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구 칼럼] 存在와 所有는 體와 用
  • (본지 칼럼니스트 · 언론인) ()
  • 승인 199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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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리는 仁 · 水국도에는 화물차와 승용차가 줄지어 달려간다. 푸른 전원을 가로지른 산업도로가 붐비고 있다.

 나는 안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신도시가 아니라, 옛 이름으로 瞻星里였는데, 새 지명은 무엇인지 미리 수소문을 하였어도 지리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반월에서 국도를 따라 15리쯤 북상하다가 첫 마을로 들어섰다. 거기서는 한 남자가 비 속에 나와서 친절하게 마을 끝 언덕을 가리켜준다. 두리번거리다가 지도를 보니, 여기는 국도가 안산으로 가는 길과 갈리는 곳, 속칭 성머리이다. 구획정리된 대지에 드문드문 들어선 집 가운데 한 문패를 보니 경기도 시홍군 안산시 일동이었다.

 옛글에 보이는 廣州 · 안산 · 첨성리가 이곳이니, 초기의 대실학자 李瀷(호 星湖, 1682~1764)이 초야에서 독서하고 독창적 학문대계를 이룬 고장이었다.

 성호의 문필시대는 임진란의 황폐 뒤, 1세기가 지나서 토지조사 · 세법개편 · 화폐제 실시가 시행된 사회경제적 전환기였다. 토지국유제하에서 사유토지가 공공연히 늘어가는 한편, 가렴주구에 못배긴 농민의 반란이 뒤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토지제국의 모순을 비판한 성호의 유명한 말에 “부익부 빈익빈”이 있다.

 그 시대와 현대의 시간적 거리는 아득하고, 또 오늘의 경제적 현실이 별천지가 되었음은 다 아는 바다. 그런 것을 전제하여도 성호의 사회사상의 논의는 구식이 아니고, 기본적인 것일수록 아직도 신선하여 상고할 것이 많다.

 

인간의 생명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

 더군다나 지금 우리 사회는 정신적 · 사회적 난제에 봉착하고 있다. 한국인이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증진사회를 일으킨 마당에 예기치 않은 비인간화와 불만이 팽배하고 있다. 사회비리의 주 원인이 금권만능이어서, 과연 윤택한 사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고개를 들 때가 있다. 좋은 삶, 좋은 사회란 어떤 것인가.

 하기는 가난한 동안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고생스러웠지만, 이제 피와 땀을 흘린 보람으로 웬만큼 살만해지니까 이번에는 무엇을 위한 삶인가를 물어야 할 가치의 전도를 보게 된다. 물질의 결핍보다도 윤택이 가져오는 새로운 병리 속에서, 우리는 경제적 번영의 원인 못지 않게 번영의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긴요함을 느낀다. 아무리 상대적이라도 윤택과 번영이 곧 개인의 행복이고, 또 좋은 사회가 될 줄 알았다가 그런 게 아님을 깨닫고 적막해진다. 인간사란 참으로 묘하구나.

 이익은, 저 ‘법의 정신’으로 프랑스혁명을 예비한 몽테스키외와 동시대인으로 초기실학파를 대표하는 經世致用의 대종이었다.

 소유에 대하여, 그는 현실적이면서 본원적으로 꿰뚫어보는 생각을 가졌다. 富는 재물이 있음을 말하고, 貴는 벼슬이 있음을 말하는데, ‘부귀의 욕망은 오직 사람만이 갖는다’(富貴之欲 惟人有之)는 것이다. 생명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로서, 그리고 정신은 의지작용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니, 성호가 부귀추구를 분명하게 사람의 욕망의 체계라 본 것은 놀랍다.

 그러나 부귀는 한갖 외면적인 것(富貴外物), 인생이 실패하면 벼슬도 재물도 없어지는 것이니, 사람은 높고 낮음 없이 貧賤을 근본으로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놀랍게도 헤겔이 비슷한 생각을 폈다. 즉, “내가 무엇인가를 외면적 힘 속에 갖는 것이 점유이고, 그렇지만 자유로운 의지로서 내가 점유로써 자기를 대상화하고, 그 대상화로써 현실의 의지를 이루는 것이 소유니라(1821).”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사람은 존재하기 위하여 소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존재와 소유는 하나요, 굳이 가린다면 體와 用으로 볼 수는 있어도, 전적으로 다른 것이라 할 수 없다.

 

‘소유의 극소화’ 역설한 李瀷

 그렇다고 성호가 소유의 기능을 극대화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는 소유의 극소화를 역설하였다. 원래 재물이란  조금씩 모아서 많아지는 것이고, 또 같은 이치로 씀씀이는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근검절약을 역설하였으니, 그런 견해는 그의 ‘부민술’에 잘 요약되었다. 즉, 농사에 힘을 쓰는 것(務農), 검소를 높이는 것(尙儉) 및 빼앗지 못하게 하는 것(禁奪)이다. 사람들이 농사로 모으고, 적은 것으로 아끼고, 남의 차지를 빼앗지 않는다면, 어찌 그들이 부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경제체제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건전한 경제생활을 조장하는 사회방책으로 ‘生財論’을 폈다. 즉, 놀고 먹는 이가 없는 것,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 것, 농사 때를 빼앗지 않는 것, 검소를 높이는 것 등이다.

 이즘 우리 사회 일각에서 지식인 · 종교인 · 농가여성 · 대학생이 세태를 걱정하고 갖가지 자발적인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사회정의실천 · 내핍과 나눠쓰기 · 절제 · 도덕성회복 · 여성농군 · 농촌활동 등 사회갱신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저 실학자의 사회개혁의 열기와 당대인의 번져가는 새바람운동은 유무상통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민중의 삶은 근검에 있다. 근면하면 재물이 생기고, 검소하면 구차하지 않다. 검소하지 않으면 四海의 富라도 반드시 다할 것이다….”

 성머리 언저리에는 옛 첨성리의 흔적이 없다. 다만 성호가 푸른 언덕에 영면하고 있다. 비석에는 劒如의 생동하는 필치로 묘갈명이 새겨 있다.

 장하다. 그 기개 · 열정 · 지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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