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로 느낌 주는 노련한 지략가”
  • 서명숙 차장대우,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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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인사들이 말하는 김일성 주석 / “정중하지만 화제 독점하는 스타일”

 김일성 북한 주석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그는 군사적 모험주의자인가, 세련된 화술과 외교 전략을 갖춘 전략가인가. “노회하고도 완고한 자기 중심적 인물”인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친근한 인상을 주는 인물”인가.

 7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을 향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일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서울리서치가 국내 사회과학자 · 국회의원 · 변호사등 지도급 인사 2백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자못 흥미롭다. 발표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상대적 설득 능력’에 대해 응답자의 51.9%가 김주석의 설득 능력이 더 낫다고 응답했고, 40.1%가 비슷하다고 대답했다.
청와대, ‘김일성 연구’ 본격 돌입
 김영삼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은 이미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와 해답을 강구하는 작업과 함께 ‘김주석 연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대통령은 김주석이 서방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김주석의 대화 스타일과 어투를 익히고 있고, 참모진은 김주석의 개인적 자존심과 권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약속하고 북측의 불신과 적대감을 누그러뜨릴 묘안을 짜내고 있다. 국제 정치의 냉정한 기류와 남북한이 처한 여러 변수 외에도 회담을 이끄는 주인공의 협상력과 성격 역시 정상회담의 성과와 장래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대통령은 강영훈 · 정원식 전 국무총리 등 ‘김주석을 만났던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조언을 구할 가능성도 있다는 후문이다.
 키 1백74cm, 몸무게 90kg에 나이보다 건강한 편이며 뛰어난 정치 감각과 세련된 화술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김일성 주석은, 48년 수상에 취임한 뒤로 45년 10개월을 집권하고 있다. 극히 한정된 외유 외에는 주로 북한 내에서만 머물러온 김주석을 직접 만나본 국내외 인사는 의외로 상당히 많다. 그 갈래는 70년대와 80년대 초반 정부가 파견한 밀사와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한 공식 대표단 등 정부 관계자, 국가보안법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북한을 방문했던 재야 인사,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언론인과 정치인, 일부 재미 · 재일 · 재독 교포, 선교 및 경제 교류 목적으로 방문했던 국내외 민간인으로 나눌 수 있다.
 김주석은 방문 인사들의 성향과 처지, 방문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평가되고 묘사된다.

 우선 밀사 또는 공식 대표로 파견됐던 정부측 인사들은 김주석에 대한 인상기를 한결같이 매우 조심스럽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 가지 공통적인 점은 ‘매우 정중하고 예상했던 것보다는 부드럽다’는 것과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부드럽게 대화 주도 … 소탈한 분위기”
 역사적인 ‘7 · 4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직전인 74년 5월, 朴正熙 대통령의 밀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당시 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은 수상 집무실(현재의 주석궁이 지어지기 전 집무실)에서 김일성 총리를 만났다.

 이부장을 수행했던 鄭洪鎭씨 (당시 대한적십자사 회담 운영부장 · 현 송원장학회 이사장)는 이틀간 두 차례에 걸친 면담에서 받았던 인상에 대해 “기업으로 치자면 창업 사장(오너) 격인 인물이다. 몇십 년이 넘게 북한의 정책을 결정 · 집행하며 온갖 우여곡절과 풍상을 겪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일을 잘 알고 자신있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단히 쉬운 말을 쓰며 부드럽게 대화를 주도했다. 인민복 차림인데도 권위주의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소탈하고 꾸밈없는 분위기를 풍겼다”라고 술회하고 이렇게 주문했다. “김주석은 말을 해놓고 반드시 상대측에게 확인이나 동의를 구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많이 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평화나 자주 같은 보다 큰 개념으로 즉각 흡수해 버렸다. 저쪽과 이쪽 화제가 엉기기 시작하면 결론이 모호해질 수도 있다. 그쪽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이쪽 주장도 명백히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추상적 화법’ 경계론도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 세련된 화술’은 85년 10월 같은 밀사 자격으로 북한에 잠행했던 張世東 안기부장과 朴哲彦 당시 안기부장 특보 일행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관저인 주석궁(금수산 의사당)을 찾은 장부장과 박특보를 맞아들인 김주석은 특유의 큰 제스처로 장부장의 손을 잡으면서 포옹했다. “직접 뵈니 건강하십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라는 장부장의 말에 김주석은 “저는 낙천적입니다. 그것이 건강을 지켜주지요”라고 답했다. “지난해 수해 물자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장부장의 인사말을 받은 김주석은 “수해 물자는 우리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용감했지요”라면서 탄력성 있게 응대했다. 이 때 동행했던 한 관계자는 “선입견보다 훨씬 유연하고 능란하게 대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회고한다.

 그러나 김주석이 장부장을 포옹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치부된다. 김주석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면 으레 접견실 밖 현관까지 마중나와 악수로 맞아들이고, 면담이 끝난 뒤에는 다시 현관까지 배웅하는, 따뜻하고도 정중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90년 10월 강영훈 총리 일행이 남북 총리 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총리가 김주석을 예방하는 자리에 수행했던 李秉龍 민족통일연구원장은 “김주석은 우리 일행에게 만나서 반갑다는 정도의 인사와 악수만 건넸다. 자기 중심으로 화제를 풀어나가면서도 능란하다고나 할까, 부드럽고 정중한 분위기로 면담을 이끌었다. 적어도 김주석의 건강은 보청기를 사용하는 것 외에는 판단을 내리고 대화를 이끄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정도로 좋게 보였다”라고 말한다.

 이원장 역시 다른 정부 관계자들처럼 “세부적인 이슈와 쟁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고 자주나 평화 같은 말로 추상적 합의를 해놓으면 두고두고 문제가 된다. 하나의 용어를 둘러싸고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북측과의 대화에는 정밀함이 필요하다”라면서 김주석의 ‘추상적 화법’을 경계했다.

 정부 관계자 가운데서도 김주석의 능수능란함보다는 소박한 체취와 풍모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있다. 姜英勳 전 총리는 지난달 29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특강에서 김주석에 대한 평가를 내려달라는 주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장기 집권을 해온 인물이다. 좋든 나쁘든 특출한 점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마음씨 좋은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김주석은 20여분 동안 만난 강총리에게 “강총리 고향이 북쪽이라면서요”라는 인사말로 말문을 열었다. 김주석은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상대방의 출신 배경이나 생각, 저서 등을 꼼꼼히 챙기는 것 같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결국 부드럽고 정중하고 따뜻한 분위기와 솔직하고 쉬운 화술로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주기까지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화법과 모호한 추상어 그리고 상당한 순발력과 의미심장한 복선 깔기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인물. 그것이 정부 관계자들이 말하는 ‘김일성 주석 읽기’ 독법이다. 이름 밝히기를 거절한 한 정부 관계자는 “공산권 지도자하면 으레 스탈린과 히틀러 같은 이미지를 연상했던 사람들은 정작 김주석을 만나면 그 소박하고도 권위를 벗어버린 친근한 태도에 홀딱 빠진다. 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진짜 모습을 읽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한편 오랫동안 남북 대화에 매달려온 전문가들 가운데는 김주석 개인에 대한 평가 그 자체를 꺼리는 이들도 많다.

 남북 간의 접촉과 대화 창구로 오랫동안 활약하며 90 · 92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朴東源 전 외교안보연구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양국 정상에 대한 지나친 개인적 관심을 자제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간의 편차도 있고 입장에 따른 왜곡이 있을 수도 있다”라면서 끝내 입을 다물었다. 李東馥 전 안기부장 특보 역시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은희씨 부부 “자기 말만 하는 사람” 혹평
 정부측 인사 외에도 김주석과 대면한 내국인은 많다. 고 문익환 목사, 황석영씨, 임수경씨, 문선명씨, 최은희 · 신상옥 부부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외에 정주영씨, 김우중씨, 서경원 전 의원이 김주석과 만났다는 설이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북한을 방문해 김주석과 면담한 기록을 남긴 인사 중 최은희 · 신상옥 부부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김주석에 대해 매우 좋은 평점을 매겼다.

 89년 3월 평양을 방문해 김주석과 두 차례 만난 문익환 목사는 방북기에서 ‘김주석이 본인의 통일론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면서, 김주석을 사전 준비가 철저한 인물로 묘사했다. 문목사와 비슷한 시기에 방북했던 작가 황석영씨는 김주석을 ‘이야기를 매우 쉽게 하고, 직접 대답하는 것보다는 사물이나 자신의 옛날 체험을 비유로 들어 자기 생각을 돌려서 표현하는’ 화제가 풍부하고 아는 것이 많은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또한 황씨는 김주석을, 정주영씨나 김우중씨 같은 한국의 재벌 총수에 대해서도 ‘분단된 상태에서 외세와 코를 맞대고 있으면서(인민과 재벌을) 구별할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로 표현했다. 황씨는 김주석이 ‘일상적인 담화를 하다가도 귀결은 인민에게 돌아가는’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다고도 했다.

 89년 북한을 방문해 연회장에서 잠깐 김주석을 대면한 임수경씨는 “풍채가 상당히 좋았고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였으며 얼굴에 계속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 미소가 인상을 좋게 하였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인상은 보통 할아버지 같았으며, 적어도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붉은 악마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89년 3월 북한을 탈출한 최은희 · 신상옥 부부는 김주석을 “시력이 좋지 않아 거의 글을 읽지 못해 다른 사람이 낭독해줘야 하며, 대화중에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편”이라고 혹평했다. 신씨 부부는 또 김주석이 소박한 겉모양과는 달리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고 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연회장과 에스컬레이터 시설을 갖춘 초호화판 주석궁에서 살고 있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국 재벌들에 대해서도 전향적 평가
 지난 6월16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김주석과 회담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김주석을 “지적이고 활달하며 솔직하다”라고 평가했다. 카터와 마찬가지로 그를 만난 외국 인사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북한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동유럽권 국가의 외교관들은 대부분 그를 “매우 합리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70년대부터 김주석과 깊은 교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는 “그는 농부 같은 인상에 강건하면서도 온화함을 풍기는 어버이 같다. 침착하고 따뜻하고 친절하며 거짓이 없다. 고압적인 태도가 하나도 없으며 기지와 유머가 있다”라고 최상의 찬사를 보낸다.

 92년부터 여섯 차례 북한을 방문해 세 차례 김일성 주석과 장시간 인터뷰를 한 재미언론인 문명자씨 (《유에스 아시안 뉴스》 국제 정치 담당 주필)는 김주석이 “만나는 상대에게 상당히 친밀감을 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충분히 전달되도록 노력한다”라고 평했다. 그리고 한국내 사정을 깨알같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가령 한국의 누가 북한에 가서 ‘내가 한국에서 무엇을 했다’고 과장된 자랑을 한다면 우습게 여길 정도로 소상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문씨에 따르면, 김주석은 아직도 30년대의 인명이나 지명을 정확히 지적할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으며, 인터뷰 도중 나온 10여 가지 음식을 차례로 먹어치울 만큼 왕성한 식욕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프더 레코드를 제대로 발음할 정도로 노어나 중국어 못지 않게 영어에도 상당한 소양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들 내 · 외국인의 면담 기록을 종합해 보면, 김주석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에게 온화한 이미지를 심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만난 사람의 직업이나 성향에 맞춰 화제를 선택하지만 언제나 공통적으로 꺼내는 얘기가 있다. 그것은 북한 체제가 공산주의를 교과서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황석영씨와 면담할 때 한국 자본가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김주석은 그와 거의 비슷한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되풀이했다. 문명자씨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일제 때도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합쳐야 독립된다고 말해 왔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조국과 민족을 판 악덕 자본가는 분명히 가려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힘을 합쳐야만 통일이 된다”라고 말했다.

‘노련함’ 대 ‘돌파력’의 만남
 김주석은 여러 사람과 면담할 때 자기가 항일운동 시절 교회 목사의 도움을 얻어 생명을 건졌음을 강조했다. 그는 후에 미국에 살고 있는 그 목사의 아들을 평양에 초청했었다며 “내가 사상에 집착한다면 수십 년간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그를 초청해 친형제처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카터에 앞서 지난 5월 방북했던 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북한 전문가 셀릭 해리슨 연구원이 “남한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한가”라고 묻자 김주석은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남한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린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남한 사정이 어떤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면 남한에 투자하고 있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은 모두 우리의 적이 될 것입니다. 우린 하나의 적도 벅찹니다.”

 그의 이같은 태도를 계산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와 직접 면담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는 모양이다. 그와 대면한 사람 중 그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퍼붓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김주석에 대한 평가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김주석을 만난’ 인물들의 처지와 관점, 그리고 만난 배경에 따라 상당한 편차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설령 어떤 공통점이 추출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김영삼 대통령과 김주석의 정상회담에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7월의 회담은 역사상 그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남북한 정상 간의 회담이기 때문이다. 우선 회담 당일 남북한 지도자들의 만남에서 김주석이 이제껏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했듯이 정중하고도 따뜻한 악수를 건넬지, 재야 인사들에게 그랬듯이 전격적인 포옹 장면을 연출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정중하고 노련한 외교술을 갖추고 어떤 회담이나 면담에서건 자기 스타일로 좌중을 리드하는 김주석과, 정면돌파와 임기응변에 능하고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고 간명한 것으로 바꾸는 데 일가견을 가진 김대통령의 대좌를 매우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다. 남북한 간의 현안 해결과 통일 시대 개막이라는 시대적 과제 못지 않게 남북한 정치 지도자의 큰 개성과 협상력을 드러낼, 광복 이후 최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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