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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냐, 사대주의냐

국악원의 외국인 강습, 지도법·참가비 지원 놓고 논란

김현숙 차장대우 ㅣ 승인 1994.08.11(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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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자를 놓치면 금방 빠집니다. 각자 마음 속으로 박자를 세며 치세요.”

 벽안의 외국인들이 채성희씨(38·국립국악원 단원)의 가야금 연주에 장구 반주를 넣고 있다. 긴 다리를 접고 앉은 채 언제 장구채를 때려야 할지 박자를 계산하느라 머리를 까닥이는 모습이 진지하다.

 국립국악원이 지난해부터 외국인을 위해 실시하는 국악 강습 프로그램은 ‘우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작업’의 한 표본이 될지도 모른다.

 7월7일부터 8월20일까지 국악원에서 열리는 외국인 국악 강좌에는 22명의 외국인이 참가해 민요 단가 시조 가곡 장구 사물놀이 궁중무 민속 탈춤 등을 배우고 있다. 이들은 중요무형문화재 46호 정재국(피리), 23호 준문화재 강정숙씨(가야금) 등 국악계 일급 연주가와 이론가 30여 명에게 악·가·무 종합의 우리 전통 음악들 익히고 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급반을 설치,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 프로그램이 이국 취미를 만족시키는 교양 강좌가 아니라 질 높은 국제 강좌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은 강사진뿐 아니라 수강자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로 미국·독일·일본의 주요 음악 이론가와 연주가들이다. 이들은 한국 음악의 영감을 그들 작업에 활용함으로써 자기의 음악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 뿐 아니라, 한국 음악을 통해 아시아 민족 음악의 이론을 새롭게 정리하는 계기를 맞고 있다. 작년에 이어 이 강좌에 참여한 조나단 크레머씨(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예술대학장)는 “아시아 3국 중 궁중 음악과 유교 음악이 이처럼 잘 보존되어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라고 말한다. 일본 전통 음악인 ‘노’의 전문가로 알려진 마틴 에버라인씨(뮌헨 대학 석사)는 이번 강좌를 계기로 전공을 한국 음악으로 바꿨다.

 네브래스카 대학 작곡과의 제니퍼 스타색 교수, 하와이 대학 출판부의 데보라 매스터슨 부장, 산타페 대학 현대 음악과의 에이미 프란시스 교수 등도 작년에 이어 이 강좌에 참가해 한국 음악을 재발견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지금 링컨센터에서 요요마나 루빈스타인, 마리아 칼라스와 같은 대가들에게 하루 6~7시간씩 배우는 셈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조나단 크레머씨의 경우 작년에 이 강좌에서 해금을 익힌 뒤 1년 동안 혼자 해금산조 한 바탕을 뗐을 정도로 한국 음악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

 “한국 음악을 경험함으로써 학자로서 그리고 연주가로서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라고 말하는 크레머씨는 미국의 대학에서 첼로와 해금의 비교 연주를 통해 한국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한국 음악과 개설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국악원의 송혜진씨(음악 평론가)는 “한국 음악을 알고자 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이 개별적으로 한국 음악을 배운 적은 있지만 국립음악원이 직접 참가자를 모집하여 강습을 실시하자 대내외적 관심이 더욱 커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지원자를 선발하는 작업을 맡은 작곡가 조셉 첼리씨는 미국 내에 있는 음악 대학과 민족 음악 전공 교수들에게 안내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알토란도 주고 백만원도 주다니…”

 지금까지 우리 음악을 해외에 소개하는 것은 주로 공연에 의해 이루어졌다. 70년대 이후 이재숙 황병기 성심온 씨 등 몇몇 가야금 연주자에 의해 미국 및 유럽에 있는 대학의 연구기관 추청으로 강습과 실기를 곁들인 콘서트가 열린 정도이다. 따라서 일본·중국·인도·인도네시아 음악에 견주어 한국 음악이 세계 민족 음악을 연구하는 데 있어 '소외 학문‘에 머무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국립국악원은 이번 외국인 강좌를 통해 한국 음악을 좀더 체계적으로 알리고 우리 음악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강좌는 우리 음악의 ‘비밀’이 이처럼 친절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공개되어도 좋은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낳는다. 조나단 크레머씨는 “인도 음악을 배울 때 경험한 일인데, 그들은 자기 아들이나 조카를 가르칠 때와 우리 같은 서양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우리에게 비장의 무엇인가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여긴 비밀이 없다”라고 놀란다. 이번 강좌에 참여한 한 강사는 “이렇게 알토란 같은 강의를 해줌으로써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인가 묻고 싶다. 중급반 9명에게는 문예진흥기금을 백만원씩 쥐어 보낸다니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먼저 이런 정성을 들여 가르쳐야 할 사람들은 바로 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여름철 국악연수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음악 교사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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