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가 보호받는 사회
  • 안재훈 (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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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옥씨는 직무상 비밀을 신문사에 제보하고 미소를 지으며 감옥으로 갔다. 28년간의 공무원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문옥씨 같은 사람을‘휘슬 블로우어’(whistle-blower)라고 한다.

 휘파람 혹은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란 뜻의 ‘휘슬 블로우어’는 비리ㆍ비행을 국민에게 폭로하여 경각심을 깨우치는 보초병,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국익을 위해 비밀을 폭로하는 의분파, 사기ㆍ예산낭비ㆍ태만ㆍ경영부실ㆍ부조리를 언론에 제보하는 공개 고자질파…등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개선책을 제의하는 것으로 한국의‘양심선언’가 비슷한 성격을 띠는 것이다. 우리말로 적당한 어휘가 만들어질 때까지 이 글에서는‘제보자’로 통칭하자. 이런 표현은 20년 전의 사전에는 없던 신조어이다.

 역사상‘제보자’는 적지 않다. 미국의 어떤 해군 소위는 전함들의 열등한 성능을 계속 불평해 상관들의 미움을 샀으며 이로 인해 진급에서 자꾸 누락되자 또 불평을 했다. 이 소문을 들은 테디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장교를 해군제독으로 승진시켰다.

‘제보자’는 늘 자신이 소속된 기관에서 낙인찍히고 상관과 동료들의 냉대를 받는다.‘제보자’는 자유언론과 밀접한 공생관계를 갖는다. 5공의 언론탄압 상황에서는 이감사관의 폭로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작년에 미 의회는‘제보자 신분보호법’을 통과시켜 20년간의 행정부와 입법부의 공방전이 일단락됐다. 이로써‘제보자’공무원은 최소한 파면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보호규정이 있다고 해도 제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충고까지 생겨났다.“은퇴시기가 가깝든지 집안이 부자가 아니면 두 번 생각하라.”

미국적 민주주의의 초상화

 미국판 이문옥씨로 어니 피츠제러드씨를 들 수 있다. 이 사람 때문에‘휘슬 블로우어’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월남전이 한창이던 지난 70년 미 공군 소속 민간인 재정분석관으로 있었는데 국방부의 예산낭비, 무기개발과 군수업체 입찰에 관련된 비리를 국회 청문회에서 폭로했다. 대형 군수송기의 제작비 20억달러가 낭비되었다는 그의 주장은 명백히 공무원 비밀조항 선서를 위반한 것이었지만 국민의‘알 권리’를 국익의 대전제로 내놓음으로써 그는 일약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그를 즉각 파면시켰고 그때부터 그는 장장 12년간의 법정투쟁을 벌였으며 64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 복직은 물론 밀린 봉급 전액을 보상받게 되었다. 이후 피츠제럴드의 후배들은 공직뿐 아니라 반관ㆍ반민단체 및 민간단체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적당히 합의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며 따지는 미국인 근성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제보자’는 역시 국방부ㆍ군수산업ㆍ무기개발ㆍ입찰ㆍ조달분야에 가장 많다. 핵잠수함 건조의 방대한 비용을 놓고 몇건이 이미 고발되어 있다. 국방부 다음으로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운행을 둘러싼 것이 많다. 에너지부ㆍ농무부ㆍ환경청ㆍ국세청ㆍ재향군인회 등도 뉴스에 오르고 있다. 분개한 공무원들이 나라를 위해 자기 소속 부처의 결함을 통렬히 공격하는, 대단히 미국적인 민주주의의 초상화이다.

휘슬 블로우어 위한 안내책자 출판

 한 예로 군의관이 군대내 동료의사들의 자격미달을 공격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군대는 이‘제보자’를 상습적 불평불만자로 낙인 찍고 군 정신병원에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의사는 제대하고 개업해서 크게 성공했다. 원자로 핵 폐기물 관리소홀을 고발한 한 환경청 직원은 그 일로 유명해져서 나중에 그 지방에서 시의원으로 뽑힌 일도 있다.

 재미있는 예로는 농무부 관리인 칼 텔리인씨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수의사 출신인 이 76세의 할아버지는 30년간 쇠고기ㆍ닭고기의 위생감독관을 지내며 정부의 근무태만을 계속 불평해온 사람이다. 하도 불평이 많아 전근을 시키거나 은퇴를 권고해도 긑가지 버티며 싸우고 있다. 농무부 상관들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 격인‘종신 불만주의자’이다.

 미국에는 이런‘제보자’공무원을 보호하는 민간단체가 2개있다. 워싱턴에 있는, 묘한 이름의‘정부의 책무 프로젝트’(Government Accountability Project)란 단체는 이들‘제보자’를 위한 안내책자를 출판했는데 책 이름이 걸작이다. 《순교의 영광 없는 용기》(Courage Without Martyrdom).

 그런가 하면 국방관계 낭비를 고발하는‘제보자’에게 25만달러의 상금을 주자는 법안이 상원에 상정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애국시민의 의무수행에 대한 금전 상벌제도는 국민의 품위손상이라는 재미있는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또‘제보자’를 전담하는 독립기구 설치안을 주장한 국회의원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감사원은 행정기관 회계감사와 공무원 직무감찰이 주임무이지만 그 자체가 행정부의 일원이다. 미국의 경우는 국회 밑에 회계검사국(General Accoyunting Office)이 있지만 조사발표 권한만 있으며 행정부 각 기관은 자체내의 감독관(inspector-general)이 있어 항상 비리를 찾아 낸다. 감사는 연중 계속된다.

 한국의 경우 국회가 몇주 동안 국정 감사를 하지만 여야의 파당적 정치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 엄청난 이슈가 제기된다 해도 몇 달 안되서 신문에서 증발되어버린다. 국회의 감사 역할이 바뀐다면 이문옥씨와 미래의‘휘슬 블로우어’들은 전국민이 시청하는 국회 청문회에서 자기 주장을 떳떳이 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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