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날까지 ‘민주 사과’ 심겠다”
  • 변창섭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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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패튼 총독 ‘주권이양 불안’해소 위해 개혁안 발표···중국정부와 마찰 소지


 1997년 7월1일을 기해 중국으로 주권이 넘어가는 영국의 마지막 식민지 홍콩. 1842년 아편전쟁 이후 1백50년에 걸친 영국의 식민통치가 끝날 날이 불과 5년 앞으로 다가온 요즘, 홍콩 주민들은 불안감은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영국과 중국 정부는 지난 84년 공동성명을 통해 오는 97년 중국이 홍콩의 주권을 넘겨받더라도 그 후 50년 동안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고, 지난 90년에는 이 선언을 구체화한 기본법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 주민의 불안감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회주의체제로 편입된다는 사실에 대한 ‘원초적 불안’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 초 홍콩의 제28대 총독으로 부임한 크리스 패튼전 영국보수당 당의장(47)은 날로 커지고 있는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 선거구의 확대를 내용으로 한 파격적인 민주개혁안을 발표했다. 홍콩 민주화의 청사진이기도 한 이 개혁안을 놓고 야당인 민주동맹측은 홍콩의 완전한 민주화를 이루기에는 미흡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대다수 홍콩 주민은 크게 환영해 반응이 엇갈린다. 여론조사 결과 이 개혁안에 대한 지지율이 거의 80%에 달했고 홍콩 인접 지역인 광동성의 주민 중 약 1천만명이 지난 7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그의 연설장면을 시청했을 정도다.

중국 “저항 발판 마련할 속셈”반발

 그러나 이번 개혁안의 내용을 사전에 알지 못한 중국정부는 패튼의 안에 대해 “무책임하고 신중치 못한 것”이라고 크게 반발해 자칫 양국 간에 외교마찰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패튼 총독의 속셈은 개혁안을 실천에 옮겨 재임 중 홍콩의 불완전한 민주체제를 최대한 서구식 민주체제로 바꿔놓자는 것이다. 개혁안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홍콩 주민의 참정권을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확대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지출의 확대를 통해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자는 것이다. 패튼 총독이 지나 7일 입법평의회(우리의 국회에 해당)에 제출한 ‘향후 5년의 홍콩 과제’라는 이름의 이 개혁안은 한편으로는 홍콩 주민의 민주화 욕구를최대한 반영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오는 97년 홍콩의 주권이양이란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패튼 총독은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어떤 형태의 홍콩을 원하는지 명확히 할 때”라고 개혁안 발표의 취지를 설명했다. 중국정부는 패튼의 개혁안이 주권이양 이전에 홍콩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킴으로써 장차 주민이 중국정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려는 ‘불순한 동기’를 담고 있다고 판단한다.

 특히 중국 정부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선거구 확대를 포함한 정치 개혁안이다. 패튼 총독은 오는 95년 입법의원 선거부터는 현재 21개의 직능선거구를 3개로 늘릴방침이다. 직능선거구제란 사회 각층의 근로자가 자기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를 직능별로 뽑는 제도로서 대부분 기업가로 구성돼 있다.

 개혁안이 시행되면 변호사나 교수, 노조지도자 등 다른 이해집단도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홍콩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선거구가 9개 늘어나면 2백50명의 유권자가 새로 탄생한다.

 이처럼 직능선거구를 늘리는 까닭은 직능 대표의 증가를 통해 주민의 시정참여의 폭을 최대한 넓히려는 데 있다. 홍콩이 중국에 넘어간 후 헌법역할을 하게 될 기본법에 따르면 60명의 입법의원은 직선 18명, 직능대표 21명, 임명직 의원 21명으로 구성하게 된다.

 개혁안은 지금까지 정부가 임명해온 지방 행정관들을 앞으로는 모두 주민들의 직접투표에 의해 뽑도록 규정하고 있다. 직선으로 뽑힌 행정관이 선거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10명의 입법의원을 선출한다. 이렇게 되면 직선의원 수를 늘리지 않고도 종전의 선거위원회에서 선출한 10명의 의원을 사실상 직선으로 뽑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종전에는 정부가 선거위원회 위원을 임명했다.

 이 같은 개혁안의 내용에 대해 홍콩 주민의 대부분은 찬성의 의사를 보이고 있지만 일부 급진 야당인사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라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무소속 직선의원인 에밀리 라우 여사는 최근 <아시아 윌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패튼 총독의 개혁안이 두가지 점에서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지적했다. 입법의원 60명 모두를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온 라우의원은 패튼 총독이 중국정부의 눈치를 너무 살핀 나머지 홍콩 민주화의 열쇠인 직선의원의 수를 늘리는 데에는 소홀했다고 공박했다. 또한 입법의원이 내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한 것도 “야당의원의 내각 참여를 용인할 수 없다는 중국측 입장에 동조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중국 개혁파 득세 땐 실현 가능성

 홍콩은 지난해 9월15일, 1백50년 식민통치 사상 처음으로 입법평의회 선거를 통해 18명의 의원을 직선으로 뽑았는데 야당인 민주동맹당(UDHK) 후보가 12명이나 당선됐다. 이같은 결과에 불안감을 느낀 중국정부는 민주동맹당을 이끌고 있는 마틴 리 총재를 비롯한 야당 의원 어느 누구도 내각에 기용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 총재가 패튼의 개혁안을 “크게 후퇴한 조치이며 직선의원이 없는내각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비난한 것은 라우 의원의주장과 맥이 통한다.

 패튼 총독은 10월21일 중국을 공식 방문해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개혁안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홍콩의 민주화 확대를 더 이상 원친 않는 중국측의 패튼 안을 거부할 것은 분며하다. 패튼 총독은 북경 당국이 반대해도 자신의 개혁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이나 그러 경우 중국과 외교마찰을 일으킬 것은 불을 보득 뻔하다.

 홍콩의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T.L 트심씨는 최근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중국정부가 패튼의 개혁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당대회에서 개혁파가 득세하면 의외로 패튼의 개혁안이 중국측과의 조정을 거쳐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고진단했다.

· 일부에선 이번 개혁안을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나 패튼 총독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정부와 외교마찰을 빚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10월 12일자 <아시아 윌스트리트 저널>과의 회견에서 “입법평의회가 내 안을 심의해 통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국민투표 안은 현 단계에선 학구적인 문제이다‘라고 일축했다.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아 취임 벽두부터 발로뛰며 민의정치 실현을 꾀하는 패튼 총독이 중국측의 반대를 뚫고 뜻을 펼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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