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는 업무상 재해원인”인정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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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産災기준 확대, 법원도 승소판결…억울한 직업병에 보상길 트여

 과로에 시달리는 한 직장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치자. 만약 직장에서 일하다가 발생한 것이 확실하다면 당연히‘업무상 재해??로 처리돼 산업재해(산재) 보상금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만약 그의 질병이??업무와 관계없이 기존 질병이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라면 그의질병은??업무외 재해??로 처리돼 보상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노동부가??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개정했고, 산재 관련 재판에서??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을 폭넓게 해석하는 판례도 늘고 있어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된 직장인의 눈길을 끌고 이TEk.

 특히 얼마전 대법원에서 내린 판결은 산재관계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는데, 지난 89년 과로로 사망한 朴炳根씨에게‘업무상 재해기준??이 폭넓게 적용된 드문 사례이다. 제조업체 관리직원이던 박씨는 89년 직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던 중 쓰러져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직접사인은 위장출혈, 선행사인은 간경변증.

 노동부는 박씨의 사망을‘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의 부인 曹明淑씨(35)는 이에 불복해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행정심판소송을 냈고 최근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와 관련이 없더라도, 업무상의 과로가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 시킨 경우에는 이를??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업무중 아니라도 인과관계면‘산재??인정
 반드시 업무수행중에 일어난 재해가 아니더라도 근무형태에 따라‘업무상 재해??로 판정받은 사례도 있다. 공장 사무실에서 잠자다 과로사한 鄭모씨가 대표적인 사례. 정씨의 정확한 사인은 과로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급성심장마비였으며, 정씨의 가족은 이것이 사망 전 몇주간 주?야간 근무를 반복하여 과로가 겹쳤기 때문이라고 보고 산재보험금을 관리하는 노동부에??업무상 재해??로 보상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행정소송으로 발전해 지난 9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정씨의 근무형태가??급성심장사를 유발한 과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했다.

 과로사 또는 과로로 인한 재해에 대한 노동부의 처분이 법정에서 잇따라 뒤집히자 이와 비슷한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려는 움직임도 점 차 늘고 있다. 지난해 집에서 고혈압성 뇌출혈로 쓰러져 노동부에 요양신청서를 냈던 鄭蓉澤씨(45·서울 도봉구 방학동)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정씨는 지난 5월 서울 동부지방노동사무서에 요양승인신청을 냈으나‘요양불승인??처분을 받았다. 이유는??재해를 입은 장소가 사업주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청구인 집이므로 업무와의 관련 여부를 확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현재 재심사를 청구해 놓은 상태. 정씨는??힘겹더라도 재판까지 끌고 갈 생각??이라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법원의 판례와 함께 최근 노동부가 개정한‘업무상 재해인정기준??(인정기준)도 관심을 끌고 있다. 업무상 재해인정 기준은 지난 82년??산업재해보상업무를 신속?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정부가 마련한 것이다. 개정 기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으로 종전??업무와 질병 간에 의학적으로 인과관계가 명백한 경우??에서??상당한 인과 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로 확대한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근로자들의 업무와 명백한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각종 중독증도 작업장의 환경, 근로자의 경력 등??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으면 직업병으로 인정받는다.

 이밖에도 노동부는 중독증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인 이황화탄소에 대한 기준을 신설하기도 해 원진레이온 사태의 희생자 등 산재환자들을 구제하는 데 밝은 전망을 던져주었다. 산재환자 전문의료기관인 서울 구로의원 상담원 李允根씨는“현재의 노동부 심사방식에 비춰볼 때 새로 신설된 기준이 오히려 악용될 우려도 있지만 여론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일단 다행스런 일??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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