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그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4.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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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컬럼비아 영화사가 만든 영화 <나 홀로 집에>는 자아의 정체성, 즉 ‘나’를 찾아 떠나는 긴 여로를 보여주고 있다. <나 홀로 집에>의 꼬마 주인공 캐빈(매컬리 컬킨)은 가족들이 자기를 남겨 놓고 피서를 떠났기 때문에 홀로 남아 2명의 도둑과 전쟁을 치른다. 이 영화는 한 꼬마의 모험담, 다분히 ≪15소년 표류기≫의 현대판 각색인 활극이다.

 끊임없는 부모의 잔소리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잠시. 무료함에 지친 캐빈은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고, 아버지의 나이트 가운을 입고, 아버지의 스킨 로션(애프터 셰이빙 로션)을 바른다. 그 순간 캐빈의 입에서 터져나온 것은 악! 하는 비명이다. 캐빈의 여린 살갗에는 어른의 로션이 너무 따갑고 독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캐빈이 겪는 것은 일종의 성인식이다. 캐빈은, 어른들이 매일 아침 이렇게 살갗이 따가운 스킨 로션을 발라야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다. 그것은 캐빈에게 곧바로 세상살이에 대한 깨우침을 예고해 준다. 어른이 되는 것은, 성인이 되어 독립한다는 것은 살갗을 따갑게 하는 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아린’일인 것이다. 주인공 이름이 오두막집을 뜻하는 ‘캐빈’인 것도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오두막집, 즉 개별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말보로는 왜 담뱃값을 내렸나
 거개의 남자 아이들은 중학교에 입학하여 겨드랑이와 샅에 털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나 형들의 스킨 로션을 훔쳐 바른다. 한국의 경우 적어도 92년까지는 그랬다. 미국에서도 그것은 최근까지 마찬가지였다. 왜 그런가. 청소년을 위한 화장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에 따라 몇 년쯤 차이는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 미국의 청소년들은 마치 캐빈처럼 여전히 살갗을 따갑게 하는 아버지와 형의 로션을 발라야만 했다. 아버지의 스킨 로션이 그들에게 자아를 일깨워 줄 수 있다면 그것 이상 교훈이 없겠지만, 그들은 불평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를 위한 화장품은 나오지 않는가’.

 남자들은 턱 주변에 수염이 거뭇거뭇 자라기 시작하면서 화장품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남성용 화장품이 수염을 깎은 다음에 바르는 애프터 세이빙 로션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10여년 전만 해도 중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게 로션은 필요 없었다. 수염을 깍아야 할 만큼 발육이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청소년의 발육이 빨라 졌다는 것은 단순한 세대 특성의 변화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성세대들은 전적으로 그것을, 세상이 달라졌다는, 새 세상이 다가오고 있거나 이미 와 있다는 전조로 받아들여야 마땅했다.

 93년 4월2일. 금요일.
 미국의 말보로 담배회사는 담뱃값을 절반으로 내려 팔기 시작했다. 온 미국이 경악했다. ‘도대체 말보로가 어째서 저 지경이 되었을까’. 미국의 경우 말보로 담배는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말보로 맨>이라는 영화까지 나올 정도로 서부 개척사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역사의 상징적 존재이다. 상표 가치로 볼 때 말보로는 미국의 수많은 상표 가운데 선두를 달리는 것이었다. 말보로의 상표 가치는 무려 3백96억달러에 해당했다.

 말보로는 왜 담뱃값을 내렸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담배가 팔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성세대에서 금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혹은 그 이전부터 담배를 배우는 새로운 수요층이 생겨나는데도 판매량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어찌 되었건 말보로는 시장 방어에 실패했다. 그래서 가격 인하라는 고육지책을 선택했다.

‘모호한 신세대’ 이름이 된 소설 제목
 문제는 말보로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보로 프라이데이(Malboro Friday)'라고 지칭한 충격적 가격 인하 현상이 다른 상품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인텔 컴퓨터도, 코카콜라도 더 이상 잘 팔리지 않았다. 마스터 카드도 고전적 분위기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강조한, 그래서 이 신용카드만 있으면 이런 신분이 될 수도 있다는 ‘허위의식’을 조장하던 광고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음을 깨달았다. 전통의 올드 스파이스도 18세기적 풍류의 범선 대신 날렵한 요트를 등장시킨 광고로 대치해야만 했다. 그전에는 기업의 이미지만 잘 가꾸어 주면 상품은 저절로 팔리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제서야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새로운 수요층, 즉 새로 등장한 세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왜 그들에게는 상품 구매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왜 그들에게는 기존의 광고 혹은 판매 전략이 먹히지 않을까’하고.

 90년 캐나다의 더글라스 커플랜드라는 젊은이가 ≪X세대(X Generation)≫ 라는 소설을 펴냈다. 61년 12월30일 서독 바덴 쇨ㆍ겐 지역의 나토 캐나다기지에서 태어난 이 젊은이가 쓴 ≪X세대≫는 6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 3명의 이야기다. 생에 대한 의욕과 방향을 상실하고 방황하다가, 답답하고 단조로운 고향에서의 생활을 벗어나 캘리포니아 주 외진 사막으로 탈출한 그들이, 구속의 끈을 풀어 던져버리고 서로의 좌절과 번민을 밤낮 없이 토론 하는 내용이다.

 출간 당시만 해도 이 소설은 주목받지 못했다. 소설이 관심을 끈 것은 바로 ‘말보로의 금요일’이 벌어진 다음이었다.
 소비 시장의 전면에 새로 등장한 신세대를 연구하던 대기업 마케팅 담당자나 광고제작자, 매스컴 종사자들은 뭐라고 딱히 규정할 수 없는 명확하게 잘 파악되지 않는 이 정체불명의 세대, 아마도 이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것이 틀림없는 새 세대를 과연 뭐라 부를까 고민했다.

 그 무렵에 미국에서는 ‘트웬티 썸싱(Twenty Something)’ '굼벵이들(Slackers)’ ‘베이비 부스터(Baby Buster)' ’맥 잡(Mac Job : 고학력자들의 범람으로 석사 출신들도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 같은 천한 곳에서 일해야 하는 세대를 일컬음) 같은 단어가 새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로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단어들이 완벽하게 새 세대를 표현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인가 새로운 단어의 출현을 갈망했다. 바로 그 때 소설 ≪X 세대≫가 그들의 눈에 띄었다. 매스컴은 거의 열광적인 기쁨으로 ‘X세대’를 차용해 새 세대를 지칭하기 시작했다. ‘X세대’라는 단어야말로 무엇인지 모호해서 잡히지 않는 세대를 묘사하는데 최적격이었던 것이다.

 93년 11월23일.
 이 날 한국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낯선 광고 한 편을 보았다. 방송3사의 전파를 통해 처음으로 일제히 안방에 침투한 새로운 광고는 태평양화학에서 내놓은 신세대 화장품 ‘아모레 트윈 엑스’였다.
 많은 사람이, 특히 30대 이상의 대다수 기성세대가 의아심을 가졌다. ‘도대체 무슨 광고가 저 모양이냐’하고. 그러나 새 세대는 그 광고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아모레 트윈 엑스에 모델로 등장한 탤런트 이병헌과 가수 김원준에 매료돼 있는 세대이기도 했다.

 아모레 트윈 엑스가 처음부터 ‘트윈 엑스’는 아니었다. 이 광고를 제작한 동방기획은 기획 단계에서는 물론 ‘엑스’자체를 상품명으로 삼았다. 그들은 미국에서 ‘X세대론’을 기민하게 수입했다. 그러나 상품명에 곧장 ‘엑스’를 쓰고자 했던 동방기획의 의도는 기획으로만 그쳤다. 광고 제작팀은 혹시나 ‘엑스’라는 표현이 광고심의에 걸릴까 걱정해 방송광고 심의실에 사전 탐지를 해보았고 역시 ‘안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 이유는 ‘엑스’라는 단어가 권위에 대한 저항ㆍ부정 같은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트윈 엑스’는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광고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일종의 편법이었던 셈이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 같다’
 여기에 얽힌 일화가 또 있다. 동방기획이 광고주인 태평양화학 간부진 앞에서 시사회를 가졌을 때, 15초ㆍ 20초ㆍ 30초대 텔레비전 광고를 모두 보여주고 난 다음의 분위기는 일제히 침묵, 바로 그것이었다. 50대를 넘긴 그들로서는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조각난 화면들, 천장에 매달린 전구가 박살나는 장면이라든지 샌드백이 흔들리는 모습, 십자가 목걸이가 떨어지는 장면과 한 건물에서 비둘기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풍경을 조합한 것이, 그것도 컬러가 아닌 흑백 장면들이 화장품 광고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파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개중에는 ‘저게 무슨 광고야!’하고 소리친 사람도 있었다.

 한참 후에야 한 책임자가 대졸출신으로 20대 후반~30대 초반인 비교적 젊은 사원들을 수십명 불러서 광고를 보여주었다.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이번에는 10대 후반~20대 초반 ‘어린’ 사원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 같다’.

 태평양화학은 바로 이 말에 회사의 명운을 걸었다. 태평양화학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 같다’라는 말만을 믿고 모험을 단행했다. 바로 그들이 새 상품의 주요 타깃이었으므로.

 그 도박에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해서 18세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일찍이 소설의 주요 기법으로 동원했던 ‘낯설게 하기’는 20세기말에 광고기법으로서 찬란하게 부활했다.
 이 광고를 만든 동방기획의 김상중 차장은 이렇게 말한다. “화장품 시장에서 태평양화학의 아성은 굳건했다. 아무도 이 아성에 도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럭키금성이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고 나서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서서히 잠식하더니 마침내 추월할 기세를 보였다. 그 위기에서 구출해준 것이 바로 트윈 엑스 였다. ‘트윈 엑스’ 광고가 나간 이후로 주문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태평양화학은 다시 안정기를 찾았다. 우리는 X세대에게 그들에 걸맞는 화장품을 선물했다고 생각한다.“

 새 세대에 새로운 화장품은 분명 선물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스킨을 바르고 놀라 외치는 캐빈이 아니어도 좋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극동의 한반도 남쪽에 뜬금없이 X세대라는 낱말이 창궐하게 된 역사이다. 새로운 사회사의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도 X세대라는 단어는 놀랄만한 전파력을 가지고 퍼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부터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해되는 되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
 그 첫째는, 미국이 아닌 한국땅에 과연 X세대가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또 존재한다면 그 실체가 무엇이며, 왜 갑자기 사회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냐는 것이다.

 X세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상당수 사람들은 말한다.‘X세대가 어디 있느냐, 광고만 있을 따름이지‘라고 또 이렇게도 말한다. '끊임없이 소비 상품을 만들고 읽을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언론이 독자에게 팔아먹을 새 대상을 구한 것이다'라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학구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이런 정의도 나온다 ’X세대는 없다. 다만 X세대 담론만 있을 뿐이다.‘

 과연 X세대는 허구인가. 실체가 있지도 않은 유령으로서 하나의 세대가 창출된 것인가.(이상의 물음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52쪽 X세대 비평가들의 좌담 참조)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얼마간의 타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 광고회사 제일기획의 이재철 이사는 “광고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X세대가 허상이거나 인위적으로 창출된 세대가 아니며,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스스로 형성된 세대라는 말과 다름없다.

 결론은 이렇다. X세대는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왜 이런 애매한 결론밖에 내릴 수 없는가. 그 첫째 이유로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수용되는 세대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는 세대에 대한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신세대 혹은 신인류라고 해서, 그 또래 집단 구성원 모두가 그 세대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히피나 여피 물결이 드셌을 때 그 세대의 모두가 그 이념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로 X세대는 그 특질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대략의 흐름, 공통적인 특질은 있지만 한마디로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대 논쟁에 동원되는 기존의 관념들, 반드시 한 가지 일치되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신봉하는 자들에게는 X세대란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파편화한 특질만으로도 한 세대를 설명할 수 있다고, 그야말로 포스트모더니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X세대가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또 하나. 61년생 서울 출신 시인 최영미의 시집 제목이 상징하는 것이 있다. 바로‘서른, 잔치는 끝났다’이다. 이제 나이가 서른이 넘으면서 모든 잔치는 끝나는 것이다. 잔치는 10대와 20대의 몫이다. 30대 이상에게 잔치는 이미 끝났고, 후배들의 잔치를 구경하는 도리밖에 없다. 사이다 한 병만 있으면 족했던 어린 시절을 통과한 30대 이상 집단에게 후배들의 잔치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것과 그 세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의미이다.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나이 어린 작가들을 배출해 온 작가세계 문학상은 최근 제3회 문학상에서도 70년생 대학생 김연수를 3천만원 고료의 당선작으로 뽑았다. 그는 작품 후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소설을 나와 함께 뉴 트롤즈의 아디지오를 들으며, 87년 대통령 선거를 투표권이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고, <영웅본색> <개 같은 내 인생> <천국보다 낯선>의 순으로 영화를 보았던 나의 세대에게 바친다’. 김연수의 이 후기는 결국 ‘X세대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한 부분을 표현해 주고 있다.

 문학사에 25세 작가가 등장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최인호도 스물이 되기 전인 고등학교 시절에 신춘문예를 통과했다. 그러나 당시의 최인호는 아주 독특한 한 예였다. 지금의 김연수는 특출난 한 경우가 아니라, X세대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하는 한 전조, 전위로 느껴진다. 최인호와 김연수 사이의 문화적 층위는 매우 넓다. 가장 보수적 예술 장르인 문학에서도 이른바 X세대의 입김이 거세지려는 조짐은 벌써 싹트고 있는 것이다.

 여기, 고고한 울림으로 모든 세대에게 경종을 울리는, X세대를 위한 잠언이 하나 있다.  청바지 써지오 바렌테의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광고에서 대사는 단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흑백 화면의 ‘롱 테이크’가 이어질 뿐이다.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는 것은 <달의 어두운 부분>으로 ‘언더 그라운드’를 진동시켰던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고함이다.

 이 광고는 세기말의 조류를 반영하는 SF 영화 <에일리언 3>나 <블레이드 러너> <토털 리콜>에서 등장했던, 공해에 찌든 암울한 미래를 상징하는 거대한 환풍기가 천천히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앞 천장에서 청바지 하나가 천천히 떨어진다. 카메라는 그 청바지만을 길게 길게, 긴 호흡으로 아주 천천히 보여준다. 이윽고 청바지는 바닥에 떨어지고 자막이 하나 나오면서 광고는 끝난다.
 자막에 쓰여진 글귀.
 ‘이유를 묻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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