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개인 자유가 최고 덕목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4.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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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주의 이념과 역사/낙태 반대 운동?레이건 당선 계기로 대중화 성공

당신은 신을 믿는가? 설령 신을 믿지 않아도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경멸하지는 않는가?  당신은 반공주의자인가? 당신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정부의 역할은 되도록이면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는가? 당신은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하며 종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믿는가? 당신은 자신의 희생을 담보한 경제적 평등을 반대하는가?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를 담고 있는 이같은 물음에 서슴없이 동의한다면 당신은 이미 미국적 기준의 보수주의자에 속한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의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와 함께 현실 정치에 깊숙이 파고들어 큰 영향을 끼쳐온 살아 있는 정치 철학이다. 보수주의 철학을 정강 기조로 삼고 있는 정치 조직이 바로 미국 공화당이다. 특히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권 추구를 보장한 독립선언서와 헌법의 정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미국 역사와 뿌리를 같이해 왔다.

 보수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 보수주의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윌리엄 버클리조차도 언젠가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기독교 사상을 단 한마디로 대답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해서 이를 정의할 수 없음을 뜻하진 않는다”라고 우회적으로 답변한 바 있다.

전통주의, 자유파, 신보수주의로 삼분

 50년대에 유명한 보수주의 학자였던 러셀커크는 《보수주의 정신》이라는 저서에서 보수주의의 특징을 여섯 가지 들었다. 첫째, 사회나 양심을 지배하는 것은 신의 의도라는 믿음이다. 둘째, 전통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이다. 셋째, 문명 사회는 위계질서가 필요하며 진정한 평등은 도덕적 평등이라는 확신이다. 넷째, 사유 재산과 개인의 자유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따라서 경제적 평등은 경제적 진보가 아니라는 믿음이다. 다섯째, 전통을 존중하고 선현의 지혜를 본받아야 인간의 무정부적 충동심을 억제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여섯째, 혁신이란 진보의 횃불이 아니라 종종 모든 것을 단숨에 파괴할 수도 있는 화염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커크를 비롯한 대다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 보수주의의 뿌리를 18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에게서 찾고 있다. 버크는 1789년 시작된 프랑스혁명의 열기가 온 유럽에 퍼지려 하자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란 장문의 논문을 통해, 프랑스혁명이 내포한 과격성과 급진성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것이 당시 유럽의 왕정 질서에 미칠 해악을 날카롭게 경고했다. 한 나라의 전통이나 제도는 누대에 걸쳐 선현들이 쌓아온 지혜와 경험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경멸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버크의 전통주의적 세계관에 뿌리를 둔 미국의 보수주의는 상황 변천에 따라 오늘날 세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우선 버크식 전통주의파(traditionalist)가 하나이고,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유 방임주의를 주장한 자유파(libertarianism)가 다른 하나이며, 60년대 말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신보수주의 (neo-conservatism)가 나머지 하나이다.

 보수주의 학자인 찰스 케슬러에 따르면 원래 한 가닥이었던 보수주의가 이처럼 세 분파로 나뉜 까닭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침해, 그리고 60년대에 일기 시작한 신좌익(New Left) 세력의 급진 운동에 관한 대응 방식을 놓고 보수주의 세력 간에 이합 집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통주의파 보수주의자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러셀 커크, 조지 윌, 에드워드 밴필드, 윌리엄 버클리를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미국 여론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조지 윌이다. 이미 26세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윌은 73년부터 〈워싱턴 포스트〉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1년 뒤에는 《뉴스위크》의 고정 칼럼니스트로서 날카로운 필력을 과시해왔다. 또 수년 전부터는 ABC 방송의 정치 해설가이자 이 방송의 시사해설 프로인 〈금주를 데이빗 브링클리와 함께〉의 고정 출연자로 나서 안방에도 친숙한 편이다. 윌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하며, 자유주의의 주요 가치인 기회의 평등과 정의를 오히려 보수주의의 진정한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 정통 보수주의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윌리엄 버클리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거목으로 꼽힌다. 그는 55년에 창간된 이래 보수 여론을 주도해온 《내셔널 리뷰》의 대표편집인으로 있으면서 보수주의 사상을 일반대중에 널리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로를 끼쳤다. 그는 한때 정치에 관심을 품고 65년 뉴욕 시장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주로 경제 분야에서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자유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밀튼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리처드 포스너를 꼽는다. 자유파는 정부가 개인의 자유?권리를 침범해서는 안되며, 정부는 경쟁에서 제반 규칙이 공정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감시하는 ‘중재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프리드먼이 대표 주자다.

 관념의 세계에 안주해 온 대다수 전통주의파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현실 정치에 깊숙이 참여해 보수주의 운동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60년대 말부터 움트기 시작한 사조가 신보수주의이다. 어빙 크리스톨, 리처드 파이프스, 진 커크패트릭, 마이클 노박, 노먼 포드호레츠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정치?사회?경제?외교 문제 전반에 걸쳐 사려 깊은 논지를 펴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특히 이들은 《카멘터리》《퍼블릭 인터레스트》《내셔널 인터레스트》《뉴 리퍼블릭》과 같은 잡지들을 통해 의견을 개진해 역대 행정부가 정책을 세우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이들 가운데 특히 눈여겨볼 사람은 신보수주의자의 선두 주자인 어빙 크리스톨이다. 뉴욕 대학 경영대학원 사회사상 교수이자  《퍼블릭 인터레스트》공동 편집인이기도 한 크리스톨은, 지난 40년 동안 갖가지 국내 문제와 외교 문제에 관해 예리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해 워싱턴 정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는 물질만능주의가 가속화할수록 인간성 회복을 위해 종교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민주당 집권으로 ‘보수 혁명’미완

 원래 현실지향적인 미국인들은 보수주의 같은 정치 사상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이들을 단숨에 보수주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사건이 73년 미국 대법원이 내린 낙태 합법판결과 80년 레이건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일이다. ‘로우-웨이드’라 불리는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낙태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므로 주 정부는 낙태 금지에 관한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이 나자마자 미 전역은 보수주의파 시민의 ‘낙태반대’ 물결에 휩싸였다. 낙태를 합헌이라고 판결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보수주의 세력의 집중 공격 목표이자 미국 사회의 폭발성 현안으로 남아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 출신으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물론 배리 골드워터 전 상원의원이 60년대에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라는 책을 펴내 보수주의 사상의 ‘대중화’에 성공한 선례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실패한 골드워터와 달리 레이건은 집권 8년 동안 △정부 규모 축소 △행정 분산화 △자유시장 경제체제 강화 △관료 권한 축소 등 보수주의 정책들을 실천해 80년대 미국 사회에 보수주의의 꽃을 피운 주인공이다.

 오늘날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레이건 시대에 시작한 ‘보수 혁명’이 완결되지 못한 채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간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여론 정치의 나라인 미국에서 보수주의 같은 정치 철학이 현실 정치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E.J. 디온이 “오늘날 미국민이 정치를 혐오하게 된 배경에는 국민적 관심사가 보수주의 아니면 자유주의로 갈라져 국론이 분열됐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정치 철학의 부정적 이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卞昌燮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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