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국배우 기용 세계시장 노린다"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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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영화제 각본상 여우주연상 수상한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장길수 감독

 캐나다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은마는…>의 장길수 감독. 이 영화는 한국전쟁중 ‘언례??라는 한 시골 아낙의 의식 변모과정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묘사함으로써 전쟁의 충격이 전통 촌락사회의 공동체 삶을 어떻게 붕괴시키고 균열시켰는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밤의 열기 속으로> <아메리카 아메리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 그가 그동안 천착해온 ??한국 속의 미국??을 또 다시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안정효 원작 소설인 《갈쌈》을 보면서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의 원형을 발견했다는 장감독은 ??돈을 알게 된 언례는 곧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겪어온 한국인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해묵은 주제??인데도 영화 속의 상징성이 뛰어난 장면들은 관객에게 강한 설득력을 갖고 다가온다. 예컨대 미군부대의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아이들이 영역 다툼을 하는 장면이나, 1.4후퇴 때에 전통가치의 권위자인 훈장이 언례가 주는 ??달러??를 받는 장면 등이다.

 장감독은 미군과 양공주촌이 나오는 장면에서 전쟁 분위기가 실감날 수 있도록 더 많은 물량을 동원할 수 없었던 점과, 썩을 대로 썩은 1백여채의 초가집 가운데 권위의 상징인 기와집 한 채가 있는 곳을 찾으려 했으나, 결국 ‘전봇대가 보이는 ??안동 하회 마을로 정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아쉬운 점으로 꼽는다.

 초콜릿과 기지촌으로 상징 되는 GI문화가 다분히 자극적이고 향락적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훈장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장면들이 익살맞게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반외세를 주창하는 원작의 의미를 충실히 반영하지 않고 상업성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있다. 주인공 언례의 행태를 다분히 놀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또한번 그녀를 강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 ??영화 속에 미국에 관한 입장 표명이 없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장감독은 ??다만 미국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과 그로 인한 우리의 갈등과 변화 등에 관심이 있었을 뿐 반미가 주제는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우물안 개구리 한국 영화감독??
 이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혜숙씨의 연기력을 장감독의 시각으로 평하면 이렇다. “한국적인 용모인데다 한국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뛰어나다. 그러나 불타는 집 앞에서 절규하며 마을 아낙들과 싸우는 장면처럼 행동선이 크거나,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에는 자기 개발이 요구된다.??

 영화는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충무로 제작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의 한 사람이다. 85년에 <밤의 열기…>로 데뷔한 뒤 잇따라 흥행성공작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는 15만명 <불의 나라>는 12만명 <추락하는 것은…>는 32만명이 관람했으며 현재 <은마는…>이 호황중이다. 연간 제작되는 1백여편의 한국 영화중 1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5편정도인 사실을 보면 그에게 ‘흥행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요즈음 한 차원 높은 세계로의 발돋움을 위해 비상의 날갯짓을 시도하는 중이다. 지난해 <추락하는…>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또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자 “그래봤자 우물안 개구리 격인 한국 영화감독??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했다. 5억원 안팎의 제작 자본으로 만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대종상에서 수상한다고 해도 ??그 한계가 빤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당 평균 제작비로 3억원을 들인 한국 영화와 1백 40억원을 들인 미국 영화를 관객들은 같은 극장에서 같은 돈을 주고 감상하고 평가할 뿐, 제작환경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에서 싹튼 자각이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영화의 국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그쪽으로 정했다??고 말한다. 곧 미국이나 유럽 영화자본을 가지고 세계 유명배우를 기용하여 만든 영화를 전세계 시장에 배급한다는 것이다. ??국제 감각이 있는 ?? 안정효씨의 원작 소설과 해외 입양아 문제를 다룬 <수잔브링크의 아리랑>을 영화화하기로 작정한 배경에는 그의 이같은 ??다부진 야심??이 작용했다.

 그런 만큼 경쟁부문 22개 작품, 비경쟁부문 5백여개 작품이 출품된 이번 몬트리올영화제에서의 수상은 “국제 영화계의 성공적인데뷔??라는 그의 말마따나 각별한 의미가 있다. 또 그 어느 때보다 작품 교섭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점에서 6개월 과정의 미국 UCLA 연장 교육 강좌를 수강하기 위해 이달 말에 출국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유수의 제작자와 유명 감독과 속 깊은 이야기를 하려면 영어를 좀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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