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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잡아라”…위성방송 골드러시

홍콩 .조용준 기자 ㅣ 승인 1994.06.0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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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운명은 기이하다. 1840년 발발한 아편전쟁의 상흔은 오는 97년 홍콩이 중국에 다시 넘어가도 여전히 존속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홍콩이 다시 아시아권에서 새로운 ‘우주 전쟁’의 시발점이자 메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을 제일 먼저 ‘침략’한 자본은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이 아니라 그의 후계자 호주다.

 90년 3월 홍콩의 허치슨 왐포아사가 방송용 인공위성 아시아세트(AsiaSat) 1호를 싱가포르 상공에 쏘아올린 것이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별들의 전쟁’의 기원이다. 진격 명령을 제일 먼저 내린 사람은 홍콩 제일의 갑부이며 허치슨 그룹 회장인 이가성(李嘉誠). 이가성은 아시아에서 어느 누구도 위성을 이용한 상업 방송의 위력에 눈을 뜨기 전에 위성을 이용한 돈벌이에 착안했다. 사람들이 ‘미친 짓’을 한다고 이가성을 비웃었지만, 91년 9월 이가성은 스타TV라는 이름으로 음악 . 스포츠 . 뉴스 등 5개 채널의 방송 송출을 시작했고, 곧바로 홍콩 영화 스타 유덕화처럼 아시아 방송계의 ‘지존’이 되었다.

 93년 7월 호주의 세계적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스타TV의 주식 64%를 5억2천5백만달러에 사들였다. 머독은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당시 주식 시세의 6배를 달라는 이가성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가성은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벌었다.

 방송은 무엇인가. 언론인가? 아니다. 단지 산업일 뿐이다. 그것도 막대한 이익이 보장되는 미래형 산업일 따름이다. 바로 이것이 이가성의 생각이었다.

 영국의 BBC는 2주 전 피어슨 그룹과 동맹을 맺었다. 피어슨 그룹은 어떤 회사인가.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 펭귄 출판사 . 테임스 TV 그리고 머독이 소유한 B스카이 B방송의 주식 17.5%를 소유한 언론재벌이다. 그러면서 머독에게 선수를 빼앗겨 스타TV를 사들이는 데 실패한 회사이다.

 피어슨 그룹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 출신인 머독에게 스타TV를 빼앗긴 사실로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더군다나 머독은 올해 4월20일부터 스타TV의 BBC 뉴스 서비스를 중단시켜 버렸다. 이는 바로 97년 홍콩 반환을 둘러싼 영국과 중국 사이의 정치적 알력을 반영한 것이었고, 97년 이후에도 ‘중국령 홍콩’에서 사업 기반을 지속하기 위한 머독의 장기 포석이었다.

 중국은 웃었지만 영국은 울었다. 어쨌든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BBC는 지난 60년 동안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피어슨의 재력이 필요했고, 머독에 대항할 새로운 위성방송의 필요성을 절감한 피어슨은 BBC의 명성과 뉴스 서비스가 필요했다. 그들은 또한 머독 때문에 구겨진 자존심을 서로 달래주면서 절치부심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동맹을 맺었다. 피어슨은 BBC 상표의 새 위성방송 2개 채널을 만드는 데 1차로 3천만파운드(약 3백5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방송은 소비를 위한 생산”
 이런 대단위 계획을 성사시킨 사람이 BBC 대표이사 봅 필리스이다. 봅 필리스는 방송 혹은 BBC라는 이름 자체를 ‘브랜드(상표)’‘생산품’‘소프트웨어’라고 바꿔 표현한다. 그는 영국 <가디언>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BBC의 이름? 명성? 그것은 하나의 상표이다. 나는 채널에 대해 말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생산품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것은 채널이 곧 시장을 위한 생산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채널이라는 말에 더 안락한 느낌을 갖는다면 그렇게 쓰겠지만, 내게는 문제되지 않는다.”

 스타TV가 이가성에게서 머독으로 넘어간 것은, 단순한 소유주 이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제2의 남경 조약, 곧 동양 시장에 대한 서양 거대 자본의 침입을 의미한다. 동양의 상업용 오락방송이 서양 자본에 장악된 채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바로 홍콩 앞바다에서 벌어졌던 아편전쟁은 총과 대포로 치러졌지만, 그로부터 1백50년이 지난 94년의 뉴 미디어 전쟁은 형체도 없는 전파에 의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머독의 스타TV 인수는 사실 전주곡에 불과했다.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뉴스 코퍼레이션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제 방송계의 ‘무뢰한’들이 아시아 시장으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슈퍼 채널’이 바로 그것이다.

 슈퍼 채널은 5대 무뢰한, 즉 CNN의 모기업인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즈(TBS),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을 소유한 캐피털 시티즈, <타임>과 워너 브러더스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는 타임워너 그룹, 싱가포르에 있는 영화전문 채널 HBO(Home Box Office : 타임워너와 파라마운트 커뮤니케이션의 합작회사),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에다 홍콩의 TV-B, 싱가포르의 아시아 비즈니스 뉴스(ABN : 뉴욕의 다우존스사 제공), 호주 방송이 가세한 다국적 컨소시엄이다. 국제 기업연합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가공할 이 집단은 올해 하반기부터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선다.

아시아 . 유럽이 같은 전파 생활권에
 따라서 올 하반기만 되면 이들의 폭발적인 위력이 아시아 전역을 휩쓸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모든 비용을 대서 만든 앱스타(Apstar) 1호 위성이 오는 7월에, 앱스타 2호가 오는 12월에 각각 연속으로 쏘아 올려질 계획이기 때문이다. 불과 몇 개월 뒤의 상황이다. 적어도 2개의 위성을 장착하는 앱스타 1호는 중국 . 한국 . 일본 . 대만과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영향권에 두게 된다. 2호는 훨씬 강력한 성능을 지니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는데, 전파가 미치는 범위는 동서가 유럽부터 일본까지, 남북이 북아시아부터 호주까지이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만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이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들 다섯 회사 가운데서도 타임워너 그룹의 야심은 더욱 대단하다. 자회사 워너뮤직과 타임워너 엔터테인먼트는 앱스타 2호 위성에 독자적인 채널을 마련했다. 컨소시엄은 컨소시엄이고 독립적인 영업은 따로 한다는 계산이다.

 CNN이라고 해서 따로 영업 전략을 구상하지 않을 리 없다. CNN은 우선 4백만달러를 투자해 올해까지 홍콩에 아시아 프로그램 제작국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CNN 월드뉴스는 기존 뉴욕 . 도쿄 공조 체제에서 뉴욕 . 홍콩 공동앵커 체제로 전환된다. 비즈니스 아시아 프로그램도 홍콩에서 일괄 제작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왜 아시아에 몰려오는가. 세계 언론 메이저들 사이에서 왜 ‘아시아 러시’가 이뤄지고 있는가. 아시아는 서부 개척 시절의 캘리포니아처럼 골드 러시를 이룰 만한 시장인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전제 조건으로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한 스타TV의 한 책임자는 “모독이 스타TV를 인수한 까닭은 전세계에 네트워크를 가졌는데 아시아만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분명하게 답했다. 이 말은 곧 머독의 눈에도 아시아가 황금 시장으로 비쳤기 때문이라는 표현과 다르지 않다.

인구 30억 아시아는 세계 최대 상권
 이 책임자는 “머독이 인수한 다음 스타TV의 전략에 세 가지 방침이 새로 정해졌다”고 밝혔다. 첫째는 ‘더 지역화한다’는 것이다. 즉 프로그램 공급과 제작에서 보다 아시아인의 정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아시아인의 대다수가 서양의 오페라처럼 ‘고급한 것’보다는 아시아적 정감이 어린 연속극처럼 ‘고만고만한 것’에 더 호감을 가진다는 자체 조사에 따른 것이다.

 둘째는 ‘서로 다른 언어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 책임자는 “아시아인의 대다수가 아직 영어를 모른다.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라고 설명했다. 이는 CNN이나 M-TV가 중국어 방송 및 기타 언어(한국어 . 일어) 자막처리 방식을 계획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 번째가 지금처럼 무료로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프리 투 에어(free to air)’에서 돈을 내는 ‘페이 텔레비전 (pay TV) ’ 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스타TV 이외에 CNN . M-TV가 중국어 방송을 확정지은 것은 중국의 12억 인구 때문이다. 여기에다 동남아권을 더하면 시청 인구 30억명이라는 세계 최대 황금 상권이 바로 아시아인 것이다. 더구나 아시아에는 싱가포르 . 대만 . 인도네시아 . 말레이시아 . 태국 등 급속히 경제적 진전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이 몰려 있다. 이들 나라들이 앞으로 세계 최대의 상품 시장과 문화향수권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스타TV의 관계자는 “중국시장이 산술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회사 차원에서 아직 계산해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순 산출 차원을 넘어서는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국시장에 대해서도 “매우 가능성 있는 시장으로, 꾸준하게 관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한국 및 중국 시장의 스타TV 성장률은 도표 참보).

 그렇다면 아시아 각국은 이러한 ‘서양의 돌진’을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명암은 대비된다. 중국은 최근 외국 위성방송을 수신하기 위한 파라볼라 안테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이는 공안부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하늘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전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 방법이었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서양의 방송장악 목적은 정보 조작?
 5월 17일 말레이시아의 비나리앙사는 미국 제너럴 모터스의 자회사인 허지항공 .  GM 허지 일렉트로닉스사와 인공위성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위성 이름은 미새트(MeaSat . Malaysia East Asia Satellite) 1호.

 96년말 가동할 예정인 이 위성은 2개의 위성 시스템으로 동남아시아 전역을 커버하게 되는데 건립 비용만 10억 링깃(약 3천억원)이 소요된다. 비나리앙사의 아낭다 크리쉬낭 회장은 “앞으로 4년에 걸쳐 국내 . 국제용 텔레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건립에 25억 링깃(약 7천5백억원)을 투자하겠다”라고 밝혔다.

 크리쉬낭이 위성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는 경제적 이익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쉬낭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총리와 평소 절친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마하티르 총리가 서양에 지배되고 있는 위성방송 사업에 참여할 것을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하티르 총리는 머독이 스타TV를 사들일 때도 “정보조작 이외에 무슨 이유가 있겠느냐”라고 노골적인 논평을 내놓으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따라서 비나리앙사의 위성 사업 시작은 서양 자본에 지배되는 위성 사업에 맞서 자구책을 세우려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마스터 플랜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마하티르 총리는 비나리앙사의 위성 계약 체결과 관련해 “비나리앙은 진실로 아시아적인 방송 네트워크를 세워 우리의 문화적 원형을 보존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76년 팔라파 (Palapa) A와 83년 팔라파 B2를 쏘아올려 아시아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영업해 왔다. 이 위성들은 모든 채널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95년 초에 팔라파 C를 띄울 예정이다. 이 위성의 채널 33개 가운데 8개는 스타TV가 이미 임대 계약을 마쳤다. 태국의 탁신 시나와트라사도 93년 타이콤(Thaicom) 1호를 띄운 데 이어 2000년까지 5개의 위성을 추가로 발사할 계획이다.

 지난 3월 홍콩에서는 ‘94 범아시아 위성 . 케이블 텔레비전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아시아새트 등 6개 위성 회사 대표들은 96년까지 아시아 상공을 도는 위성이 40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현재는 16개). 그러나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오는 2000년까지는 많게는 80개, 적게는 50개의 상업방송용 인공위성이 추가로 쏘아올려지게 된다. 이 위성들의 채널을 합하면 무려 1천2백여 개에 이른다. 이중 한국에서 받아볼 수 있는 채널만 1백60여 개에 달한다.


방송은 국가의 기간산업
 이런 현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한 가지 사실은, 방송은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위성 산업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홍콩 총영사관의 李成彦 공보담당 영사는 이렇게 말한다.

 “작년 연말 홍콩 와프(Wharf) 케이블 텔레비전의 창립식이 있었다. 거기서 와프 사장은 자본의 투자와 고용 창출이라는 산업 논리를 이야기했다. 그는 케이블 텔레비전이 바로 산업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와프가 생길 때 홍콩의 A-TV와 TV-B가 크게 반발했다. 자기네 방송사의 이익이 줄어 들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콩정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홍콩정청은 ‘케이블 텔레비전 때문에 쓰러질 정도로 허약한 회사라면 차라리 쓰러지는 것이 낫다. 지상파 방송을 하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입장이었다. 경쟁력을 가진 방송만이 살아 남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문해 보아야 한다. 방송이 어째서 언론인가? 뉴스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방송은 국가의 기간 산업이다.”

 아시아 하늘에 위성들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별들의 전쟁’을 쳐다보는 한국의 처지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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