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총명한가 아둔한가
  •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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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문가 “단편적 일화로는 판단 일러” · · · 정치 · 언론인 독대 전무

김정일 서기는 일본에서도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아직껏 그를 단독으로 만나본 정치가나 언론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상옥 · 최은희 부부가 그들의 책에서 묘사한 ‘김정일 상’이 일본의 상식처럼 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노동당의 최대 우당임을 자처해온 사회당 역시 김정일 서기를 독대한 정치가가 아직 없다. 예를 들어 도이 다카코(土?多?子) 전 위원장(현 중의원 의장)이나 다나베 마코도(田?誠) 전 부위원장이 방북했을 때 김서기와 면담을 희망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바쁘다는 이유에서였다.

 일 · 북한 관계의 담벽을 허물엇다는 가네마루 신(金?信) 전 자민당 부총재도 90년 9월 김서기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일 · 조우호의원연맹 회장으로 91년 6월 방북단 3백명을 이끌고 평양에 갔던 이시이 하지메(石?一)의원(현 신생당 소속)은 김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김서기와 면담을 요청했으나 ‘지방 출장중’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다.

 이처럼 외부와 접촉을 꺼리던 김서기도 2년 전 김주석의 80회 생일을 축하하는 오찬회에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는 1백50여 명에 이르는 자민 · 사회당 축하사절단이 초대되었는데 뜻밖에 김서기가 일본 정치인들을 맞이한 것이다.

 굽 높은 구두에 뒷짐을 진 채 등장한 김서기가 일본의 축하사절단을 접견하면서 말을 건넨 유일한 인물은 가네마루 신의 차남 가네마루 신고(金?信吾)였다. 신고씨는 가네마루의 밀사로 수 차례 평양을 방문했던 인물이다. 김서기는 신고씨의 손을 굳게 잡으며 몇 마디 말을 건넸다고 전해진다.

 그 때 김서기를 옆에서 직접 지켜본 또 다른 인물이 있다. 금강산개발무역의 박경윤 대표이다. 재미교포인 그는 김서기 측근이 뒷받침해 북한에 진출한 여류 사업가이다. 그는 오찬회에서 우연히 김서기와 맞은편에 앉았다. 박대표는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자 김서기가 직접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가져오라고 지시하는 등 자상한 일면을 보였다”라고 전한다.

 지금까지 김서기를 장시간 독대한 유일한 외국인은 이탈리아 사업가 카를로 바에리씨다. 바에리씨는 92년 9월28일 김서기와 5시간 남짓 보트 유람을 했다.

 바에리씨가 김서기의 단독 초청을 받게 된것은, 영국의 미드랜드 은행 등을 통해 1억달러를 북한에 융자해준 데 이어 이탈리아 수출입은행을 통해 5억달러 융자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에리씨는 이런 공적으로 91년 8월부터 세 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주석으로부터 ‘우호 공로상’까지 받았다.

 군사 · 경제 고문과 통역관을 대동한 김서기가 바에리씨를 맞은 곳은 어느 해변의 초대소이다. 바에리씨는 법률 고문과 두 아들을 대동했다. 두 사람은 대형 보트를 타고 식사를 마친 뒤 낚시를 했다고 전해진다.

 한달 뒤 <요미우리 신문> <산케이 신문>이 바에리를 직접 만나 전한 바에 따르면, 그 때 두 사람의 화제는 주로 경제문제였다고 한다. 김서기는 주로 듣는 편이었으며 바에리씨의 말을 가로채거나 열변을 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 마침 화제가 미국으로 번지자 김서기는 “우리는 우호적 · 협력적으로 사귈 것이다. 미국측에도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미국을 비난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서기는 바에리씨와 헤어지면서 “둘이 나눈 대화를 외부에 공개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기념 촬영을 권유하고 그 사진을 공개하는 것을 허락했다 한다.
 
일본에서도 ‘왕세자가 총명한가, 무능한가’하는 논의가 있다. 북한의 김정일 서기가 어느 쪽인가는 이런 단펵적 일화만으로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일본에 있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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