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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에 튄 ‘주사파 불똥’

문정우 기자 ㅣ 승인 1994.09.01(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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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파 발언으로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박 홍 총장을, 서강대 학생들은 ‘막걸리 총장’이라고 부른다. 성직자이자 가톨릭 재단 대학의 총장치고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때로는 막걸리를 마시며 제자들과 격의 없이 잘 어울린다고 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별명이다. 학생들은 한때 이런 총장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서강대는 고등학교 뺨치는 철저한 학사 관리로 유명합니다. 다른 대학처럼 자유분방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총장님은 이제까지 볼 수 없던 독특한 스타일로 제자들을 대했습니다. 학생들이 환영하지 않을 리 없죠. 더구나 총장님은 학내 행정을 펴는 데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셨거든요” 이 대학 교지 편집실에서 활동하는 학생의 말이다.

학교 안팎에서 민주화 투쟁 경력을 자랑삼아 얘기해온 박총장은, 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운동권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뒤를 돌봐주는 데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박총장과 학생들의 이런 돈독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91년 5월 박총장이 “죽음을 부추기는 검은 세력이 있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고부터이다. 당시 박총장의 이 한마디는 젊은이들의 잇단 분신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정국을 순식간에 공안 한파로 뒤덮어버릴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최근 풀려난 강기훈씨가 ‘죽음의 배후 세력’으로 몰려 모진 고난을 겪었다. 그 때도 박총장은 자기 발언의 근거를 세상에 밝히지 못했지만, 서강대 운동권 학생들은 박총장을 내놓고 공격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아야 했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도 관계려니와 박총장 자신이 발언 이후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야당.학계.종교계.언론계.여권으로 이어진 박총장의 ‘주사파 암약’ 발언은, 단지 학생과 재야 운동권만을 겨냥했던 예전과는 달리 한국 사회 전체가 주사파에 감염됐다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박총장은 주사파 발언의 근거로 ‘제자와 주변 사람들의 얘기와 고백성사에서 들은 내용’이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주사파 제자들이 박총장에게 일러바친 꼴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서강대 총학생회는 범주사파로 분류되는 NL 계(민족해방계열) 운동권이 장악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박총장께서 어떤 형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9월1일 개강하자마자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를 소집해서 이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모을 예정입니다. 사제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이래서는 안된다고 염려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서강대 부총학생회장 김용철군(국문과 4학년)의 말이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현재 박총장 발언 파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한편 이번 박총장 발언의 배경에 대해 학생들 사이에서는 ‘워낙 격의 없이 어울리는 분이라서 학생들이 장난삼아 한 얘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터뜨린 촌극’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이 때문에 현재 서강대 대학원에 진학한 임수경씨와 전 서강대 총학생회장이자 평양축전준비위원장이었던 전문환씨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박총장에게 주사파 얘기를 전했다는 ‘제자들’이 바로 이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주사파 발언이 한창이던 때 전문환씨는 박총장의 주선으로 미국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임수경씨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굳이 해명할 문제가 아니라서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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