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등 터뜨리는 조세 싸움
  • 심동호(재미 공인회계사) ()
  • 승인 199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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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이 무역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빅3’ 자동차 제조업체 중역들을 대동하고 ‘적진’에 출동했다가 창피만 당하고 돌아왔는가 하면, 클린턴 행정부도 그동안 온갖 협상을 다해도 별 수가 없었는지 10월부터 통신과 의료기 시장 불개방에 대한 보복 조처를 시작하겠다고 선포했다. 일본도 이에 대해 즉각 대응 보복을 불사하겠다고 밝혀 사태는 점입가경이다.

무역 분쟁은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 전쟁 상태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간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채 죽기 살기로 싸움이 붙어 희생자가 속출하는 국제 분쟁이 하나 있다. 그것은 조세 전쟁이다. 이 조세 전쟁 역시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가장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미.일 조세 전쟁은 82년 미국 연방국세청(IRS) 이 일본의 도요타와 닛산 자동차에 천문학적 숫자의 법인세 추징금을 부과함으로써 불을 당겼다. 일본의 본사가 미국의 자회사에 자동차를 너무 비싼 값에 팔았기 때문에 자회사의 이익은 낮아지고 모회사의 이익만 늘어났다는 것이 미국 세무 당국의 주장이었다. 모회사의 이익이 인위적으로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미국에 내야 할 세금을 일본에 납부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5년 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도요타와 닛산은 87년 일본에서 세금 9억달러를 환급받아 미국에 납부하였다 ‘이전가격 세제’라고 불리는 이 이슈는, 미국의 세수가 늘 때마다 상대국의 세수가 줄어드는 데 그 묘미가 있다.

미국 선공에 일본 맞불 작전
도요타와 닛산 사건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미국 연방국세청은 당장 두 자동차 회사의 후속 연도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하였고, 다른 외국계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닛산 자동차, 야마차 오토바이, 마쓰시타 전기 등에 또 천문학적 숫자의 법인세를 추징.통고하여 금년 봄 닛산에서 1억6천만달러, 야마하에서 1천6백만달러를 받아냈다. 이들 두 회사가 일본 국세청으로부터 환급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특히 닛산의 경우 일본 국세청뿐만 아니라 지방 세무관서에서도 환급해 주었기 때문에 지방 재정이 몹시 어려워지기도 했다. 미국 연방국세청은 신바람이 나서 크고 작은 외국 회사를 닥치는 대로 세무조사하여 미국 회사만큼 이익이 나지 않는 경우는 모든 이전가격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조사관들이 일본 회사에 세무조사하러 나갔을 때 유의할 점을 철저히 가르치기 위해 일본 문화에 대한 교육까지 시키고 있다.

일본도 맞불작전으로 80년대 말부터 일본에 진출한 미국 회사에 대해 이전가격 세무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해 AIG보험회사에 추징세를 90억엔 부과하고, 금년 들어 유니시스 컴퓨터에 수십억엔(구체적인 액수는 비공개), 코카콜라에 1백50억엔을 법인세 추징금으로 부과하였다. 뒤퐁에 대한 이전 가격 세무조사는 현재 진행중이며, 독일계 훽스트와 스위스계 시바가이기에 대해서도 이전가격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국세청은 외국 기업에 대한 이전가격 세무조사를 앞으로도 더욱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서 미.일 간의 조세전쟁은 전면전에 돌입한 느낌이다.

국제 규범 제정해 확산 막아야
이전가격 이슈에 대해 미국처럼 강한 입장을 취하면 세수 증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호주.독일.캐나다가 이 이전투구에 가담하여 이전가격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 전쟁이 되었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들은 여러나라 세무당국으로부터 동시에 이전 가격을 놓고 세무조사를 받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질레트사는 금년에 15개국 세무당국으로부터 이전가격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미.일 간의 조세전쟁 바람에 등 터지는 희생자 가운데 한국 기업도 포함돼 있다. 일본 기업만을 목표로 삼는다는 비난도 피하고 최근의 ‘소문난 잔칫상’인 한국 기업을 털면 뭔가 나올 것이라는 미국 연방국세청의 계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이전가격 문제로 세무조사를 받지 않은 한국 기업이 거의 없고, 이미 몇 개 기업은 추징금을 수천만 달러나 부과당했다. 연방국세청은 세무조사관에게 한국 문화 교육도 시키고 있다.

무역 분쟁과는 달리 조세 분쟁이 별로 화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들이 쉬쉬할 뿐만 아니라 추징 당한 것을 절대적인 대외비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생자가 구조를 호소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무리한 추징에 희생되어서는 결코 안되며, 우리나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진중인 이전가격 국제규범 제정에 적극 참여하여 미.일간 조세 분쟁의 확산을 막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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