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 없애는 ‘사회부검’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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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에세이 《강시 ·강시》 펴낸 文國鎭 박사

법의학계의 권위자 文國鎭 박사(66 ·고려대 명예교수)가 40여년간 사건현장서 행한 2천여건의 부검경험을 바탕으로 법의학 에세이 《構展 ·價展》 를 펴냈다. 독자들은 홍콩영화에 등장하여 우리에게 익숙해진, 두팔을 앞으로 내밀고 콩콩 뛰는 귀여운 價展(얼어 죽은 시신)를 연상할지 모르지만 이는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문박사가 말하는 강시는 ‘수사의 뒷전 에 밀려나 부검에서조차 소홀히 취급되고, 유족들조차 수치로 여겨 은폐하는 자살자’를 분류 한 용어이다.

사회적인 통념으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분명히 ‘자살’이다. 그러나 ‘본인의 행위’라는 이유만으로 자살로 단정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자살자에게 내리는 인권유린이다. 문박사는, 실제로는 사고사인데도 자살과 사고사의 구별이 되지 않아 빗나간 판단을 하기 쉬운 자살은 ‘빗나간 주검(構展)’으로, 자살의 내막에 계략 ·모함과 같이 ‘타살요인이 있으면 ‘어긋난 주검(價展)’으로 나누었다. “죽은 사람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본 결과가 해부학적 결과와 일치해야만 완전한 자살로 입증 된다”는 문박사는 아직도 자살 ·타살의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수면제와 진정제 중독사’라는 이유로 ‘빗나간 주검’ 의 대표적 예로, 버스회사 옥상에서 ‘삥땅 알몸 수색’에 항거했던 빛바랜 버스여차장의 투신자살 사건은 ‘어긋난 주검’으로 분류하여 죽은 자의 인권을 재조명하고 있다.

또 죽어서나마 깨끗한 몸이 되겠다고 크레졸을 마신 요정 접대부의 죽음이나, 성적 쾌감을 위해 목조르기 장난을 즐기다가 끝내 올가미를 풀지 못한 홀아비의 죽음 등 때로는 엽기적이기까지 한 51가지 자살사례를 소개해 읽는 재미 가운데 자살과 생명을 뒤돌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국내 법의학 에세이들은 문학적 향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법의학이 지니는 딱딱함을 한껏 지우면서 과학적 지식과 재미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있어 독자들에게는 가상시나리오에 불과한 탐정소설 보다‘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법의학 에세이가 법의학을 국민에게 알려 부검이 죽은 자를 또 다시 죽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사인 규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계몽하기 위해 시도된 것인 만큼 이러한 성공은 새로운 출판장르의 출현으로 해석될 정도로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다.

85년 《새튼이》를 비롯, 《배꼽의 미소》《지상아》《아마도의 실마리》 등을 펴내 에세이들을 통한 ‘법의학 알리기’에 앞장서온 문박사는 “법의학이 변시체로부터 죽은 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시체부검이 국민의 억울한 죽음을 없앤다는 맥락에서는 ‘사회부검’이라고까지 강조한다. 사실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군과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시신 부검이 각각 4 · 19 혁명과 6월 항쟁의 불을 당겨 왜곡될 뻔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학업성적이 부진해서, 임금인상을 외치다가, 사글세를 내지 못해, 장가를 가지 못 한다는 이유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세상을 하직하기 때문에 문박사는 가슴앓이가 심하다. “그 어떤 이유로도 죽음은 삶에 대한 패배이지 결코 항거가 될 수 없다”는 문박사는 이 책이 사회부검을 깨닫는 동시에 생명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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