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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소립자에 새겨진 우주의 암호

김상익 기자 ㅣ 승인 1991.09.1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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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서울대학교 문화관 대강당에서는 1년 전과 또 다른 ‘우주’가 펼쳐졌다. 강당을 가득 메운 2천여 청중은 우주의 비밀이 현대 물리학자들에 의해 양파껍질처럼 한꺼풀 두꺼풀 벗겨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90년 9월 《시사저널》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휠체어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곳에서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우주의 종말이 있을지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종말이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1백억년은 지나야 찾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머감각이 풍부한 호킹 박사는, 그러니까 가령 증권투자를 한사람이 있다면 아직은 투자한 것을 팔아버리기엔 이르다고 ‘장담’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레온 레더만 박사(미 시카고대학 석좌교수)는 ‘소립자로부터 우주까지’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려주었다. 스티븐 호킹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거대한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물리학자라면, 레온 레더만은 소립자들을 충돌시키는 등의 실험을 통해 ‘극미한 티끌우주’의 신비를 밝히려는 실험물리학자이다. 그는 88년 자연계에는 최소한 두 종류의 다른 중성미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들 두 사람은 ‘상상력’과 ‘실험’이라는 서로 다른 두 길을 통해 우주의 신비를 풀고자 노력한다. 호킹이 이론적이라면 레더만은 실증적이다.

미 초전도 초가속기 건설에 한국 참여
물리학의 실험도구 중에는 입자가속기라는 것이 있다(52~53 쪽 참조). 양성자나 전자 등  소립자를 매우 빠른 속도로 가속시켜 실험대상인 원자와 충돌시키는 장치다.

쇠망치로 돌멩이를 내리치면 돌은 두조각 세조각으로 쪼개진다. 그러나 같은 쇠망치로 강철덩어리를 아무리 내리쳐도 강철덩어리는 쪼개지지 않는다. 강철을 깨려면 더 단단한 망치가 필요하다.

원자핵이나 소립자들은 매우 단단해서 어지간한 힘을 가지고는 깰 수 없다. 양성자를 가속시키면 에너지가 엄청나게 커진다. 이 양성자는 매우 단단한 망치가 되는 것이다. ‘양성자 망치’로 정지해 있는 소립자를 때리면 소립지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 같은 충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기위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어떤 방속에 누군가가 들어 있다. 바깥에 있는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심부름꾼을 그 방으로 들여보낸다. 얼마 뒤 심부름꾼은 눈두덩이 퍼래 가지고 나온다. 이로 미루어 우리는 그 방에 심부름꾼보다 힘이 센 녀석이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물질이고, 심부름꾼은 기속된 양성자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원자 속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가속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립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래서 입자가속기는 ‘물질현미경’이라고도 불린다.

입자가속기 중 유명한 것은 미국의 페르미 가속기와 스위스에 있는 레프(LEP)를 들 수 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레더만은 페르미연구소 소장을 지낸 바 있으며, 미국 정부가 82억5천만 달러를 들여 건설하고 있는 초전도 초가속기(SSC) 계획에도 깊이 간여하고 있다.

초전도 초가속기 건설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한다.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은 최근《시사저널》과의 인터뷰(본지 98호 28~30쪽 참조)에서 내년부터 2000년까지(9년간 2백40명 안팎의 과학기술 인력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 현지보다 싼 가격으로 부품도 공급할 계획이다. 이같은 참여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천5백만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장관은 지난 9월 9일 미국을 방문, 초전도 초가속기 건설 참여 방안을 협의했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나는 신이 주사위놀이를 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확률적인 해석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자들과 논쟁을 벌이던 중 불만스럽게 털어놓은, 너무도 유명한 한마디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이란 논문과 함께 ‘광전효과’에 대한 폭탄적인 논문을 발표, 양자론의 문을 연 장본인이다. 그는 1900년에 발표된 막스 플랑크의 ‘양자가설’을 이용해 빛이 ‘광자’라는 입자의 다발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신문 잡지에 실린 인물사진이나 풍경사진을 볼 때 그것은 여러 색깔이 매끈하고 연속적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돋보기로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색깔이 다른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막스 플랑크는 책상이든 유리이든 모든 물질은 사진과 마찬가지로 불연속적인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했다. 아인슈타인의 ‘광자론’은 여기에 바탕 을 둔 것이었다. 빛은 수많은 광자들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양자들의 움직임은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한 예로 전자가 어떤 위치에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도는지 알고자 할 때 위치를 측정할 때마다 속도가 달라진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위치를 포착하면 속도가 오리무중이고, 거꾸로 속도를 잴 때마다 위치가 엉뚱해진다. 하이젠베르크는 여기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생각해냈다. 이 같은 개념은 고전물리학과 맞지 않았다.

17 세기 아이잭 뉴턴에 의해 확립된 고전 물리학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와 거대한 우주의 운동법칙을 잘 설명해주었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까닭과 지구가 타원궤도를 그리며 태양의 주위를 도는 이유를 딱 떨어지게 설명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신이 마련한 법칙에 다라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대로 움직인다고 보았다. 이른바 결정론적 우주관이 생겨난 것이다.

양자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결정론을 버리고 무질서하게 보이는 ‘양자적 기모함’을 받아들여야 했다. ‘신의 주사위놀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비유는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이라는 두 개의 물리학이 각축하던 20세기 초반의 혁명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개의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오는 숫자의 합은 2가 될 수도 있고 7 또는 8이 될 수도 있고 12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우연’이지 어떤 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가 2 또는 12가 될 확률은 매우 낮다. 1과1, 6과6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7또는 8이 될 확률은 크다. 양자물리학자들은 이같은 확률의 개념으로 원자 속 '티끌우주‘를 이해했다.

그러나 ‘우주의 질서’를 물리법칙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고자 했던 고전물리학자들은 주사위놀이와 같이 예측이 불가능한 우연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결정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부터였다. 1895젼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은 ‘음극관’이란 전기장치를 가지고 실험을 하던 중 눈에 보이지 않으며 책이나 나무, 심지어 얇은 금속판까지도 뚫고 지나가는 X선을 발견했다. 그 이듬해 프랑스의 앙리 베크렐은 ‘우라닐황산칼륨’이라는 혼합물질이 투과력이 강한 어떤 빛을 스스로 내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방사능이 발견된 것이다. 1897년에는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이 전자를 찾아냈다. 퀴리 부부는 1898년 역청우란광에서 방사능 물질인 플로늄과 라듐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방사능이란 쉽게 말해 원자가 전자나 양성자 등의 소립자를 스스로 방출하는 것이다. 다라서 방사능의 발견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로서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다”고 믿어져온 원자가 그 보다 더 작은 물질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방사능 발견으로 물질 내부에 관심을 갖게 된 현대 물리학자들은 뉴턴 물리학이 통하지 않는, 엉뚱하고도 새로운 소립자 세계에 눈뜨기 시작했다.

물질의 끝. 쿼크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듯이 분자는 원자가 결합된 것이며,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빙빙 도는 전자로 구성돼 있다. 원자핵은 양의 전기를 띤 양성자와 아무런 전기를 띠지 않은 중성자로 단단히 뭉쳐 있다.

이 같은 원자의 구조를 맨 처음 확인한 사람은 어니스트 러더퍼드였다. 그는 조수들과 함께 헬륨의 원자핵(알파입자)을 방사시켜 얇은 금속판을 통과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실험 도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알파 입자 몇개가 금속판을 통과하지 않고 튕겨져 나온 것이다.

러더퍼드는 이 괴상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알파입자는 양의 전기를 띤 물체다. 앓은 금속판 속에도 양의 전기를 띤 원자핵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방사된 알파입자 중에는 금속판의 원자핵과 가깝게 지나가는 것이 있게 된다. 같은 전기를 띤 물체는 서로 밀어내므로 몇 개의 알파업자가 튕겨 나온다. 1911년 러더퍼드는 “원자는 원자핵과 원자핵의 주위를 도는 전자로 구성돼 있다”는 원자모형을 발표했다. 원자에는 ‘부분품’이 없다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던 만큼 이 원자모형은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모형은 뒤에 닐스 보어에 의해 수정되어 완전한 체계를 잡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음의 전기를 지닌 전자가 회전운동을 계속하다 언젠가 힘이 떨어지면 양의 전기를 지닌 원자핵 속으로 끌려들어갈 것 아니냐”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양자물리학은 전자기력이 전자를 제자리에 묶어둔다고 설명한다.

또 이상한 것은 원자핵 속에서 양의 전기를 지닌 양성자들이 서로 밀어내지 않고 단단하게 뭉쳐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일본의 이론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이다. 원자핵 속에는 핵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는 핵력의 중개역할을 맡는 것은 중간자(파이메존, 줄여서 파이온)라고 주장했다. 핵력은 양성자들을 붙잡아맬 만큼 힘이 강하지만 ‘사정거리’가 짧아 원자핵 속에서만 작용한다. 핵력은 원자핵 밖에서는 힘을 못쓰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물질현미경인 입자가속기를 만들어 양성자와 양성자를 충돌시킨 결과 양성자 중성자 파이온 외에도 수많은 소립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관측했다. 물리학자들은 이 소립자들을 ‘하드론’이라고 불렀는데 하드론의 종류는 너무나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가장 단순하고 명확해야 할 물질의 본질은 ‘무한’이 라는 수수께끼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이 수수께끼는 ‘쿼크’라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에 의해 풀렸다. 쿼크는 단지 6개의 종류가 있을 뿐이다(쿼크 3개와 반쿼크 3개). 이 쿼크가 2개 혹은 3개씩 짝을 지어 무한한 수의 하드론을 만드는 것이다.

태초에 ‘쿼크의 이슬’이 맺혔다
‘티끌우주’로의 여행은 분자 원자 원자핵 하드론을 거쳐 쿼크에서 발을 멈춘다. 그러나 이 여행은 ‘거대우주’로의 여정이기도 하다. ‘티끌우주’와 ‘거대우주’로의 여행은 어디서 발길이 만나는가.

1923년 미국의 에드윈 허블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 밖에 다른 은하계들이 있으며, 그 은하계들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관측했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했다. 은하계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면, 다시 말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오래 전에는 우주가 작게 뭉쳐 있었을 것 아니냐 히는 데로 생각을 돌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이론이 ‘대폭발’(빅뱅) 이론이다. 이 이론은 미국의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에 의해 제창됐다. 그 후 스티븐 와인버그는 ‘태초의 3분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시간표로 작성했다.

우주가 대폭발을 한 것은 1백50억 년쯤 전의 일이다. 대폭발 이전의 우주는 밀도가 무한대에 가까운 반면 부피는 0에 가깝고, 모든 것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뜨거운 상태였다. 우주가 폭발하자 온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폭발 후 1백만분의 1초가 지나자 마치 새벽녘 풀잎에 이슬이 맺히듯 쿼크들이 2~3개씩 뭉치기 시작했다.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중간자가 생겨났다. 전자들은 아직 자유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이것이 ‘태초의 3분간’에 일어난 일이다.

우주는 계속 팽창하면서 식어갔다. 약 30만년 뒤 수소와 헬륨 원자들이 서로 뭉쳐졌다. 눈 뭉치를 눈 위에서 굴리면 점점 커지 듯 수소덩어리들은 점점 커졌다. 이것이 별이다. 우리에게 햇빛을 보내주는 태양은 수소가 대부분인 별이며, 태양열은 수소의 핵융합 반응으로 얻어지는 에너지이다.

풀리지 않는 우주의 암호
어떤 별 속에서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원자가 만들어졌다. 그 별들이 폭발 하고 파편들이 다시 뭉쳤다. 새로운 원자가 또 만들어졌다. 고등학생들이 화학시간에 달달 외는 주기율표의 ‘빈칸’이 채워진 것은 대폭발 이후 몇십만, 몇천만년 뒤의 일이다. 태양이 생기고 지구가 태어나고, 지구 위에 생물이 나타났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모두 ‘별의 아들’인 셈이다. 물질의 근본을 탐구하는 양자물리학자들은 이런 뜻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족보학자인지 모른다.

양자물리학자들은 “소립자라는 미시세계에 질서를 주는 자연법칙이 거대한 우주의 창조와 진화를 결정하는 자연법칙과 같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각종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할 새로운 발견도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원자 속의 ‘티끌우주’와,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서 팽창을 거듭하는 ‘거대우주’를 동시에 아우를 명쾌한 이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우주는 여전히 ‘알 수 없음’이라는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만약 실험을 통해 우리가 티끌우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면 거대우주의 탄생설화가 언젠가 밝혀질지 모른다. 20세기 초에 태동한 양자물리학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방사능의 발견이라는 하찮은 실마리에서 ‘태초의 3분간’을 재구성했듯이.

현재 미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초대형 초가속기가 완공된 뒤에는 또 다른 실마리가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가속기 안에서 충돌하는 소립자들은 물리학자들이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우주의 암호’를 던져줄 것이다. 그 암호를 누가 어떻게 풀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 의회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적자에 허덕이는 중에도 적자 개선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 가속기 건설에 큰돈을 지출키로 결의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초전도 초가속기가 우리에게 장차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은 전기를 발견했다. 그러나 19세기 사람에게 전기는 별 쓸모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전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있다. 초전도 초가속기는 다음 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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