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피해자 ‘겹불행’
  • 김당 기자 ()
  • 승인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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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한 이선영씨 언론에 시달려… 이종원씨 가족, 생계 막연

온통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지존파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이선영씨(27.가명)와 그 가족, 그리고 지존파에게 살해당한 희생자 가족들에게 이 악몽을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존파의 범행 자체는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것이지만, 특히 이 희생자들이 한결같이 당초 그들이 노렸던 ‘돈 있다고 으스대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잘못 고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가족들의 억울함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우선 지존파가 범행 대상으로 삼은 돈 많은 사람은 그렌저 3000V6, 즉 배기량 3천cc짜리 6기통 그랜저 승용차를 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범행에서부터 이들의 판단은 빗나갔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납치된 이종원씨(36)의 승용차는 그랜저 2.4였다. 이선영씨에 따르면, 현장에서 범행 대상 차량을 ‘찍는’ 일은 백병옥의 몫이었는데, 그는 그 차를 3천cc로 오인했다.

 이종원씨의 형 이종태씨(ㄱ고속 기사)에 따르면, 동생 이씨가 타고 다닌 그랜저는 석달 전에 7백만원을 주고 산 중고였다. 이씨의 그랜저는 부의 상징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에 있는 밤 업소에서 새벽에 성남으로 퇴근해야 하는 이씨에게 승용차는 필수품이었고, 출장이 잦다 보니 악기를 싣고 다니려면 대형 승용차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씨의 부인과 자식 등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종태씨가 더욱 억울해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랄 책임을 진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못받게 된 것’이다. 이씨에 따르면, 당초 이 사건은 자기가 보기에도 동생이 연고가 없는 전북 장수까지 반바지 차림으로 간 점, 낭떠러지로 떨어진 현장의 갓길에 바퀴자국이 없는 점 등 교통사고로 보기에는 의혹이 많았으나 경찰은 이를 애써 외면했다는 것이다.

 또 현지 검찰이 지휘하여 부검했지만, 오른쪽 허벅지의 칼로 찔린 상처와 포승에 묶인 팔목 상혼 등을 발견하지 못한 채 목뼈가 부러진 것을 빼고는 특이 사항이 없는 것(단순 교통사고)으로 결말이 난 점도 이씨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다(이선영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종원씨는 납치 당시 칼에 찔려 5~10㎝ 가량의 상처를 입었고, 포승에 묶인 팔목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범인들의 교통사고 위장 처리와 경찰의 판단 착오 덕분에 교통사고로 결론이 나 이씨 가족은 그나마 차량 보험금이라도 탈 수 있었는데, 뒤에 교통사고가 아니라 살인 후 위장처리된 것이 밝혀짐으로써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씨 가족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범죄 피해자 구조제도’이나, 보상 신청과 절차가 까다롭고 보상액(사망시 상한선 천만원)도 적어 별 도움이 안되는 형편이다.

소윤오씨는 보험 들어 그나마 다행
 ‘예상을 빗나간’ 억울한 죽음을 당하기는 소윤오씨(42.삼정기계 대표)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범인들의 성남의 한 공원묘지에서 ‘사냥감’으로 찍은 소씨의 그랜저 승용차는 겉만 3천cc짜리로 개조한 것이다. 범인들은 소씨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종소기업 사장으로서 우리 사회의 현실상 기업을 운영하려면 큰 차가 필요했는데 돈이 없어 겉만 3천으로 만들었다는 해명을 들었으나, 그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남기고 비명에 간 소씨의 경우 생명보험에 들어 있어 자녀들의 생계비는 어느 정도 마련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씨 부부의 경우 납치된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경찰의 대응 미비로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국가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일고 있다.

 비록 살아남긴 했지만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이선영씨이다. 피해자이자 증인인 이씨는 경찰에 두 번, 검찰에서 세 번 조사를 받았다. 가족들이 입을 충격을 우려해 가족에게도 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은 이씨에게 현재 괴로운 것은 언론의 과도한 추적이다. 이씨에 따르면, 이씨는 경찰을 사칭한 한 신문사 기자가 가족들의 만나 사고 소식을 알리고 사진을 빼앗아가 이를 보도한 것이나,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신문사인데 누가 위로금을 기탁해 와 이른 전달해야 하니 만자나는 식의 언론 추적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면 지방의 친척 집으로 내려갈 예정인 이씨는 자신은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 안(범행 아지트)에 있을 때도 죄는 밉지만 순간순간 사람은 밉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다른 세상에서 좀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길 빈다“라고 최근 심정을 밝혔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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