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에도 이제 구멍가게 생긴다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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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혁 발걸음 급속히 빨라져…민영 소기업 설립 허용, 세제 혜택도

소련의 경제개혁이 급진개혁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 7월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혁노선에 반기를 든 보수파의 역습이 무참히 실패함으로써 나타난 결과이다.

 8월9일 소련에서는 민영 소기업 설립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보호·육성하는 조치가 공포되어 즉시 발효됐다. 모든 기업은 국영이며 사기업은 탄압의 대상이었던 과거에 비하면 역사적인 정책적 전환이다. 소련국민은 구멍 가게도 좋고, 컴퓨터 사업도 좋고 무엇이든 합법적으로 소기업을 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업면허는 지방정부 당국이 발부토록 되어 있으며, 신청한 지 2주일이 지나도 면허가 나오지 않을 때는 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 첫해에는 세금의 50%, 2년째는 25%를 환불받는 혜택도 있다.

 서유럽의 주요 언론기관들은 소련의 이와 같은 움직임을 상당히 중요시하고 있다. 이들 언론은, 소련정부가 지난 5월에 제시했다가 반대여론 때문에 후퇴시킨 리슈코프 총리의 개혁안에서 보여준 미온적인 단계적 개혁정책을 버리고 이제는 대담하게 시장경제의 도입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음을 뜻한다고 보고 있다.

 금년 가을은 소련의 경제개혁 조치가 큰 진전을 보일 시기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가 성안중인 9개의 법안이 이때 의회에서 처리 될 예정이다. 그중에는 가격통제의 부분적인 해제, 일부 품목의 가격 인상, 외국 투자에 대한 보호 규정, 종업원 1백명 미만인 중소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등에 관한 법안 등이 들어 있다.

 

러시아공화국, 시장경제체제 도입 추진

 이러한 개혁노선을 추진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당내 보수파가 당대회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 실패한 것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첫째는 생필품 부족에 따른 여론의 압력이다. 둘째로는 경제난국을 풀기 위해 또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지방 기관들이 독자적인 조치를 앞질러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는 압력이다. 예컨대 모스크바 북방 2백50㎞지점인 야로슬라블(Yaroslavl)에서는 지방정부 당국이 농작물 수확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동원령을 내렸다. 전국적으로 여러 공장이 종전과는 달리 인력차출에 협조하지 않아 곡물을 거두어들이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모스크바 시의회는 3백만호가 넘는 시내 아파트를 개인소유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를 검토중에 있다.

 지방정부 기관의 개혁조치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급진개혁과 지도자 보리스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의 시장경제도입 계획이다. ‘5백일간의 위임’이라는 이름의 이 계획은 4단계로 나누어 추진될 예정이다. 첫째 사유재산권에 관한 법률 재정, 둘째 국영기업에 대한 재정보조의 종결 및 경쟁력이 약한 기업의 매각 등 민영화 조치, 셋째 가격 통제의 해제, 넷째 안정화 조치 등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도 이 계획에 관심을 표시하고 옐친과 경제개혁을 협의하기 위한 ‘공동위원회’를 설치키로 결정했다. 과연 ‘옐친 계획’이 원안대로 실천에 옮겨질 수 있을 것인지는 불확실 하지만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자극을 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노보스티> 통신사의 시사해설가인 브야체슬라프 코스티코프는 최근 서방측 신문에 실린 기고문에서 “소련의 70년 역사를 통해 축적된 공산당 보수파의 힘은 막강하다”고 전제하고, “당대회에서 보수파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와 동유럽의 변화 때문에 사기가 떨어져 있는 군 출신 대의원들의 동조를 확보하여 당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도전했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코스티코프는 소련의 지방 사정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보수파의 오산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무드가 강하고 다당제 정치문제가 이슈화 된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지방은 확실히 개혁무드가 약한 것은 사실이나 지방도 몇해 전처럼 하자는 대로 따라다니는 그런 사회는 이미 아니며 상당히 개혁쪽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보수파 대의원의 수효가 상당히 많았지만, 당대회 전체를 놓고 보면 대의원들은 크램린 밖 시민들의 절박한 심정에 무신경할 수만은 없었다느 것이다. 만약 보수파가 승리한다면 당 자체의 위기를 악화시켰으면 시켰지 완화해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고르바초프의 설득이 잘 먹혀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소련은 경제개혁을 어떻게 추진하느냐 하는 문제 외에도 민족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요즘 리투아니아의 독립 선언에 관한 협상이 모스크바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민족간의 분규 때문에 생긴 아르메니아 자위민병대의 무장해제 작업도 진행중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여름 휴가에서 돌아오는 9월에는 세계언론의 시선이 다시 모스크바로 모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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