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 십자가 진 재야 5인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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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방식 놓고 평민·민주 손발 안맞아 통추회의의 짐 무거워져

張乙炳·李富榮씨 빼고 모두 개신교 목사…‘중심있는 거중 조정’기대

 한동안 더위에 지친 듯 흐느적거리던 야권통합이 지난 8일 각 정파 5인씩으로 구성된 15인협의기구의 상견례를 계기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야권통합의 산파역을 맡은 ‘범민주통합수권정당 촉구를 위한 추진회의’(이하 통추회의 협상대표 5인은 張乙炳(대표간사) 李富榮 崔聖? 吳忠一 朴宗化씨. 이들은 이미 기성정치인으로 활동해온 다른 두 야당의 협상대표에 비해 비교적 ‘낯선’ 인물이다.

 그들 가운데서는 역시 대표간사를 맡은 장을병(성균관대·정치학)교수의 지명도가 가장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해직교수로서 이론을 바탕으로 정치현실에 대한 ‘독설 섞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현재 통추회의의 대변인으로서 ‘입’ 역할을 유감없이 해내고 있다. 한때 한겨레민주당에 관여했던 그는 현재 통추회의내에 조직적 기반은 없다. 그러나 정치논리를 구사하는 특유의 달변, 야당인사들가의 폭넓은 교분, 개인적 명망이 협상과정에서 유효하리라는 게 주변의 기대다. 그는 15인 협상회의에 임하는 통추회의의 입장을 “통추회의는 어떠한 독자안도 내놓지 않고 양쪽의 안을 조정해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힌다.

 한편 협상대표 5인의 명단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신교 목사가 세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현재 통추회의에는 ‘민연추’를 탈퇴한 민주연합파, ‘종로 5가권’으로 총칭되는 기독교운동세력, 아직은 소수의 참여에 불과하나 상당수의 참여가 예상되는 전민련 세력, 기타 지역운동세력이 함께 섞여 있다. 이 다양한 세력 분포를 감안하면 기독교계 대표 3인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랄 수 있다. 이와 관련 오충일 목사는 “실제 정치에 나서지 않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게 거중조정에는 더 나을 것이라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선출 배경을 밝힌다.

 ‘재야 몫 때내기’보다 ‘조정역’에 비중을 둔 대표선출은 15인협상기구의 위상과 협상순서와 관련한 재야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15인협상기구의 목적은 통합선언이라는 총론에 합의하는 것이며, 자칫 통합 자체를 무산시킬 구체적인 비분 문제 등 각론은 통합 이후 거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 3인 중 ‘비교적 많이 알려진 인물은 오충일(50)목사로 그는 ’기독교 운동권의 백전노장‘ ’인권운동의 개근생‘이란 호칭을 듣고 있다. 기독교계에서는 비록 소수교단인 복음교회 출신이지만, 이 교단을 대표해 교회연합운동에 헌신하면서 상당한 발언권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월항쟁 때에는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기독교사회운동 연합의 대표자격으로 전민련에 참여해 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기독교 운동권에서의 비중, 소탈한 인품, 대중적 지명도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통합 이후의 정치참여를 주변으로부터 강력히 권고받고 있다. 옴고사 자신은 “우선 통합쪽에 모든 관심을 두고 있다. 정치입문은 정치위원회가공식출범한 뒤 거기에서 논의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최성묵(59·부산 중부교회) 목사는 통추회의의 모태가 된 5월8일 재야 5인성명에 金觀錫 朴泂圭 목사 등과 함께 참여한 인물로 당시 재야에서조차 궁금해 한 인물이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잘 알려진, 부산 민주화운동의 큰 줄기를 형서해온 운동권 목사다. 부산 국민운동본보 의장을 지낸 그는 부마항쟁 당시 진두지휘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재야의 원로급인 그가 협상대표가 된 것은 그의 특수한 지역기반 때문인 듯하다. 당장 평민·민주 양자를 거중조정해내야 할 제야로선 민주당이 가진 ’재야=평민당‘이라는 인식을 불식하기 위해 영만에 기반을 둔 재야인사를 차구에 내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영남의 대표적인 재야인사인 최목사는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 파트너로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민주당의 소장파 의원들은 “최목사는 재야에 몸담았지만 현실적인 영남저서를 깊이 이해한다”면서 “민주당의 입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조직운동 1세대 李富榮씨 역할 주목

 박종화(45·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겸 한신대 교수) 목사는 학계쪽 인사로 보는 편이 오히려 더 적절한 인물이다. 협상대표 선출과정에서 공동대표들이 그의 ‘이론과 현실감각’을 높이 사서 적극 밀어넣었다는 후문이다. 한신대를 거쳐 서독에서 공부한 그는 독일 세계선교국에서 동북아문제에 폭넓게 관여했다.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에 밝은 이론가인 그느 5공시절 한국교계의 통일관계 선언문을 초안한 장본인으로 이 선언은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러나 다섯명의 협상대표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이부영(48·통추회의 상임실행위원)씨라고 할 수 있다. 金?泰 張棋杓씨와 함께 ‘재야의 40대 기수’로 꼽히는 그는 통추회의내의 가장 큰 실세인 ‘민연추’탈퇴세력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74년 동아일보 사태의 주역으로 해직기자가 되면서 재야운동에 입성한 이후 84년에는 민중민족운동협의회(민민협) 공동대표를, 85년에는 국민회의 사무처장을, 6·29 이후에는 해방 이후 최대의 조직이라는 전민련 상임의장을 지냈다. 운동권 지도자답지 않은 친화력과 교섭력으로 주요한 국면이 있을 때마다 조직을 만들어내는 실력을 발휘해 “무언가 만드는 데는 귀재”라는 평을 듣고 있다. 통추회의 발족과정에서도 재야원로 5인성명을 발표해놓고 주위의 오해 때문에 망설이는 원로들을 설득하는 한편, 지역 서명운동으로 통추회의 결성을 뒷받침해내기도 했다.

 지난 6월 범민주세력 단일 정당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하며 민연추를 탈퇴함으로써 오늘의 통추회의를 만들어 냈지만, 그 과정에서 ‘재야의 세포분역’이라는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그는 민주정당 결성을 함께 추구했던 동지들과 ‘결별하면서까지 통합야당 창출에 정치적 모험을 건 만큼,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야권통합을 이루어야 할 절박한 입장에 있다.

 

“재야가 야권통합에 나선 것은 처음“

 민주당의 주장처럼 15인 협상기구의 역할이 지분문제까지 포함한 ‘모든 이견’을 걸러내는 것으로 조정될 경우 그는 ‘재야몫’을 강력히 요구해내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야가 확실한 자기 지분과 공천권을 갖고 통합신당내의 뚜렷한 정치블럭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연합파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편 의원직 사퇴 직후만 해도 당장 통합을 성사시킬 듯 손발이 척척 맞던 평민‥민주당은 최근 ‘선통합 후협상’과 ‘선협상 후통합’으로 각기 다른 입장을 세우고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게다가 민주당 내에는 김‥이 총재의 밀약설과 김대중 총재가 ‘묘한 시기에 내놓은’ 부통령제 제안 때문에 민주당만 피해를 보았다는 피해의식과 자칫 평민당 수에 말려 부분통합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짙게 깔려 있는 형편이다.

 야권통합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자고 합의 해놓고 막상 그림 그릴 때가 되자 다른 구도와 색깔을 고집하는 셈이다. 자연히 이 양자를 혼합시켜 한 그림을 완성해내야 하는 ‘통추회의’쪽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지 않을 수없다. 민주당 5인협상대표인 盧式鉉의원은 “이제 야권통합의 결정적인 열쇠는 통추회의가 갖고 있다”고 전제하고 “의견이 다른 양당 사이에서 확고한 중심을 갖고 얼마나 조정역을 해내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통추회의가 두 야당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면 통추회의는 야권통합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다. 박종화 협상대표는 “해방 이후 야권통합은 있었으나 재야가 기성정치인들의 야권통합에 나선 것은 처음”아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만큼 만일 야권통합이 성사되지 못할 경우 재야는 두 야당보다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두 야당은 다시 ‘전에도 그래왔듯이’제도권정당으로서의 자기 갈길을 가면 그뿐이다. 국민의 지탄을 받을지언정현실적인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재야측이 주장하듯이 그 어느 때보다도 통합에 유리하게 조성된 국민정서, 재야운동권이 지닌 도덕성, 교회운동권의 중재자로서의 영향력을 걸고도 이 일을 성사시켜내지 못할 경우 재야가 감수해야 할 타격은 ‘존재의 위기’로 연결될 수 도 있다.

 따라서 두 야당을 어르고 다래고 설득하려는 통추회의쪽의 노력은 사력을 다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노력이 과연 ‘야권통합’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시켜놓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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