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 대중가요 어정쩡한 ‘만남’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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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음악계 ‘벽 허물기’ 매진 사례 등 나름의 성과 단순접목으론 조화 어려워 … 음악학적 논의 필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벽이 헐리고 있는가. 성악가 박인수씨가 대중음악 활동 등의 이유 때문에 국립오페라단 단원 임용에서 탈락된 충격 파문이 음악계에 이상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벽 허물기’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두 연주회가 개최되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1~22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팝스콘서트와, 29일 장일남이 지휘한 서울아카데미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국내 정상급 성악인 7인이 출연해 마련한 ‘사랑의 칸초네’ 공연이 그것이다.

 최근 몇해 동안 ‘음악 대중화운동’ 이라는 명분으로 팝스콘서트 같은 일련의 중간 음악 여주회가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청중 확보라는 그 나름의 성과도 거두었다. 특히 83년부터 팝스콘서트를 기획하여 역사가 가장 오랜 서울시향에서는 85년부터 대중가수 특별 초청 무대를 마련하여 교향악 반주로 대중가요를 연주하는 실험을 해왔다. “건전한 여흥을 제공하고 대중음악의 수준을 높이며 음악감상인구의 저변확대를 꾀하려는 취지”에 따라 서울시향의 팝스콘서트에는 지난해까지 패티김 조영남 윤복희 이광조 이선희 이문세씨 등이 출연하여 클래식 연주회장의 대명사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유행가요를 불렀다.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의 90년도 평균 관객수가 1천3백42명인데 견주어 팝스콘서트는 해마다 표가 매진되고 있다. ‘사랑의 미로’ ‘미련 때문에’를 부른 21일의 최진희 초청 공연의 경우 2천9백74명이, ‘모두가 사랑이에요’등을 부른 ‘해바라기’ 초청공연은 3천6백70여명이 자리를 메웠다. 정기연주회의 저조한 티켓 판매율을 감안해볼 때 팝스 콘서트의 수익금으로 어느 정도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이점과 함께 음악적으로도 소규모 악단의 증폭된 전자음향 반주에 의존해온 대중가요나 팝송을 교향악 연주어법에 입각한 4관편성의 연주로써 음향의 색채감을 살린 색다른 감흥을 얻는 성과도 거두고 있다.

 가수 최진희씨는 대중가요와 고전음악과의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이같은 무대가 대중가수에게도 “귀가 트이는” 경험을 맛보게 함으로써 대중가수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같은 경험을 살려 “앞으로 고급음악의 요소를 가미할 수 있는 노래들도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해바라기의 이주호씨도 “본디 노래가 갖고 있는 끈적한 분위기, 가라앉은 듯한 체취는 없어지지만, 연주자의 호흡과 손길이 와 닿는 듯한 교향악 반주가 사람의 생각과 생각이 만나는 것처럼 느껴져 새로운 감흥 속에 노래했다”고 소감을 말한다.

“재미삼아 하는 것은 괜찮다”
 이택주 서울시향 악장은 “트롯 계열리든 발라드 계역이든 가창력이 뛰어나고 오케스트라 반주와 어울리는 가수라면 누구든지 협연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어 더 이상 대중음악 연주에 대한 편견이 없음을 시사했다.

 8월2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사랑의 칸초네’는 국내 정상급 성악가와 교향악단 이 대중음악을 연주했다. 여기에는 지난 연말 박인수씨가 “대중음악 참여 등 개인적인 활동이 잦다”는 이유로 ‘박인수 축출 파문’을 일으켰던 국립오페라단 단원도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테너 박성원 신영조 메조소프라노 김학남씨 등 국립 오페라단원을 포함한 7인의 성악가는 장일남씨가 지휘한 서울아카데미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오페라 아리아와 칸초네, 영화음악은 물론 ‘아침이슬’ ‘제비’등 대중가요를 노래했다.

 주최측인 경향신문사 문화사업부 강인씨는 더운 여름이 끝나는 초가을 길목에서 “순수 예쑬성의 추구보다는 대중적인 오락성에 기초한 쇼형식의 무대”라고 설명하면서 이같은 기획이 순수 · 대중음악의 ‘벽 허물기’라는 일련의 음악문화운동을 지원하는 의미도 있다고 밝힌다. 이번에 연주된 곡들을 대중악단 연주와는 다르게 교향악 연주에 맞도록 편곡, 지휘한 장일남 씨는 이같은 작업을 “재미삼아 하는 것은 괜찮으나 업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못박는다.

 “좋은 대중가요도 있으며, 성각가도 그 것을 부를 수 있다”는 음악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대중음악 · 순수음악의 이분법이 조재하는 사회보다 좋은 음악이 있는 사회이면 좋겠다”는 음악평론가 이강숙 교수의 주장과 일치한다. 좋은 음악일수록 소수가 아닌 대중의 생활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이강숙 교수는 이같은 시도가 “음악이 인간에게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를 각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한편 가수 이동원과 ‘향수’를 부른 것을 비롯, 지난 6월에는 ‘해바라기’ 콘서트에 특별출연하는 등 ‘벽 허물기’에 앞장서온 박인수씨는 성악가의 가요 연주에 대해 “고무적 현상”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이같은 활동을 한다고 해서 작곡기법과 양식이 다른 고전음악과 대중가요가 혼합될 수 있겠는가”라는 반문한다. 이같은 시도가 음악계에서 긍정적 당위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전제할 때, ‘형태에서의 단순한 접목’ 차원인 현 단계를 내용의 충실도와 어???게 연결시켜 나갈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이같은 벽 허물기 작업이 다만 클래식음악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되는가, 아니면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만남이 또다른 이상적인 형태의 음악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인가. 예컨대 서울 시향의 팝스콘서트무대에 대중가수가 선다는 행위 자체만으로, 또는 대중가수와 성악가가 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만으로 과연 대중가요의 질적인 향상을 꾀할 수 있을까,

음악 흥행업자 수익만 올릴 우려도
 “조심스럽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부분 부분 어색한 데도 없지 않았다”는 가수 최진희씨의 말은 성격이 다른 두개의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채운 청중들은 교향악단과 가수의 생소한 어울림을 구경거리삼아 때로는 동정적으로 때로는 음악사회운동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냉정히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같은 현상은 팝스콘서트가 대중가수에게는 “불러만 주면 기꺼이 응하고 싶은” 꿈의 무대로 작용할망정, 음악적으로는 교향악단 · 가수 · 청중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미완의 공연에 머물러 있음을 입증한다. 서울시향의 팝스콘서트 기획자인 오병권씨는 “음악적인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편곡자를 발굴 도는 육성해야 한다”며 편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또 편곡자의 역량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면서 “구성지고 청승맞은 흘러간 옛노래 메들리가 스탠리 블랙의 편곡을 거쳐 발랄하고 율동적인 선율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같은 ‘벽 허물기’ 작업은 그 명분에 못지 않게 동시에 음악 완성도를 추구하는 방향에서 전개될 때에 비로서 “물위의 기름처럼 어색하고 어중간한” 연주 형태가 극복될 것임은 자명하다. 클래식 인구의 저변확대 또는 음악의 대중화라는 음악사회적 명분이 바로 ‘흥행성’을 추구하는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악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인기가수라는 흥행 요소에 ‘벽 허물기’라는 음악사회적 명분으로 앞가림한 이른바 ‘접목 연주’의 성행은 예술성 추구라는 측면보다는 음악 흥행업자의 수익만 올려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클래식 가수가 유행가를 부르는행위가 음악계에 큰 혁명이라도 불러 일으킨 것처럼 여론에서 떠드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오히려 성격이 다른 두 음악의 정서 및 기능에 대한 음악학적인 논의를 거쳐 두 음악이 만나는 합일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또 이같은 음악문화운동이 안고 있는 한계점은 무엇인지 고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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