인 民自黨은 물론 나라의 운명까지 걸리기라도 한 듯 건곤일척의 대회전으로까지 확대되고 증폭된 까닭은 어디에 있었던가.

  정씨의 입후보는 당초부터 정치와 정치인의 윤리성과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었다.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그의 의원직 사퇴가 5공청산에 대한 문책의 성격을 띠고 이루어진 것인 만큼 그의 재출마는 민자당 출범 이전 여야가 2년여에 걸친 진통 끝에 합의를 본 5공청산작업에 대한 부정의 뜻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여권이 이 지역선거를 3당합당에 대한 평가와 노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심판받는 시험대로 판단하여 '죽기 아니면 죽이기'의 자세로 임한 것도 선거분위기를 과열로 이끈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40명의 현역의원을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여 洞責으로 동원하고 득표율을 차기공천과 연결시키는 등 한때의 평생동지들끼리 적개심을 불태워야 했던 상황전개가 바로 그것이다.

 

평민. "대통령 탄핵사유 된다"

  정씨의 돌연한 후보사퇴로 선거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그러나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정국은 여야간의 뜨거운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평민당의 金大中총재는 정씨의 후보사퇴에 대해 "대통령 자신이 선거법을 지키지 않고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일에 앞장섰다"고 비난하면서 "이같은 헌정질서 문란과 선거법 위반행위는 탄핵사유까지 구성하므로 임시국회를 열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총재는 또 "선거구민은 관객으로 밀려나고 권력자들이 또다시 밀실에서 공작한 이번 선거는 무효"라고 선언했다. 민주당(가칭)의 李基澤창당준비위원장도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고 주장하고 "3당야합이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으로 등장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양당은 또 노대통령의 정후보 사퇴종용이 현행 국회의원선거법 152~154조(후보자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를 위반한 행위인 것으로 보고 중앙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아무런 법적·정치적 하자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민자당은 정후보를 사퇴시킴으로써 승리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으나 야당에 공격의 구실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는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현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회의를 심어주었다. 이와 함께 정치인, 특히 민자당소속의원들에게는 정치적 무력감과 자괴심을 안겨주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

  아울러 정씨로서는 한때 자신이 몸담아 실세를 휘두르던 여권에 대항하여 힘겨운 줄다리기를 벌였으나 여권의 속성으로 보아 그러한 도전이 얼마나 무모하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실증했다. 정씨는 또 선거구민을 담보로 자신의 명예회복을 꾀하다가 결과적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재기는 물론 '인간 정호용'으로서도 회복하기 힘든 자승자박의 입장이 했다. 

  여권이 원했던 대로 우선 당장 'TK목장의 결투'는 피했지만 앞으로의 정국은 결투 때에 못지 않은 희생과 부담을 수반한 새로운 대결 양상이 전개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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