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부활에 수훈 갑
  • 편집국 ()
  • 승인 199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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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실적 제일 많은 판사 출신…양곡관리법 등 35개 법안 통과에 앞장

 동료의원들이 상임위에서 입법연구 활동을 가장 잘한 의원 중한 사람으로 지목한 민주당의 박상천 의원(민주·전남 고흥). 그는 88년 5월 구성된‘민주발전을 위한 법률개폐 특별위원회??에서 당시 평민당측 간사로 활약하며 40여개 법률안을 직접 기초해 그중 35개를 통과시켰다.

 그의 공로 중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농·수·축협장의 직접선거를 규정한 농·수·축협장의 직접선거를 규정한 농·수·축협법 개정, 추곡 수매가와 수매량에 대해 국회 동의를 의무화한 양곡 관리법 개정, 그리고 징역 살고 나온 사람을 무한정 가둬둘 수 있었던 사회안전법 폐지 등이다. 특히 그는 국회를 통과한 국정감사와 조사에 관한 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될 운명에 처했을 때 이를 다듬어 여당과 재협상, 수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당시 국회 반대토론이 끝난 후 민자당의 박태준 최고위원까지“듣던 중 가장 명연설이었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박의원은 이 법에 의해 국정감사가 부활됐을 뿐 아니라 국정조사의 한 방법으로 광주 특위와 5공 특위가 구성된 데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자치제법 제정 때는 입법 뿐 아니라 여당과의 협상에서도 솜씨를 발휘했다. 3당 합당 이후 민자당은 4당체제 때 합의한 지자제 실시 약속을 파기하려 했다. 여당은 김대중 평민당총재의 단식을 계기로 지자제 실시 방침을 정한 후에도 지방의회만 구성하고 자치단체장 선거는 안 치르려고 했다. 이때 박의원은 여당측과의 협상을 통해 자치단체장 선거를 있게한 숨은 공로자로 꼽힌다. 박의원은 지금 진행중인 선거법·정치자금법 개정 협상에서 민주당측 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61년 전남 광주에세 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67년6월 순천 지청장을 끝으로 법조계를 떠났다. 그리고‘일부러??시골에서 변호사개업을 했다. 정계진출의 발판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그 뒤 87년 대통령선거 때 김대중 후보를 도운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 13대 국회에 진출했다.

 박의원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야당의 정책이 합리적인 대안이 되도록 노력한 데 대해 특히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국회 입법이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세력 간의 힘겨루기로 결정될 때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토로한다.“좀더 자유롭고 개성이 존중되는 나라,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일익을 맡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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