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재산 몰수해 민족정기 바로잡자”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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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제정’ 1백만 서명운동 국내외로 확산


증손 이윤형측 변호사 사임 … 검찰, 브로커 단속


 ‘이완용 후손의 유산상속 연쇄소송제기’ 보도로 국민의 분노가 확산된 가운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는 집회가 열렸다. ‘이완용 등 친일 매국노의 재산몰수 특별법 제정 촉구 1백만 서명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집회는 대한민국독립유공자유족회 · 한국독립동지회 등 10여개 독립유관단체가 주최했다. 이날 몇시간 만에 5천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은 주최측은 전국 각지의 지회 및 민족정기 확립에 공감하는 시민 · 단체와 연대해 빠른 시일안에 1백만명 서명을 채울 계획이다.

“매국노 응징에 시효만료는 없다”

 “처자권속 다 버리고 독립을 위해 피흘린 선열들 앞에 오늘의 현실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매국의 수괴들이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이 이 나라 법정에서 내놓고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민족이 가야 할 지표마저 잃은 것 같은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서명운동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 독립유공자유족회 김삼열(50) 회장은 1백만 서명운동을 전국 각지와 해외로까지 확대해 우리 민족정기가 아직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국회에 특별법 제정 촉구자료로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48년 반민특위가 실시하려 했다가 묻혀버린 ‘친일 매국노 재산몰수’가 40년이 넘어 되살아난 것은 너무 뒤늦지 않았느냐 하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서명운동 주최측은 “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프랑스는 불과 5년간 독일에 점령당했지만 지금도 비시 괴뢰정권에 협력했던 매국노가 발각되면 국가적으로 처단해 민족정기를 확립합니다. 그동안 사형된 매국노가 2천71명이었고 나치 협력자 4만명이 감옥으로 갔습니다. 네덜란드도 징역이 5만건이었고, 벨기에는 5만5천건이었습니다. 우리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부터 50년 간의 치욕스런 일제침략사를 가졌으면서도 사형한 매국노는 고사하고 징역을 보낸 것이 겨우 14명뿐입니다. 민족정기를 확립하는 문제에 시효만료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국가가 매국노의 재산을 몰수해 독립기념 사업 및 각종 민족정기 선양기금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복회에서도 이 문제를 국민 총동원 사업으로 펼치기로 결의했다. 광복회는 전국의 모든 공조직을 동원하고 국민의 민족의식에 호소해 매국노 재산몰수 특별법 제정운동을 펴기로 했다. 신임 김승곤 광복회장(78)은 “1933년 상해로 망명해 조선의열단원으로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이완용 후손의 재산찾기에 접하면서 선열과 후진에게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놈들이 몰수해간 항일운동가의 재산은 찾을 길이 없고 매국노 재산은 아직도 후손이 찾을 수 있는 거꾸로 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해외교포 사회에서도 매국노 재산환수 운동이 시작됐다. 미주지역 독립유공자 단체와 교포들은 지난 9월초부터 이완용 재산환수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시작했는가 하면, 대표를 국내에 파견해 법적 대응을 강구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상해임시정부 수립 73주년을 맞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받은 독립운동가 김공집 선생의 친손자인 김종혁씨(60 · 미주지역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가 9월 중순 한국으로 날아온 것이다. 김씨는 “국내의 독립유관단체들과 연대해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내는 한편, 해외교포들의 민족정기도 살아 있음을 보이는 대대적 서명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외의 규탄에 ‘재산찾기’ 당사자인 이완용의 증손 이윤형씨 진영은 심한 위축감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아래 인터뷰 참조). 이완용 명의의 재산상속 소송 대리인으로 변론을 담당했던 유선호 변호사(41)는 지난달 18일 이 사건의 역사 · 사회적 의미를 감안해 사임계를 냈다. 유변호사는 북아현동 일대 7백12평을 찾게 해준 대가로 받을 수 있는 성공 보수 6억여원도 포기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임 후 《시사저널》에 연락해 “역사의 청산과 개인의 속죄를 위한 재판이 되어야 하는데 후손의 재산상 권리확보에 머무르는 것은 소송목표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사임 직전 이윤형씨와 만나 “속죄하는 뜻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의사를 타진했으나 불가능한 일로 판단했다고 한다.

 최근 이완용 후손의 재산찾기 보도로 국민여론이 들끓자 검찰도 이완용 재산찾기에 개입하는 브로커들을 단속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윤형씨는 일단 현행 민법에 의존한 재산찾기를 계속하되 국민과 정부의 적절한 조처가 있다면 그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비치고 있다. 뒤늦게나마 이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민족적 지혜가 모아져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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