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임진출 ‘눈물의 호소’ 현경자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7.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궐선거 여성 후보 2명의 ‘당선 전략’

제헌국회 때부터 우리나라 헌정사를 통틀어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 당성된 여성은 7명뿐이다. 13 · 14대 총선 때는 1명도 당선하지 못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활동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지만 경제만은 예외이다.

 8월2일 실시할 예정인 보궐선거에는 한꺼번에 2명의 여성이 후보로 나선다. 주인공은 경주의 임진출(민자), 대구 수성 갑의 현경자(신민) 공천자이다. 임씨는 여당 후보이고 박철언 전 의원의 부인 현씨는 이른바 대구 · 경북 정서를 등에 업고 있어 모두 경쟁의 선두 대열에 서 있다. 본선거도 아닌 보궐선거에서 한꺼번에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 2명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처지가 크게 다르지만 두 사람의 당선 여부는 앞으로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민자당은 다가올 지방자치선거와 총선에서 여성을 대거 공천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데 임씨는 그 첫 주자인 셈이다. 임시가 무난히 당선하면 여성의 정계 진출 문은 그만큼 더 열릴 것으로 보인다.

 대구 수성 갑의 선거 결과는 여야 모두에게 큰 관심이다. 보수적인 대구 유권자들이 여성인 현경자씨에게 표를 몰아주면 대구 인심은 민자당에서 완전히 돌아섰다는 얘기가 된다. 민자당은 대구 민심을 되돌릴 방안을, 야권은 대구 유권자를 완전하게 품에 안을 방도를 찾기 위해 한층 분주해질 것이다.

 임진출씨(53)는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정치판에서 자수성가한 경우이다. 10 · 13 · 14대에 이어 이번에 내번째 출마한다. 경주여자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경주에서 활동해와 지역 기반이 탄탄하다. 14대 때는 국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작고한 서수종 의원에게 1천2백표 차로 졌다. 민자당은 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었다는 이유로 임씨를 공천 대상자에서 제쳐놓았다가 수 차례 지역 여론을 정밀하게 조사한 뒤 임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중앙 정계 거물과의 인맥이나 여성정치인에 대한 배려 차원이 아니고 자력으로 공천권을 따낸 것이다.

임진출, 박정희 선거 도운 전형적 보수파
 지난 대구 동을 보궐선거에서 지역을 철저하게 잘 관리해온 서 훈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와 민자당 후보에 압승했던 예를 들어 “경주도 경북인데 차라리 무소속 후보로 나오지 그랬느냐”고 묻자 임씨는 “경주의 현안을 해결하려면 여당 후보가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를 국제 관광도시로 만들려는 경주 시민의 숙원을 풀려면 정부와 협조가 잘되는 여당 인사가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난 14대 때 중앙당에서 지역 여론을무시하고 공천하는 바람에 ‘토라져서’ 잠시 외도를 했으나 자기는 변함없는 여권 인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임씨는 61년 경희대 정치학과 재학중 박정희 대통령의 선거 유세를 도운 것을 시작으로 내내 여권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60~79년 KBS 라디오의 대북 사회교육 방송에 고정 출연했을 정도로 ‘반공 정신에 투철한’ 전형적인 경상도 보수 인사이다.

 임씨는 현재 아침 6시부터 오전 1~2시까지 정신없이 지역구를 누비고 있다. 그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정치를 훨씬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지만 타고난 체력만은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하루에 천명이 넘는 유권자와 상대하다 보면 탈진해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씨의 가장 큰 숙제는 민자당 기존 조직을 어떻게 자기 조직으로 변화시키는가이다. 그는 민자당 조직에 대해 매우 불쾌한 기억을 갖고 있다. 지난 14대 선거 막판에 경주 시내에는 임씨와 제일동포인 남편 김교봉씨와의 관계 등 사생활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흑색 선전물이 넘쳤는데 출처가 어디인지 뻔했기 때문이다. 임씨는 “어제의 적과 손잡고 선거를 잘 치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과거는 잊었다.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라고 답했지만 민자당 조직원의 이탈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국제신문> 정치부 기자, 동양텔레비전 방송 프로듀서, 민자당 여성국 제1분과 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현경자 후보, 절대 웃지 말아요”
 현경자씨(46)는 25년간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만 해온 가정주부이다. 그 때문에 박철언 전 의원이나 본인은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뒤에도 출마를 망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경자씨는 7월7일 여의도 신민당사에서 공천을 수락하면서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박의원이 하던 일을 계승하고 유권자들에게 공정한 심판을 받기 위해서 출마를 결심했다. 아무것도 모르니 좀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신민당은 현씨가 정치 경험이 전무하므로 처음부터 철저하게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세운 듯하다.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사진기자들이 현씨에게 ‘좀 웃으라’고 주문하자 신민당 관계자들은 일제히 “웃으면 안되지” 하고 소리쳤다. 두 자녀를 데리고 나온 현씨는 기자회견 도중 계속해서 눈가를 손수건으로 훔쳤다.

 신민당이나 현경자씨는 ‘과연 현씨의 출마가 한풀이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현씨는 국회의원 자질이 있는가. 5 · 6공 핵심인 박 전의원이 이 시대에 가장 박해받는 정치인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 여론에 제일 크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기자회견장에서 현씨는 “본인의 출마가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글쎄요. 기자회견 처음 해봐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박의원 뜻에 따라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본인이 국회의원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25년간 공직자의 내조자로 살아왔고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박의원 대신 수성구를 열심히 발로 뛰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김동길 대표는 얼른 그 말을 받아 “현여사가 겉으로는 나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남편이 구치소에 있을 때 혼자서 지역구를 관리하는 지도력을 보였다. 현여사는 박의원의 자리를 계승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라고 뒷받침했다.

 박찬종 대표는 박 전의원이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박대표는 “박의원한테 나중에 욕을 먹더라도 구치소에 면회 가서 나눈 얘기를 해야겠다. 박의원은 1년6개월 형기를 사법부가 아닌 국민과 역사가 내리는 질책으로 알고 달게 받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박의원이 권력의 핵심에 있던 5 · 6공 시절 많은 사람이 얼토당토 않은 죄목으로 감옥에 가다. 그것은 권력이 사법부를 허수아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의원이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은 자업자득 아닌가”라는 질문에 현씨는 “박의원은 공직 생활 내내 열과 성을 다해 왔다. 그분을 존경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만 답변했다.

 임진출 · 현경자 두 여성 후보의 출현으로 삼복 더위에 치를 보궐선거 현장을 더욱 뜨거울 전망이다.
文正宇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