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普熙 한국문화재단 총재
  • 이석렬 주미 특파원 ()
  • 승인 199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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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교주, 김일성 만난다”

크렘린궁에 발을 들려놓은 통일교가 이번에는 만경대 대문을 두들기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공식 대면한 최초의 한국인임에 틀림없는 文鮮明목사가 스탈린주의의 마지막 왕조를 굳게 지키고 있는 金日成주석을 곧 만나게 될 것이라는 언뜻 믿기 어려운 얘기가 눈앞의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

 문목사의 기발한 발상에 대해 그의 신도들은 이것을 ‘하늘의 뜻’으로 믿고 있는데, 이 하늘의 뜻을 이 땅위에 이루기 위해 벽돌을 쌓고 기둥을 세우는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이 朴普熙씨다. 흔히 ‘걸어다니는 컴퓨터’로 알려진 박씨는 통일교 창시 때부터 문교주의 오른팔과 같은, 문교주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누가 보더라도 통일교 왕국의 제2인자다. ‘한국문화재단 총재’라는 직함 이외에도 회장, 사장, 위원장 감투가 스물댓개나 되는 박씨는 문교주의 설교를 도맡아 영어로 통역하여 외국인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忠南 牙山에서 태어나 육사 2기로 입교하자마자 6·25동란이 일어나 전투에 참가한 그는 중령으로 예편하기까지 국방부 차관보좌관, 주미 대사관 무관보좌관 등 참모 자리를 주로 거쳤다.

 박씨는 주소만 미국이지 항상 외국에 나가있는 편이다. 그가 사장으로 있는 〈워싱턴타임스〉3층 집무실 책상 위의 출장 계획표에는 샌프란시스코회의, 북경과 모스크바 방문 등의 여행계획으로 가득 차있다.

 

● 문선명목사가 모스크바를 방문,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는 사진이 신문에 났을 때 사람들은 다들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반공의 선봉장격인 문목사가 공산주의 종주국의 최고지도자와 만나 십년지기처럼 파안대소한 일에 놀라고, 통일교의 북방정책이 정부의 북방정책을 한 발자국 앞질렀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 물과 기름 같은 두사람이 만나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먼저 어떤 동기에서 문목사가 고르바초프를 만나게 되었고 만나서 한 이야기가 어떤 것이지, 두 분의 극적인 대면을 막후에서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진 방총재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야 할 사정이랄까…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실은 고르바초프대통령쪽에서 문목사님을 더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련은 공산주의 갖고는 더 이상 장래가 없다는 점을 깊이 깨닫고 대안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고르바초프의 측근이나 소련 비밀경찰(KGB)이 문목사님을 추천한 것입니다. 그들은 고르바초프가 문교주를 초청하여 정중하게 환대함으로써 문목사님 같은 반공의 거인이 고르바초프를 껴안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개방과 개혁정책이 눈가림이 아닌 참된 것이고, 이를 추진하는 고르바초프는 모사가가 아니라는 것을 서방측에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그들은 문목사님의 저력, 즉 문교주가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다했습니다. 그밖에도 그들은 엄청난

財源을 갖고 있는 문목사님이 결심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낼 수 있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물론 문목사께서도 판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항상 공산주의는 레닌혁명 이후 70년만에 망한다고 말씀해오셨고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을 바로 공산주의 패망의 시작으로 보신 겁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가 하루속히 망하여 세계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르바초프를 도와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환자가 ‘명의’를 만난 셈이지요. 두 분이 만나서 한 이야기의 핵심은 서너 가지가 됩니다. 문목사께서 처음 하신 말씀은 “극동의 평화는 소련이 책임져야 한다”는 한반도 안보문제였습니다. “나라가 둘로 갈라진 것은 강대국들의 책임이요, 김일성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강대국의 하나인 소련이므로 평화주의자인 당신이 이제 책임지고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힘써주고, 특히 김일성을 설득하여 다시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반도는 반드시 통일돼야 하는데, 김일성의 현재의 주장이나 입장은 소련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목사께서 지적하셨습니다. 아울러 “자칫 잘못하면 루마니아와 같은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속히 찾도록 북한을 깨우쳐 줄 것과 김일성에게 문선명이는 적이 아니라 만나서 이로울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또 그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데 문목사님이 도움이 되면 되었지 결코 김일성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세번째로 문목사께서는 한·소국교정상화를 하루라도 빨리 매듭짓는 것이 소련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련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문목사님 스스로 가능한 모든 분야에 걸쳐 “소련을 도와줄 각오가 서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문목사님의 말씀에 고르바초프는 매우 감동을 받은 듯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당신은 평화를 창조하는 사람이요, 또 모든 사람을 하나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문목사님이 제기한 문제들을 이
해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 고르바초프와 문목사 면담이 있은 뒤 곧이어 盧泰愚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한·소관계정상화를 위한 역사적인 수뇌회담을 열었습니다. 노·고르바초프 회담에 문목사가 얼마만큼 기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것은 문목사님이 고르바초프를 만난 동기 중의 하나랄까, 임무 가운데 하나가 양국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이었으니까요. 문목사께서는 한·소국교수립이 이미 제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정상화를 앞당기는 것은 소련의 개혁정책을 성취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두 나라 대통령이 번갈아 양국 수도를 방문하도록 권고했습니다. 내년 봄 고르바초프의 일본 방문 때 서울도 다녀간다는 말이 있지만, 이에 앞서 먼저 서울을 다녀가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저런 일로 제가 곧 모스크바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 문목사 일행이 모스크바 방문을 마친 뒤,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환영대회장의 전광판에 새겨진 “이번에는 고르바초프, 다음에는 김일성‘이라는 표어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통일교가 북한을 겨냥하고 있고 편의상 소련을 거쳐서 돌아간다는 의도가 뚜렷해보였습니다. 통일교의 북한 진출문제는 얼마나 시급한 일로 일정이 짜여져 있고 현재 어떤 단계에 와있습니까? 항간에는 올 가을에 문목사가 평양을 방문, 김일성주석을 만날 수 있도록 박총재가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이에 대해 설명해주시지요.

 진행중인 모든 일을 다 말씀드릴 수 없어 미안합니다. 미리 알려져서 반드시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칙만은 확인해드리지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소련을 통해 김일성 면담이 추진되고 있고 이와 병행해서 중국을 통한 면담 교섭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정학상으로도 중요하지만, 80대 고령의 지배층은 6·25때 파병하는 등 김일성과는 전우관계에 있는, 의리를 중히 여기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들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이런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들이 앞장서서 “문선명목사는 김일성을 곤경에 빠뜨릴 사람이 아니라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설득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얼마전 북경에 가서 그곳 분들과 합의한 것이 있습니다. 중국과 공동주최로 ‘세계 평화를 위한 제4차 정상회의’를 11월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1백여개국, 2백50명 가량의 전직 국가원수급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 자리에 문목사께서 참석하시고 그때 중국지도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북한에도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의 반응으로는 북한대표의 참석이 확실해보입니다. 그러니까 문목사님의 평양방문은 북경방문 뒤에 이루어질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 통일교의 對북한 접촉이나 교섭에 있어 이를 맡아 추진하는 박총재나 다른 분들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나 관심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을 놓고 정부의 자문이나 지원을 요청하는 일도 없고 또 우리가 한 일을 일일이 알려주거나 보고하지도 않습니다. 독자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애국하는 일을 창의적으로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최종적인 정책결정은 물론 정부가 할 일이겠지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얼핏 공치사나 듣기 위해 수작하는 것 같아 아예 입을 꼭 다물고 있습니다.

● 모스크바에서 문목사가 “소련은 지금 경제 및 도덕적으로 르네상스가 필요한 때를 맞이했다. 이 르네상스가 장차 세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북한에도 적용된다고 보십니까?

 물론 북한에도 적용되는 말이지요. 냉전의 종착역 같은 한반도에는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이 한 형제가 되는 날이 지구상에서 냉전이 끝나는 날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소련의 개방·개혁정책이 냉전의 종결을 위한 서막이라면 베를린장벽의 철거는 중간의 한 막 정도요, 마지막 피날레는 남북한의 화해와 우호관계의 성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려야 하고 남북한이 서로 피해망상증에서 벗어나 신뢰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그 길을 지금 통일교는 가고 있습니다.

● 통일교는 이미 2억5천만달러를 투입하여 팬더자동차 공장을 중국에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또 미국학자 20명을 모스크바국립대학에 파견하여 시장경제론을 1년간 가르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북한 진출이 허용된다면 무슨 일부터 해나갈 계획입니까?

 변화의 바람은 소련 등 공산국가들의 사상적 공백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허상이 무너지면서 생긴 공백을 우선 메워주어야 합니다. 새 가치관으로 우리가 내세우고 있는 하나님주의, 즉 頭翼사상을 가지고 생활속의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북한 형제자매들에게 깨우쳐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 경제협력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상하고 있는 경제협력 방안 가운데 가장 큰 계획은, 통일교가 중심이 되어 북한이 중국과 소련 두 나라와 손을 잡고 다국적 자본을 투입하여 공업단지를 세우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동반도의 大連, 旅順 등과 북한의 新義州를 연결하는 공업단지와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와 북한의 羅津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공업단지를 만들려는 계획도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 교단의 세계경제개발위원회(GEAI)가 맡아 추진중인데 다음 달에 열릴 북경총회에서 이 문제가 중점적으로 토의될 예정입니다. 각국에 있는 북한 대사관을 통해 이 문제를 예비 검토한 결과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북경모임의 성과를 보고 만약 북한측이 허용한다면 회원 전원이 그대로 평양을 방문하여 거기서 회의를 마치는 일도 검토중입니다. 이 공업단지는 일상 생활용품을 만들어내는 소비재 공장서부터 정밀 기계공장까지 수천개가 건설될, 그야말로 방대한 사업입니다.

● 서양의 종교가 한손에 성경을 다른 한손엔 칼을 들고 해외진출을 한 예가 많아 중교가 식민지 획득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통일교는 한손에 교리를 다른 한손엔 달러를 들고 개발이 뒤진 나라들, 특히 공산국가로의 진출을 꾀고 있는 듯한데….혹시 한국정부의 앞잡이라는 말을 듣는 일은 없습니까?

 반공이라는 면에서 우리와 한국정부는 같은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해를 받은 일도 있지만 우리는 반공이라는 정치적인 영역을 넘어 승공이라는 철학적 敎世意識을 지니고 있어 우리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우리는 과거 정부로부터 부당한 탄압을 받아왔고 육영사업으로 대학을 세우겠다고 해도 허가를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여의도 땅에 선교본부 건물을 세우려 해도 허가문제로 골치를 앓아야 할 정도로 정당한 대우조차 못 받아온 사실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 세계 각국에 많은 기업체를 갖고 있는 통일교가 언론매체에도 손을 대, 8년전〈워싱턴타임스〉를 창간했고, 일간신문 하나와 스페인어 신문을, 그리고 전파매체로는 8백50만 시청자를 가진 유선 텔레비전방송 노스텔지아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비디오 프로그램 제작회사를 갖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서울서 〈세계일보〉를 창간했습니다. 언론에 남다른 관심을 갖는 것은 장차 정치세력으로 발전하기 위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언론을 인간 교육을 위해 쓰려고 생각할 뿐이지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영향력있는 종교단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고식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만 중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우리를 본다면 우리의 진심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세력이 강한 단체로 커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정치세력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면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종교집단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의 創價學會라는 종교집단이 公明黨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데, 통일교도 장차 이런 정당을 만들 생각이 있습니까?

 그런 말을 여러번 들었습니다. 12·12사건 직후에도 그랬고 6·29이후에도 통일교가 정당을 조직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정당을 조직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뜻이 있었다면, 일찍이 전국의 8백만 승공연합 회원만 갖고도 쉽게 정당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 정치에 생각이 있었다면 우리 신도 가운데 많은 유능한 인재들에게 돈을 대주어 국회진출을 장려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우리 교인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진리를 만인에게 알려준다는 사명감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문목사님의 생각이기 때문에 다른 데 관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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