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는 차세대 신문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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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 일 등 컴퓨터로 최신 뉴스 제공하는 ‘전자 신문’ 실용화



 외환 딜러인 ㄱ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 모니터에 어제 마감시간까지의 각종 경제지표들이 수치와 도표, 그래프 따위로 표시되면서 그에 대한 해설과 전망이 음성으로 곁들여진다. 기업 · 금융 · 정부 정책 · 마케팅 · 증시 등 경제와 관련한 모든 내용이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것처럼 각기 다른 크기와 색깔의 활자 · 사진으로 나타난다. 사진도 정지된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1초당 15프레임에 불과해 사실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볼만하다. 이처럼 신문과 텔레비전을 혼합해 놓은 것 같은 장면이 모니터에 계속 이어진다.

 직업상 시시각각 변하는 국내외 경제 동향에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ㄱ씨이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경제지를 번거롭게 들쳐보거나 텔레비전 뉴스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집이나 직장 어디에서든 컴퓨터를 켜고 자기 비밀 번호를 입력하기만 하면 그 때까지 접수된 국내외 경제 관련 뉴스가 친절한 해설과 전망까지 곁들여 눈과 귀로 들어오는 것이다.

‘나만을 위한 일간지’
 특정 뉴스 항목에 대한 검색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거기에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이 정보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어느 쪽도 미처 알려주지 못한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이다.

 여기에서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ㄱ씨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경제와 관련된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알고 싶은 정보 분야만을 특화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가 다른 분야의 정보를 원한다면 그것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스포츠, 연예, 법률, 의학, 인물, 과학···. 어떤 분야든 상관 없다. 컴퓨터가 온라인으로 연결된 전세계 주요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끊임없이 제공되는 최신 뉴스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분야만을 자동으로 걸러서 축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비자 개인의 흥미나 수요에 따라 뉴스를 특화해 전달하는 데 대해 사람들은 ‘데일리 뉴스’라는 말 대신 ‘데일리 미(daily me)’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냈다. ‘나만을 위한 뉴스’ 혹은 철저히 고객 위주로 된 ‘주문형 뉴스’라는 뜻이다.

 이같은 고객 지향형 뉴스 전달 형태는 먼 훗날에나 있을 법한 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내 언론 기업들이 이미 다양한 형태로 새 매체를 실험중이고, 그보다 더 많은 언론 기업들은 이 ‘뉴미디어’ 시장의 예상 규모를 따져보면서 언제 뛰어들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미국 유수의 컴퓨터 통신망인 컴퓨서브와 프로디지는 ‘나만을 위한 일간지’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저널리스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용자는 스스로 편집자 노릇을 할 수 있다. 방법도 간단하다. 사용자가 받아보고 싶은 뉴스 분야를 선택해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저널리스트’가 온라인 데이터 베이스에서 적당한 관련 기사만을 골라 그에게 서비스하는 것이다.

국내 언론사는 데이터 베이스 구축 단계
 미국내 주요 신문사들은 이러한 형태의 정보 서비스를 이미 하나의 사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시카고 트리뷴>, <USA 투데이> 같은 신문은 아메리카 온라인사의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해 매일 뉴스를 전하고 있으며, ‘디지털 잉크’라는 전자 신문 자회사를 설립한 <워싱턴 포스트>는 하반기부터 서비스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디지털 잉크는 일반 신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도록 제목이며 활자, 사진 배치 형태를 다양하게 해 컴퓨터에 대한 일반인의 거리감을 없애려 노력했다.

 미국만큼 혁신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국내 몇몇 언론사들도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뉴미디어 시장에 대해 나름의 전략을 암중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움직임은 특히 눈길을 끈다.

 뉴미디어 연구소를 세우고 데이터 베이스 구축 작업에 힘을 쏟았던 <조선일보>는 지난 6월22일 ‘CD롬 정보센터’ 구축 1단계 작업을 완료했다. 7월 중순까지 사내에 설치할 이 CD롬 정보검색 시스템은, 개인용 컴퓨터 1대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CD롬 타이틀 2백개에 담긴 내용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한 첨단 전자 도서관이다. 뉴미디어 연구소의 李圭昌 연구원은 “현재 보유한 백여 가지 CD롬 타이틀 가운데 당장 유용한 타이틀 33개를 골라 시스템에 수록했다. 올해 말까지 백개, 내년에는 2백개까지 규모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4개 주요 일간지 92년 1월~94년 3월 기사 전문과 《타임》《뉴스위크》등 시사 주간지의 CD롬, 기업연감,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각종 통계 등 현재 시스템에 수록된 자료만 해도 웬만한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방대한 양이다.

 국내 언론사 중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 가장 잘 되어 있다고 알려진 <중앙일보>도 지난 3월 기자 · 조사요원 등 20여 명으로 구성된 뉴미디어국을 신설하고 92년부터 온라인으로 서비스해온 정보 데이터 베이스 ‘조인스’의 기능을 개선하는 등 기반 다지기에 열중하고 있다. 오봉환 뉴미디어국장은 “전자 신문은 많은 시간과 투자를 요구하는 일종의 장치산업이어서 우리는 기반 구축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상반기에 기본적인 데이터 베이스 구축 작업을 끝내고 하반기부터 실질적인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86년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한 정보 서비스 ‘케텔’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 <한국경제신문>이나, 88년부터 경제 관련 데이터 베이스 ‘每經 MEET’를 제공해온 <매일경제신문>, 91년부터 ‘인포맥스’를 통해 뉴스 · 경제지표 · 주식 정보를 제공해온 연합통신 등도 일찍부터 활자 매체의 한계를 간파하고 꾸준히 기반을 다져온 언론사에 든다.

 그러나 국내 언론사들의 뉴미디어 대응 전략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여전히 천리안 · 하이텔 같은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해 신문기사를 서비스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오봉환 국장은 “지금의 전화선을 가지고는 그날그날 신문 기사를 전송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림이나 그래픽 · 사진까지 보내자면 이른바 ‘정보 초고속 도로’가 구축되어야 한다. 전송 기술과 관련한 표준화 작업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라고 말한다. 결국 개별 언론사로서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벽에 부딪힌 활자 매체의 돌파구”
 물론 뉴미디어는 정보를 축적하는 데에서도 뛰어난 효율성을 발휘한다. 신문 · 잡지를 발행일자 별로 모아두거나 그 내용을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두는 것은 비효율적일뿐 아니라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조선일보>의 <이규태 칼럼>이나 <동아일보>의 <사설 모음집> 등 최근 부쩍 활발해진 CD롬 타이틀 제작은 그것이 지닌 막강한 정보 저장력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경우 <요미우리 신문 전자 축쇄판>을 제작해 필요한 신문 지면의 영상을 그대로 불러올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언론사 중에는 기사를 본격적으로 CD롬화하고 있는 곳이 아직 없다. 그러나 CD롬 축쇄판이 현재의 활자 축쇄판을 대신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조선일보>가 하반기에 지난 1년치 기사를 모두 수록한 CD롬 타이틀을 내놓을 계획이고, 따로 ‘명 사설’만을 모은 CD롬 제작도 고려하고 있다. <중앙일보> 등 다른 신문사들도 CD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 일본 등에서 선보인 전자 신문과 국내에서도 제작이 활발해진 CD롬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일방형이 아닌 쌍방형이라는 점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생산자(방송사 · 신문사)가 정보를 보내면 사용자(시청자 · 독자)는 오로지 사용하느냐 않느냐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뿐인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인 데 견주어, 이들 뉴미디어는 생산자와 사용자 쌍방의 상호작용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는 정보 내용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광고에 대해서도 그것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사용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최근 한국전산원이 발표한 《’94 국가사회 정보화 백서》에 따르면, 94년 4월 현재 국내 컴퓨터 통신 가입자는 26만7천여 명으로 92년 이후 연평균 두배가 넘게 급증했다. 또 이들 가입자의 64%가 20~30대이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가장 신문을 읽지 않는 연령층이 18~24세라고 한다.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국언론연구원의 최 영 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활자보다 영상에 친숙한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자면 사용의 편리성과 시각적 요소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신문의 독자적 영역이나 매체 간의 벽이 사라지는 것도 필연적이다. 전자 신문은 벽에 부딪힌 신문 매체의 돌파구인 셈이다.” 그 벽이 돌파될지 여부는 물론 아직 모른다.
金相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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