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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시즘 소설 쏟아진다

조성기 ·하얼지씨 등 작품화 적극적… “한국 소설의 미래” “정치 허무주의” 논란

이문재 기자 ㅣ 승인 1991.09.26(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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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제 욕망이다.” ’ 91이상문학상 수상작가 조성기씨의 《우리시대의 사랑》최수철씨의 《무정부주의자의 사랑》 하일지씨의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그리고 마광수씨의 《즐거운 사라》등 최근 발간된 일련의 소설들을 살펴보면 위의 선언적 명제가 90년대 소설문학의 한 지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후기산업사회 정보화사회 대중소비사회 등으로 명명되는 ‘현대문명’의 질주 속에서 인간을 규정하는 중심개념들 가운데 욕망은 주요한 위치에 있다. 삶이란 상품화된 인간이 상품을 사고파는 것에 다름아니며, 갈수록 세련되고 은밀해지는 권력과 특히 광고가 가리키는 ‘가짜 욕망’을 따라 인간은 무반성적으로 이끌려 다닌다는 절망적인 해석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문학으로 하여금 소비사회와 인간을 매개케 하는 전략인 동시에, 생의 원인이며 에너지이고 또 하나의 목적이기도 한 에로티시즘을 수용하게 만든다. 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모성 ·사랑이 부재하는 현실 속에서 이제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하는 길, 인간이 인간과 만나는 유일한 통로는 섹스밖에 없으며, 또한 자본주의가 파생시키는 무한대의 자극들이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겨 그 욕망을 소비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소설은 성과 관련한 문제들이 엄연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에로티시즘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에로티시즘은 예나 지금이나 공식문화의 울타리 밖에서 논의돼야 했다. 그것은 권위주의와 교양주의로 무장된 ‘낮의 문화’가 아니라 ‘밤의 문화’였던 것이다. 두 문화의 향유자는 동일하지만 우리 사회는 도덕적으로 둘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있는 듯하다. 에로티시즘이란 용어가 우리말로 적확하게 번역, 통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에로티시즘의 한국적 상황’을 잘 말해준다.

80 년대 내내 민족 ·민중 문제와 사회과학적 상상력이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면서 에로티시즘은 통속소설과 영화 ·비디오 등 대중매체의 독과점 품목(‘에로물’이란 말이 쓰인다)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물론 지금도 그 영향력이 엄연한 유교적 윤리관도 에로티시즘을 공식 문화의 대열에 들지 못하도록 한 큰 빗장이었다. 80년대 후반 이른바 개량화 국면을 맞으면서도 문단과 사회는 에로티시즘에 대해 준열했다. 마광수 교수의 수필과 소설들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양쪽에서 돌을” 얻어맞았다(82쪽 인터뷰 참조).

에로티시즘 본격적으로 다루진 못해
90년대 들어 장정일씨의 중편 《아담이 눈 뜰 때》 김수경씨의 장편 《자유종》 그리고 하일지씨의 장편 《경마장 가는 길》 등의 문제작들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을 전후로, 자유주의 문학 진영 한켠의 모색과 논의들은 이 시대 욕망의 문제로 압축되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사드 ·바타이유 ·밀러 ·로렌스 ·쿤데라 등 에로티시즘을 다룬 서구 작가의 소설들이 앞 다투어 서점에 진열되기 시작했다.

《라하트 하헤렙》 《야훼의 밤》 등 기독교 세계관에 바탕한 작품세계를 선보여 왔던 조성기씨가 《우리시대의 사랑》으로 급선회한 것은 작가 자신의 표현대로 하나의 반란이며 엄숙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4편의 중편 연작으로 엮어진 《우리시대의 사랑》은 성의 사회학과 성의 심리학이 공시적 ·통시적으로 짜여져 있는 우리 시대의 성풍속도이다.

“너희 어리석은 백성은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간통이나 하고 간음이나 하고 강음이나 하다가 에이즈에 걸려라 하고 여관 허가들을 이리 많이 내주는 게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주인공과 함께 여관에 들어갔다가 파출소로 연행되었을 때 여대생이 경찰에 퍼부은 독설이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성문제 및 향락문화가 이처럼 권력의 부도덕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간파하면서 우리 시대의 여관을 “성적 금기에 대한 위반의 극대화가 이루어지는 현대의 聖所”로 해석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이 에로티시즘”이라고 규정하는 이 소설은 위와 같은 성의 사회학과 더불어 섹스를 담배 한대 피우는 것으로 여기는 여대생을 통해 기존의 권위와 가치를 모독하는 성의 심리학을 펼쳐나간다. 이 여대생의 ‘가벼운 섹스들’은 결국 에로티시즘의 본질인 모독의 쾌감, 나아가 문명 모독으로 보인다.

조성기씨의 소설이 성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와 《한중록》이라는 역사성에도 비중을 두고 있는데 비해, 마광수씨의 《즐거운 사라》는 90년대 여대생이 품고 있는 콤플렉스와 그것을 해소해나가는 다양한 풍경을 그리면서 ‘섹시신드롬’에 빠져있는 90년대의 여성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사회적이라기보다는 좀더 개인적이고 프로이드적 세계를 엿보인다.

조성기씨와 미굉수씨의 작품은 우리 사회의 성 풍조와 문제들을 반영한 세태소설로 분류된다. 문학평론가 박덕규씨는 “최근 소설이 세태를 가늠하는 척도로써 에로티시즘을 부각시키는 현상은 자연스럽다”고 말하면서 이 소설들이 “자본주의가 낳고 있는 세태를 수용해야 한다는 작가들의 태도 변화로 이해 된다”는 긍정적인 시각을 보낸다. 그러나 이 소설들은 “아직 자본주의적 삶의 구체적 현장과는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자기 확인
장정일 김수경 하일지씨의 작품들은 세태소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에로티시즘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적인 인간상’을 제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병적 인간들은, 평론가 류철균씨가 장정일씨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지적했듯이 ‘예외적 소수’들이다. 그러나 그 전형들은 “자기 집단의 본질적인 특징을 한몸에 구비한 인물”이며 그 집단들의 발전방향을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 재수생의 성장과정을 그린 장정일씨의 중편 《아담이 눈뜰 때》는 60년대 이후에 출생한 청소년 세대가 그로테스크하게 읽어낸 현대문명의 종말론적 풍경이다. 이 소설에서 섹스는 말세적 징후가 만연한 세계에서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고생 ·중년 여류화가 ·남색가 등을 만나면서 재수생은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지만 이 세계는 ‘가짜 낙원’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이 세계의 가속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작중인물과 작가가 젊어져야 할 몫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전언이다.

김수경씨의 《자유종》은 전대미문의 소설을 쓰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간 여류시인이 소설을 써나가는 과정을 그린 장편이다. 광주항쟁과 삼청교육대 등 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이 여류시인의 글쓰기와 교차되는 이 소설은 마약과 섹스 등 현실로부터 탈출하려는 몸짓들이 그려진다. 정치권력의 폭압과 그에 대항하는 변혁운동에도 찬성하지 않는 주인공의 현실인식은 환멸이다. 주인공이 전대미문의 소설에 집착하는 까닭은 전망이 없는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한 욕망인 것이다. 그 욕망은 극단적으로 섹스와 마약에 몰입하게끔 한다. 억압과 자유 사이에서의 견디기인 것이다.

지난해 말 자신의 데뷔작인 《경마장가는 길》을 놓고 두 차례 논쟁을 벌였던 하일지씨의 《경마장은 네거리에서…》는 십대소녀 연쇄강간 사건을 다루면서 성도착증 환자의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다. 《경마장가는 길》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의 새로움을 통해 이 시대 지식인의 암울한 초상을 그렸다는 찬사와 함께 주인공 R와 작가와의 거리, 즉 집필동기에 문제가 있다든 도덕성 시비 등이 최근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작가가 4권으로 펴낼 ‘경마장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경마장은 네거리에서…》는 모성을 확인하는 통로가 차단되고 진실한 사랑을 체험할 수 없는 현대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이 저마다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4부작 연작 장편 가운데 하나인 《무정부주의자의 사랑》에서 최수철씨는 위의 소설들과 같은 에로티시즘을 문제 삼으면서도 섹스와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자아를 확인하는 도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 박인홍씨는 최수철의 소설이 “반영과 드러내기의 단계에 있는 앞의 소설들에 비해 반성의 모습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모두 일곱 개의 에피소드로 엮어진 이 소설은 성과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허위의식과 자의식을 풀어낸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한 플레이보이가 만나는 여자는 침대에서는 대담하지만 옷을 입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여자는 남자와 잘 때는 으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3류 대중소설을 탐독하면서 그 소설에 세뇌당한 것이다. 지하철에서 추근대는 남성 때문에 신문팔이가 외치는 소리를 “너는 음란한 여자”리는 욕설로 받아들이는 젊은 여성이나, 외국잡지를 취급하는 서점 주인과 교회 집사가 벌이는 실랑이 같은 장면들은

“억압적 도덕률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그 억압에 대한 세심한 주의력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

지난해와 올 여름에 걸쳐 발표된 위 소설들은 최근까지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생명력’은 이 소설들의 형식실험적 요소와 욕망의 풍경들이 기왕의 소설 문법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전정구씨는 《문학정신》 9월호에서 이들의 소설을 “사건의 인과성을 따지는 깊이와 본질이라는 수직의 축을 버리고 사건의 관계성을 묻는 넓이와 현상이라는 수평의 축을 향해 나가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으로 이름지으면서 “안일한 현실해석과 미래전망”이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민중문학을 향해 “리얼리즘 자체의 문제를 떠나 리얼리즘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으로써 위 소설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형식실험과 에로티시즘에 반대하는 의견들도 만만치 않다. 계간 《사상문예 운동》 가을호에서 평론가 손경목씨는 9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양상을 진단하는 평론을 통해 김수경 장정일 하일지씨의 소설 속에 깔려 있는 세계관, 즉 “환멸과 유혹”이라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손씨는 이 소설들이 우리 시대 문학이 처한 위기상황을 전해주고는 있지만 이들의 탈정치 지향성은 “부르주아적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한 정치적 태도를 숨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치적 환멸과 허무주의가 이 시대 정서의 한 전형을 이룰수록 정치적 시선의 유지와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로티시즘을 소설 속에 녹아들게 하는 소설들은 그 소설적 성과를 논하기에 앞서 전망 부재의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작가들의 고뇌로 보인다. 에로티시즘을 다룬 소설들이 사회적 의의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은 ‘자본주의의 반인간적 폭주’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의 한 소산인 것이다. 그러나 한 평론가의 지적처럼, 욕망의 문제가 실재하는 만큼 민족 ·민중 문제 또한 그대로 작가들이 싸워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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