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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자소설, 가상의 미래 빗대어 뒤틀린 현실 비판

‘수준높은 비판의식 고양’ 측면에서 긍정적

이흥환 기자 ㅣ 승인 1990.07.1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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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 많아 본격작품 안나와

 1992년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金泳三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민자당이 金鍾泌, 朴哲彦씨를 대통령 · 부통령후보로 결정한 것이다. “수모를 감수하고 민자당의 원로로만 남아 있느냐,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다시 야당으로 변신하느냐.”

 정치소설 <92년 · 한국 · 겨울 그리고 대권>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 속의 김대표는 마침내 민자당을 탈당한다. 그리고 14대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한 민주계 의원 40명을 이끌고 민주당에 합류함으로써 신 · 구 민주당계는 다시 한집살림을 차린다.

 일주일 후인 92년 11월16일, 민주당 재창당대회 겸 정 · 부통령 후보지명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 이기택 공동대표가 각각 대통령 · 부통령후보로 선출돼 93년 1월의 대통령선거에 나서게 된다. 평민당은 金大中 · 趙尹  씨를 후보로 지명, 결국 93년 대통령 선거는 김종필 · 김대중 · 김영삼씨간의 ‘3김3파전’이 된다.

 

“김영삼씨 반발로 내각제 개헌안 부결”

 이 가상소설은 시기적 배경만 1992년으로 잡고 있을 뿐 1990년 7월 현재의 현역 정치인들을 실명 그대로 등장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의 정치상황도 현재의 정국구도를 바탕에 깐 채 그 연속선상에서 전개된다.

 “민자당 민주계는 날로 세력이 약화된다. 반면에 민정 · 공화계는 김종필최고위원과 박철언씨의 연합으로 민자당내에서 세를 굳히고 의원내각제가 민자당 당론으로 확정되기에 이른다. 92년 2월 내각제개헌안의 구회표결을 앞두고 이른바 ‘김· 박 메모’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김 · 박 메모란 의원내각제가 되면 김종필대통령 · 박철언총리로 이미 밀약이 되어 있다는 것. 이에 김영삼대표는 민주계 의원들에게 내각제개헌안에 부표를 던질 것을 지시하고, 표결 결과 개헌안은 부결되고 만다. 92년 4월의 14대 총선 결과, 민자당 1백90석, 평민당 95석, 민주당 25석, 무소속 및 재야신당이 10석을 차지한다. 93년 1월의 대통령선거를 위한 민자당 전당대회는 또 한번의 이변을 낳는다. 김영삼대표를 제외시킨 ‘김종필 대통령후보 · 박철언 부통령후보’구도가 나온 것이다….”

 

최악의 상황 가정, 자기반성 유도

 <92년…>은 정치의 가상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하지만 미래상황을 예측하고 관측한다는 측면보다는 현재의 정치현실을 풍자하는데 더 큰 비중이 주어져 있다. <92년…의 작가 高元政(35)씨는 “가상소설이 의미를 가지려면 미래 예측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그렇게 돼서는 안되겠다는 자성을 유도해야 한다.”고 정치소설의 역할을 규정한다. “정치판의 속성과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상상황이 들어맞느냐 안맞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고씨의 주장이다. 작가는 정치평론가가 아니며, 따라서 정치평론가에게 요구되는 치밀하고 예리한 정치적 분석력이 정치소설 작가에게 불가결의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칼 한자루와 수류탄 하나로 야권 대통령후보를 암살한다는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는 단편소설 <칼 한자루의 사상>에서도 그는 정치지도자들에게 날카로운 ‘풍자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고씨는 본격 정치소설의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다. 단편소설 <거리의 잠>(85년)으로 문단에 나올 때부터 정치소설에 뜻을 두었고, 지금도 가상 정치소설에 관심을 쏟고 있다. 월간 《다리》(90년 4월호)에 처음 발표된 <92년…>은 3당합당 2개월 후인 지난 3월에 이미 집필이 끝난 작품으로, 민자당의 내각제개헌 추진과 3계파간의 갈등 등 정국 풍향을 예측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소설가 崔仁碩(38)씨의 <전두환씨, 백담사 떠나다>도 《월간중앙》90년 1월호에 발표되면서 눈길을 모았던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92년 대통령선거에서 4명의 김씨가 대통령후보로 나서고 백담사에 있던 전두환씨도 무소속 대통령후보로 등록해 선거를 치른다는 내용인데 선거전에서 참패한 전씨의 망명으로 소설은 마무리되고 있다.

 최인석씨의 경우는 앞서의 고원정씨와는 달리 월간지 등 잡지사의 청탁을 받아 가상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정치소설 작가라고 하기는 힘들며, 본인도 “우연히 기회가 닳아 가상 정치소설에 손을 댔을 뿐” 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정치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지긴 하지만 아직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본격적인 소설을 쓰기에는 아직도 정치 · 사회적인 제약이 많다. 이런 제약조건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좋은 정치소설은 나오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외국에선 정치?국제관계 저술 각광

지금까지 선보인 정치소설들은 대부분 특정 정치인이나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소재 빈도수에서 전두환 전대통령의 이야기가 단연1위를 달리고 있고, 1노3김이 단골손님이다. 소설속의 정치지도자들은 작가가 들이대는 풍자의 칼날 앞에 맥을 못춘다. 정치소설이 정치 풍토에 식상한 일반 국민의 카타르시스 차원에 머문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체와 개인의 문제 등을 삶의 보편적 테마나 정계의 구조적 문제점 등을 파헤칠 만한 정치적 안목이 아쉽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외국의 경우, 국제 또는 정치문제를 다룬 저술이 큰 각광을 받고 있다. 故케네디 美대통령이 가장 즐겨 읽었다는≪8월의 포성≫은 여기자 바바라 터크맨이 1차대전 발발의 秘史를 소설 형식으로 엮은 작품이다.

  2년 전까지 좌파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과 우파 총리 자크 시라크가 공존했던 프랑스의 정치상황을 한마디로 압축한 낱말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은, 현 프랑스 헌법대로라면 이런 현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 프랑스의 한 정치평론가가 7~8년 전에 미리 가상해서 쓴 정치논문 속에 나오는 용어이다. 그용어가 현실화된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를 훌륭항 정치소설의 하나로 꼽는 정치평론가 金珍培씨는 “우리나라 작가에게 정치적인 분석력이 곁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를 소재로 하되 단편적이고 가십 성격이 짙은 내용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감정 호소의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겨울공화국?의 시인으로 13대 국회에 진출한 梁性佑의원은 정치소설은 작가의 분석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막연하게 좌충우돌하는 식으로 나간다면 가십거리만 제공할 뿐이다. 우선 작가의 정치관이 뚜렷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정치소설이 국민일반에게 수준높은 비판의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정치소설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심각한 주제를 가볍게 다룬다”비판도

  정치와 문학의 접목이 시도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70년대 김지하 시인의 풍자성 짙은 시편들도 넓게는 정치풍자시로 분류된다. 김지하씨는 “현실에 모순이 있는 한 풍자는 강한 생활력을 지닌다”고 말하고 있다. 김씨는 풍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풍자는 현실의 惡에 의해 설움받아온 민중의 증오가 예술적 표현을 통해 그 惡에게 퍼부어던지는 돌멩이와 같은 것이다. 풍자만이 시인의 살 길이다.”

  정치풍자집으로 큰 일기를 끌었던 것은 송영씨 외12인의 작가가 쓴 작품을 모은 ≪대통령아저씨 그게 아니어요≫이다. 87년 대통령 선거 전에 야권 대통령 탄생을 예상하고 기획했으나 상황이 바뀌자 기획의도를 변경, 88년 들어 서점가에 선을 보여 2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인기를 모았다. 이 풍자콩트집이 나오자 독자득로부터 “속시원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는가 하면 “심각한 정치문제를 콩트라는 형식으로 가볍게 취급할 수 있느냐”는 항의투의 부정적인 반은도 있었다.

  작가 고원정씨도 정치콩트에 대해 “너무 우스개로만 취급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읽히고 만다면 “정치판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어진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양성우의원은 이런 시각에 반대한다. “정치풍자 콩트는 정치소설이든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 중후한 형식이나 내용만을 고집하는 것은 독점주의식 발상이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풍자든 해학이든, 소설이든 시든 콩트든, 작가들은 정치에 대해 글로 말하기 시작했다. 뒤틀린 정치현실에 대해 항변하며 대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고 슬쩍 웃어넘기며 대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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