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과소비 난리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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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유가·전기료 내년 인상…자가용 등 수요폭주에 제동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지난 8월13일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1시간 동안 국내 전력소비량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1시간 전력소비량은 1천7백25만kW였는데, 이는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가 계속된 8월 둘째주의 1천7백kW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당시 전력공급예비율은 8.3%로 뚝 떨어져 여유전력은 1백40만kW에 불과했다. 80년대초까지 연중 최대전력소비는 겨울에 몰렸으나 8년 전부터 여름에 몰리는 추세로 바뀌었다. 이같은 현상은 소득증가에 따라 냉방용 전력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름철 평균 전력소요량 가운데 30%에 가까운 4백만kW가 냉방에 쓰이고 있다고 한전측은 말한다.

 

대형건물 냉방, 추울 정도

 올들어 6개월간의 주택용 전력소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 늘어난 80억kWh였고, 업무용 전력소비는 24%증가한 57억kWh였다. 업무용 전력소비량에는 대형 사무용 빌딩, 호텔, 사우나, 기타 유흥음식점 등에서 쓰는 전기가 포함돼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이 지난 여름 3백30개 대형건물을 조사한 결과 1백50곳이 25도 이하의 과냉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롯데월드는 하루에 무려 40만kWh가 넘는 전력을 사용한다. 제주도의 하루평균 전력사용량 1백만kWh의 약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 가운데 70%는 자체 발전시설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한전에서 공급받아 쓰고 있는데 한달 전력비용만 20억원이 넘고 있다. 여의도 63빌딩의 하루 최대 전력사용량은 14만kWh. 여름 한철 2억원 이상 전기요금을 내는 곳으로는 서울대병원, 럭키금성의 쌍둥이빌딩도 포함된다.

 가정용 전력소비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동부이촌동 ㅅ아파트, 강남의 ㅎ아파트 등 고급 대형 아파트촌의 베란다에는 1∼2대의 에어콘 환풍기가 부착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든 방에 에어콘을 부착한 가구도 눈에 띈다. 에어콘은 일반 전기제품 가운데 전력소모량이 가장 커서 하루 6시간을 사용할 경우 약 2백30kWh의 전력이 소모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올여름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폭주하는 전기사용에의 각종 전기사고로 정전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에어콘을 몇대씩 달고도 전기료 부담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기값이 싼 것이다. 우리나라 전기값은 다른나라에 비해 월등히 저렴하다. 1kW를 생산하여 판매하기까지 드는 비용은 약 50원 안팎. 한정은 ‘값싼 에너지’사용을 권장하면서 지난 82년 이래 무려 9차례에 걸쳐 전기값을 30%나 내렸다. 국내 전체 전기료는 1kWh당 52원으로 대만 55원, 일본 90원, 서독 75원, 영국 61원에 비해 훨씬 싸다. 특히 농업용은 일본 서독 영국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주택용은 한국 65원, 대만 60원, 일본 1백12원, 서독 1백32원, 영국 70원.

 값싼 전기 공급을 마달 이유는 없다. 문제는 이같이 싼 전기값이 결국 에너지 낭비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일부 선진국의 전력회사들은 이미 80년대초부터 전기를 파는 데 급급하지 않고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전기를 절약하는 프로그램을 팔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추세는 1kW의 추가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발전소 설비가 1kW의 전력소비를 줄이는 데 드는 비용보다 많게는 1백배 이상 비싸다는 인식이 정착하면서부터 생겼다.

 지난해 가을 서울 월계변전소 화재로 인한 정전으로 성북구 등 5개구 25만가구는 칠흑의 밤을 보내야 했다. 이같은 대정전 사고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지난 87년 7월 오후 1시 일본 도쿄에서는 이상 고온으로 인한 냉방수요의 급증으로 전원용 변전소의 보호계전기가 작동해, 전력공급이 중단된 일이 있었다. 예상외의 급격한 수용증가로 전압이 떨어져 정전에까지 이른 것인데, 3시간여만에 복구되었다.


 이같은 사태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서울·인천·부산을 축으로하는 우리나라 전력공급 계통은 일대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만약 서울에 전력수요가 폭주해 공급을 초과한다면 당인리발전소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제일 먼저 전력생산 기능을 멈추게 되고 이어 인천화력이 그 부담을 떠안아 무너지게 된다. 그 영향은 고리발전소에까지 연쇄적으로 파급되어 전국의 대정전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전력수요가 이처럼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할 경우 2년 뒤에는 수급 불안정이 올지도 모른다. 발전설비는 88∼89년 각각 5% 증가한 데 비해 전력수요는 87∼89년중 연평균 13%, 올들어서는 그보다 더 빨리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설비예비율은 올해를 기점으로 25%를 밑돌기 시작, 92년에는 적정수준 15%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한전은 전망한다. 폭발하는 전력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발전소를 늘려야 하겠지만 이같은 추세로 증가하는 소비량을 충족시키려면 “90년 중반쯤에는 전국 해안선 대부분을 발전소로 메워야 할 판”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화력발전이 우리나라 전체 발전에 차지하는 비중은 50%이상이다. 이 가운데 35% 가량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와 가스를 태워 터빈을 돌린다.

 

에너지값 내린 것이 소비 부채질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중 에너지소비 증가는 23%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 이후 에너지소비는 급격히 늘고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제조업의 에너지탄성치(부가가치증가율에 대비한 에너지소비증가율)는 2.51이다. 물건을 하나 더 만드는 데 에너지소비는 2배 이상이나 된다는 말이다. 이같은 높은 에너지 탄성치는 호황기였던 86∼88년의 평균치보다 3배나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에너지 사용 효율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자가용붐으로 휘발유 소비도 지난 86년 이후 연평균 30%씩 늘어간다. 교통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기름값은 연평균 3조8천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좁은 도로 사정과 자동차 급증에 따른 교통체증으로 야기되는 추가 비용은 1조3천억원에 이른다. 교통사정은 더욱 나빠질 전망이어서 앞으로 10년 뒤가 되면 추가비용만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교통개발원은 전망한다.

 이러한 암담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에 팔린 자동차 34만5천대 가운데 배기량 1천5백cc를 넘는 중·대형 자동차가 21%를 차지했다. 통상 2천cc이상의 중형차는 1천5백cc이하의 소형 승용차보다 연로가 1.5배이상 든다. BMW등 외제차는 많게는 3배까지 더 든다. 그렇지만 2천cc를 넘는 대형승용차는 주문이 밀려 계약을 해놓고도 몇주일씩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외제 승용차 수입량도 금년 7월말 현재 2천1백대로 지난해 5백70대에 비해 무려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동사태 계기로 위기의식 가져야

 소득이 올라가고, 전기·석유 등 에너지 값이 떨어질 때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과소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지난 몇년간 에너지 소비가 급격히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에너지 가격의 하락을 꼽을 수 있다. 전기값은 8년간 30%내렸고, 휘발유값은 81년 11월 리터당 7백40원에서 현재 3백73원으로 절반이 떨어졌다. 가격결정이 소비에 끼치는 영향을 염두에 두지 않은 당국의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8월초 전력소비추세를 보면 국민들은 아지까지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동자부 분석에 따르면 국제원유가와 국내원유도입가가 배럴당 25달러에 이르면 내년도 국내유가 추가부담은 2조2천3백90억원에 달하게 되어 관세인하 조처를 취하더라도 35%의 유가인상 요인이 발생한다.

 한편 정부는 지난 17일 내년 1월부터 휘발유의 특별소비세율을 큰폭으로 인상하고 대형승용차의 자동차세를 중과하며 전력요금을 인상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에너지절약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에 부과되는 특소세율이 현행 85%에서 1백 30%로 곱절 가까이 높아지게 되어 휘발유 가격은 1리터당 3백73원에서 4백54원으로 인상된다. 자동차세는 2천cc이상 중대형 자동차의 경우 50%가량 인상된다. 2대 이상 자동차를 소유한 가구에도 중과세되고 일부자동차의 수입도 규제된다. 이밖에도 에어콘의 특소세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자정 이후엔 네온사인과 전광판도 꺼야 한다.

 결국 정부는 뒤늦게나마 최근 고조되고 있는 에너지 과소비를 잠재우는 방법으로는 가격정책으로 절약을 유도하는 것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는 국가에너지관리에 대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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