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空洞化와 경제개혁
  • 김장호 (숙명여대교수 · 경제학) ()
  • 승인 199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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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리 경제는 제조업의 성장이 둔화되고 대신 서비스업이 번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3저호황 국면의 정점이었던 87년에 제조업 부분 취업자 증가율은 15.4%를 기록했다. 그 이후 85년 5.7%, 89년 3.7%로 점차 둔화되다가 올해 1/4분기에는 2.5%의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제조업 취업자수가 12만3천명 준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서비스업 취업자수는 87년에 4.4%, 88년 5.0%, 89년 6.8% 그리고 올해 1/4분기에는 8.1%로 그 증가율이 더욱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올해 1/4분기 서비스업 취업자수는 전년의 같은 분기에 비해 71만1천명이나 늘었다.

 일반적으로 경기침체시에는 서비스업의 고용비중이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오늘의 제조업 취업자 감소 경향은 단순히 경기변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의 두가지 사실이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첫째 최근 많은 생산제조업체가 필요인력의 확보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조업 부문 구인난은 특히 기능인력 분야, 그리고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부문에서 더욱 심각하다. 올해 1/4분기 생산직 인력의 구인자 대 구직자 비율이 5:1에 육박함은 제조업 구인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둘째 최근 서비스 부문에서의 고용 급증은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이루어지는 인력수요구조의 성격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실물생산을 촉진하는 통신 · 운수 · 정보산업 분야가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어 서비스업 취업자 비중이 높아진다. 그러나 최근의 서비스 부문 고용증가는 대부분 음식 · 숙박 · 오락 등 소비성 · 향락성 분야의 팽창이 가속화된 결과이다.

 

생산근로자의 미래 보장 못하는 기업경영관행

 오래 전에 이미 고도산업사회로 진입했으면서도 견실한 산업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서독이나 일본의 경우, 제조업 고용비중은 아직 총고용의 35%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우리의 제조업 고용비중은 88년 현재 28% 이하이다.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화되면 산업의 空洞化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이같은 산업공동화 조짐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력 공급측의 제조업 기피이다. 과거 근검 · 절약을 미덕으로 간주해왔던 우리 근로자의 건전한 노동윤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서비스업의 번창은 당장 손쉽고 편하면서도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서비스 분야의 취업기회를 크게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태여 힘들고 근무기강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제조업체에 취업할 필요성이 없다는, 제조업 기피 思考가 젊은 근로자에게 팽배하고 있다. 이것은 향락서비스업 종사 자체를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던 과거와 비교할 때 의식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건전한 노동윤리가 퇴조를 보이는 근본 원인은 잘못된 정책과 전근대적 기업경영관행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최근의 각종 투기성 불로소득의 엄청난 증가는 많은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키고 건전한 노동윤리를 흔들리게 한 사회병리적 환경을 제공한 근본 요인이었다. 열심히 땀흘려 노력해도 평생 집 한칸 마련하기 어렵고 자식교육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실히 땀흘려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루어지기란 어렵다.

 

분배질서 확립 위한 경제개력 추진돼야

 우리나라 기업경영관행은, 생산근로자가 미래에 대해 안심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노동통제방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우리의 작업장에서는 관리직과 생산직간의 심한 격차와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생산직 노동자가 원하는, 장래가 보장되는 평생직장으로서의 유인체제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억압적이고 위계적인 조직관리방식이 개발 초기에는 유효했을지 모르나 최근의 근로자의식 및 상황변화를 고려할 때 이는 더 이상 적절한 관리방식이 될 수 없다.

 상대적인 제조업 감퇴는 사업가의 제조업 선호도를 크게 저하시킴으로써 노동자 수요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끼친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은 제조업이 2.5%인 반면 문화 · 오락서비스업이 10.2%, 부동산업은 37.0%로 부문간 심한 격차를 보일 뿐만 아니라 그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제조업 부문의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달성되기란 매우 어려울지도 모른다.

 현대산업사회에서 제조업은 그 나라 경제의 등뼈와 같다. 등뼈가 온전치 못한 경제가 견실하게 발전할 수는 없다.

 제조업의 공동화 조짐을 막기 위해서는 제조업을 우선 순위에 올리는 각종 산업정책, 인력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또한 경영자도 기업경영의 민주화 · 인간화를 적극 추진하여 생산근로자에게 장래를 보장해주는 경영관행을 조속히 정착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강구하자면 제조업기피 경향을 가져오는 각종 사회병리적 요인을 해소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불로소득 증가의 방지와 공정한 분배질서의 정착을 위한 경제개혁이 가시적으로, 그리고 신속히 추진될 때에만 사업가와 근로자의 제조업 기피 풍조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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