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3년 안에 부고장 돌린다”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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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근무로 만성피로 누적…노무관리 개선해야 ‘파업 뇌간’ 제거 가능



 대폭발 직전 상황으로까지 치닫던 올 6월 노동운동의 뇌간은 철도 파업이었다. 정부는 서둘러 뇌관 제거 작업에 나섰다. 그에 따라 닷새 동안 계속되던 철도 마비 사태는 정부의 초강경 수에 밀려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책이 몰고올 후유증은 심상치안을 전망이다. 우선 철도청 방침대로라면 이번 사태 해결 과장에서 5백여 명에 이르는 중견 기관사ㆍ검수원들이 해직 사태를 맞게 됐다. 또 철도 근로 현장에 강제로 복귀한 노동자들도 신명을 잃게 됐다. 복귀 후에도 승차 기피 사태가 속출하고, 이에 따라 열차 정상 운행이 지연되고 있는 사정은 그러한 조짐을 보여준다.

 이는 이번 사태 해결 과정에서 정부가 중요한 뇌관에 손을 대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 배후에는 백년 철도 역사 속에 노적돼온 전근대적 노무관리 방식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64년에 철도와 인연을 맺어 올해로 31년째 검수원 일을 하고 있는 정면수씨(49)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이대로 가다가는 철도 파업의 불씨가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남인데도 차례 한번 못 모셨다”
 “30년 이상 철도 일을 하면서 세상 모든 게 변화하는 것을 보았지만 우리에게는 일제 때 시작된 잘못된 관행이 오늘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옛 선배들이 하루 24시간 꼬박 일하고 1년 내내 단 하루도 공식 휴일을 보장받지 못한 관행이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나이 든 철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퇴직후 3년 내에 부고장을 보내는 직업’이라고 우리가 하는 일을 자조한다. 사람의 기본적인 생체 리듬까지 파괴해 버리는 근로 조건 때문에 만성 피로에 찌들어 있다가, 퇴직해서 정상적인 생활 리듬을 찾으면 그게 오히려 화근이 된다. 몇 년을 못 넘기고 사망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 앞으로 20년, 30년씩 철도 일을 할 젊은 후배들은 그런 미래가 두려워 죽기 살기로 나서는 것이다.”

 정부가 시종 불법 단체를 상대할 수 없다고 나서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6천여 명의 기관사ㆍ검수원 들이 전기협을 중심으로 뭉친 것도 바로 그같은 비인간적 근로 환경이 해결될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전기협이 파업을 담보로 내걸었던 핵심 요구사항은 휴일 보장과 근무시간 단축(변형 근로제 철폐)이었다.

 이 중에서 기관사들은 휴일 보장을 더 절박한 문제로 보고 있고, 검수원 등 일반 철도 노동자들은 현행 24시간 맞교대제 철폐를 더 강조한다. 지난 77년 철도고등학교(현 철도전문대 전신)를 졸업한 뒤 기관조사로 들어가 올해로 15년째 열차를 타고 있는 중견 기관서 한민철씨(35)는 기관사들의 애환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새마을호를 주로 타는데 지금까지 40만km 무사고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나는 가정과 사회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장남이지만 조상에게 차례를 모실 기회가 단 한번도 없었고, 친구 친지들 모임에 참석한 일도 없다. 한달 근무표가 작성돼 근무표대로 1년 내내 전국을 다녀야 하는 기관사는 모두 나와 같은 생활을 한다.”

 불교칙한 출퇴근과, 휴일이 없는 생활 때문에 기관사는 결혼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한씨는 3년전에 가까스로 결혼할 수 있었다. 전기동차 교육을 받느라 5주 동안 차를 타지 않을 때 벼락같이 해낸 중매 결혼이었다.

88년 파업 때 약속 아직 안 지켜져
 기관사 외에 검수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철도 노동자가 철폐를 주장하고 있는 제도는 24시간 연속노동제이다. 일제시대에 도입돼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이 제도는, 아침 9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일한 뒤 맞교대하는 근로 형태이다. 이에 따라 1인당 한달 노동시간은 3백60시간에 달한다. 올해 경력 6년째인 서울동차사무소 소속 검수원 하동우씨(34)는 “24시간 맞교대제는 인간이 견딜 수 없는 노동 방식이다. 검수원들은 만성 피로에 젖어서 살아가고, 그러다 보니 철도청 공식 통계로만도 연간 20여명씩 과로와 작업중 사고로 순직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하철 공사 직원들처럼 하루 3조2교대 방식으로 바꾸어 최소한 이간다운 삶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철도 현장의 이런 절박한 목소리들은 이번이 처음 불거져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 88년7월26일 일어났던 대규모 철도 파업도 같은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현장 조사후 정기 휴일 부여, 노동 시간 단축, 수당 인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만성적인 철도 경영 적자와, 오는 96년 철도 공사화를 앞둔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철도청측이 계속 약속이행을 미룸으로써 이번 또다시 파업 사태를 몰고 온 것이다.

 이번 사태를 법외 단체인 전기협과 정부의 힘겨루기 측면으로만 보면, 정부는 분명 승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철도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어루만지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강경책으로 얻은 열차 운행 정상화는 언제 또다시 깨질지 모른다.
丁喜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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