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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앵커'인가 '여성' 앵커인가

능력보다 미모에 초점…이중부담 여배우 기용 대표적 예…비판 높아

고명희 기자 ㅣ | 승인 1991.11.21(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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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데스크를 제작하는 MBC 스튜디오. 11월5일 밤 8시50분. 카메라 텔레비전 간이테이블 등이 화면 뒤에 배치되어 있고, 화면 앞으로는 앵커 嚴基永(40) 白智娟(27)씨가 앉아 있다. 9시 20분이 되자 백지연씨는??주택가 카바레??사건을 시작으로 뉴스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남성 혼자 진행하던 뉴스데스크에 첫 진출(88년)한 여상답게 그의 진행은 자신에 넘쳐 있다. 엄기영씨가 한미, 한소정상회담 당시 현지취재차 자리를 비웠을 때 혼자 전국의 시청자를 상대했던 그인지라 뉴스를 진행하는 솜씨는 3년 경력에 비해 매끄럽다.

 KBS MBC 양사가 불꽃퇴는 시청률경쟁을 벌이는 밤 9시 뉴스는 생방송으로 소위‘앵커??에 의해 진행된다. 그러나 영어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앵커맨(anchor man)이란 단어는 없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 본격??도입??된 것은 지난 80년대 초. 최근 신문에는 앵커우먼, 여성앵커라는 단어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러나 오늘날??여성앵커??라 불려지는 사람들은 그 칭호가 버겁다. 이들은 나름대로??앵커??가 되려고 노력해도 부르는 사람들은 자꾸??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서울대 姜明求 교수(언론학)는“망망대해에서 닻을 내려 배를 정박시키듯 뉴스에 의미의 틀을 지어 시청자에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앵커??라고 설명한다.

 앵커맨은 미국의 상업방송에서만 쓰는 신조어이다.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는 뉴스캐스터(news caster)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앵커맨과 뉴스캐스터는 다같이 방송뉴스의 얼굴이요, 목소리이지만 이들은 한 가지 점에서 크게 구분이 된다. 뉴스캐스터가 이미 취재, 편집된 뉴스의 전달자인데 비해 앵커맨은 뉴스의 취재와 편집 등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자이다. 그러나 국내의 TV종합뉴스는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방송뉴스진행자는 앵커맨이기보다는 역시 뉴스캐스터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다가 보도국에서 2년간 기자로 뛰면서 취재의 현장에서 뉴스감각을 익힌 뒤 아나운서로 복귀한 MBC의 손석희씨는??우리나라 앵커는 뉴스제작의 전권을 책임지는 미국의 앵커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즉 국내뉴스는??앵커의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앵커의 문제는 앵커의 본질적인 문제와 궤를 같이 한다. 남성앵커는??그래도??기자 출신이 현재의 앵커로 자리를 굳혔다는 점에서 다소 위안이 되지만 여성앵커는 한결같이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좀에서 다소의 불안을 느낀다.

 최근 5년간 가장 두드러진‘여성앵커??는 KBS의 申恩卿(33)와 MBC의 백지연씨(27)이다. 신씨는 81년 5월 KBS 공채 8시로 입사하여 그해 9월 당시 최동호씨의 보조앵커로 출발한 이래 급성장하여 87년 2월부터 약 5년간 토?일요일 9시뉴스를 단독으로 진행, 명실공히 여성앵커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신씨는 자신이 여성앵커로 불리는 데에 대해서??쉬임없이 10여년간 노력한 덕택에 오늘에 와서 관심을 끌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MBC 뉴스데스크에 여성이 등장한 것은 3년 전. 87년 11월 아나운서로 입사한 백지연씨가 수습도 떼기 전인 88년 5월 보조앵커로 첫 선을 보였다. 당시는 기존 남녀앵커가 진행하는 KBS의 뉴스 보도형식을 뒤따라가는 입장이 역력했다. 시청률경쟁 측면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백씨는 지난 6월 보도국 국제부기자로 발령을 받아 회사가 정책적으로 키우는‘여성앵커 재목??으로 자리잡았다.

 TV뉴스에 비쳐지는 여성앵커들은 어떤 모습인가. 주부 柳賢淑씨(39)는“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으로 여겨져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견여기자 ㄱ씨(43)는??남성우월주의의 한단면??으로??꽃??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서울대 강명구 교수 역시??특수효과처리??를 내세워 여성이 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강교수에 따르면 양 방송사의 TV뉴스에는 네 가지의 유형으로 고정된 영상화면이 사용된다고 한다. 앵커가 단독인 경우, 나란히 함께 나오는 경우, 앵커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게 하고 그 반대편 상단부에 특수효과처리(크로마키:그래픽 자막 등)와 함께 나오는 경우 등이다. 그런데 일부 뉴스에서는 뉴스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요약해주는??특수효과처리??위치를 미모의 여성앵커가 차지해버린다는 것이다. 강교수는??인지심리학에 의해 시청자의 눈이 제일 먼저 가는 지점은 오른쪽 상단이다. 이 자리를 앵커가 가리면 시청자들로서는 뉴스보다 여성앵커를 먼저 인식하게 되고 만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이상열 편집부장(MBC보도국)은??앵커들이 나란히 앉아 진행하는 상황에서 카메라 위치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라며 터무니 없는 말이라고 일축한다.

“뉴스감각 갖추는 데는 취재경험 중요??             
 다음달 개국을 앞둔 서울방송은 최근 밤 10시‘sbs뉴스쇼??의 뉴스캐스터로 영화배우 李慧英씨(29)를 발탁했다. 權五勝 金鐘贊 등 방송인들과 함께 뉴스를 이끌어갈 이혜영씨는??여성앵커=꽃??이라는 시각을 노골적으로 반영했다 해서 방송가에서도??여성앵커의 평가절하??라는 여론이 높다. 한양대 李敏雄 교수(방송학)는??일본의 상업방송과 상당히 비슷하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여배우 기용은 뉴스의 심각성을 간과해 자칫 사실을 오도할 위험마저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뉴스쇼를 총괄하는 권오승 편집제작부장은??정보 계도 감시 들 뉴스의 특징을 살리되??포장??자체를 쉽고 재미있게 하자는 뜻에서 이혜영씨가 발탁됐다??고 강조했다. 정작 당사자 이혜영씨는??여자가 여자로 보일 때 부드러운 사회가 될 수 있다??면서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아나운서 ㅇ씨는??사람들은 흔히??여성앵커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공자님 말씀??을 하지만 본심은 여성을??꽃??으로 보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라도 지적한다.

 ‘마감뉴스??를 진행했던 朴映宣씨(30?MBC 보도국 경제부)는 자청해서 뉴스진행을 그만둔 뒤 기자로만 뛰고 있다.??여성앵커??를 하고 싶지만 지금은 연륜이 부족해서 때가 아니라는 게 그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여성앵커의 전형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방송기자 중 여기자는 몇몇 되지 않는‘소수집단??이다. 반면 아나운서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 현실여건을 감안하여 박중길씨(전 KBS 해설위원장)는??방송앵커론??이라는 연구논문에서 정확한 현실판단능력만 있다면 기자출신이든 아나운서 출신이든 구분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앵커로서의 능력보다 방송국의 이미지를 우선적으로 심는 데 주력하는 현 상황에서 박씨의 지적은 일견 설득력을 지니기도 한다.

 방송의 사회적 역할은 공정한 보도를 하고 토론의 광장을 제공하여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 역할은 현장에서 다져진 뉴스감각이 우선해야 함은 물론이다. 6년간 앵커를 지낸 이득렬씨(MBC 보도이사)는 미래의 여성앵커는 취재경험을 통한 뉴스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뉴스감각??을 익히기 위한 훈련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므로 그런 점에서 기자경험을 앵커가 되기 위한 필수과정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직장을 옮겨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변신한 이창섭(sbs 편집제작부)도??사실 방송 전 원고를 읽어보면 내용을 전달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 그러나 취재경험을 쌓으면서 현장의 분위기에 젖어본다는 것은 뉴스감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고 한다,

 “말들이 많아요. 하지만 모두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뛰어보는 것이지요. 보다 중요한 것은 브라운관 뒤에서 일어나는 것 아니겠어요???의사가 진맥하듯 사건의 맥을 정확히 짚어내고자 노력한다는 어느 여성앵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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