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그늘’ 못 벗은 남북화해 새 시대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1.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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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차 남북총리회담의 대표로 참가한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한관계를 ‘상황의 이중성’이라는 말로 정의한 바 있다. 남북한관계는 항상 ‘민족의 재결합’이라는 당위와 ‘군사적 대치’라는 현실이 공존하고 교차하며 상호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 바퀴만으로는 굴러갈 수 없는 수레와도 같다는 것이다. 합의서 채택이라는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회담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런저런 논란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남북화해 전망을 두고 일희일비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중적 현실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이번 회담에서 채택된 합의서는 분단 이래 최초로 남북한 정부가 상대방을 실체로 인정한 전제 위에서 무력행사의 금지, 인적ㆍ물적 교류의 확대 등을 명문화한 공식문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더구나 채택 과정이나 합의문의 내용과 형식이 7ㆍ4공동성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공개적이고 구체적이며 짜임새가 있다. 바야흐로 남북한은 본격적인 공존시대로의 돌입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회담 당사자들에게는 다소 억울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이번 합의서가 단지 남북한 정권의 이익을 위한 내치용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적 분석이 없지 않고 핵문제의 온존으로 인해 합의서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이번 회담의 의의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의미에서라도 남북관계는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통용되고 있는 정부의 통일정책은 기본적으로 독일통일의 경험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통일정책을 ‘흡수통일론’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지만 통일이 있기까지 동서독이 어떻게 분단 극복에 노력했는가는 간과할 수 없는 부문이다.

 1949년 동서독 정부가 수립되고 분단이 확정되면서 서독은 할슈타인 원칙에 따라 ‘힘의 우위’ 정책을 추진했다. 동독은 이에 베를린장벽 구축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동서독 관계는 1963년 서독이 할슈타인 원칙을 수정하고 ‘작은 걸음 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이 선언됐고 이듬해 두차례의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여기서 마련된 성과를 바탕으로 동서독은 72년 기본조약과 통행협정을 체결하고 다음해 나란히 유엔에 가입했다. 그후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고 각 분야별 후속협정을 잇따라 체결하여 동서독은 상당한 정도로 성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독일이 이처럼 통일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원인으로 서독의 실질적 통일정책을 꼽는 사람이 많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흡수통일’이 되고 말았지만 기본적으로 통일을 ‘동서독의 공존협력체제’로 바라보면서 꾸준한 인적ㆍ물적 교류와 정보의 교환을 통해 민족동질성 유지를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특히 냉전과 양독관계를 엄밀히 구별하여 동서독 관계가 냉전의 칼날로 상처받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안겨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왜냐하면 앞서 보듯이 남북한의 분단과 대립 역시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민족문제만이 아니라 냉전의 산물이라는 측면을 아울러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채택된 합의서의 내용도 크게보면 화해와 불가침, 교류와 협력의 두 부문으로 나뉘어진다. 교류ㆍ협력을 통해 46년간 갈라졌던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냉전의 유산이라는 또하나의 굳은 고리를 풀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다.

 이같은 ‘냉전고리’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핵문제이다. 핵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특히 미국의 이해가 집약되는 부문이다. 북한은 한반도 평화유지의 전제조건으로 주한미군의 핵을, 그리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동북아 안보의 가장 큰 위협으로 북한의 핵을 지목하고 있다. 양측의 핵위협 논쟁은 남북한 화해, 교류와 협력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좀처럼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美 입장 ‘핵문제 해결없는 협상은 무의미’
 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입장은 완강하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포린 어페어즈》겨울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한반도에서의 핵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고한 보장은 남북한간의 ‘신뢰할 만한 합의’라고 규정하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민족통일의 열쇠는 적극적인 남북대화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미국은 남북대화의 진전을 바로 이런 맥락에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냉전질서 청산의 핵심으로서의 핵위협 제거 문제가 남북협상과 연계되어 있는 한 남북한간의 여타의 합의는 상당히 불안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역설도 성립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핵문제 해결없는 남북협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입장이고 합의이행에 필요한 여건조성에도 인색하게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남북한 사이의 협상이 핵문제 타결로 접근해가는 통로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종적 해결의 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회담에서 제시된 ‘남북한 동시사찰’ 제안을 놓고 한ㆍ미 양국은 “북한이 이행해야 할 핵확산금지조약(NPT)상의 국제핵사찰 수용의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검증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다”는 논리로 양해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핵문제 해결을 전적으로 남북협상에만 위임하고 있지는 않다. 미국은 핵위협의 제거를 통한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가 한ㆍ미 동맹관계 유지라는 전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누차 밝혀왔다. 최근 미국은 국내사정의 변화, 그리고 주한미군이 남북관계의 진전에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하여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던 기존의 동맹관계 대신 독일통일 당시와 비슷한 소위 ‘2+4’라는 다자간 협력체제를 제안하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문제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게이오대학)는 “미국이 비핵화문제에서 남북의 합의를 선행시키고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 ‘2+4’라는 다국간 안전보장체제를 확립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협상을 통한 성과가 뚜렷하지 않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과연 어떤 수단을 택할 것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핵 고리’ 안 풀리면 교류도 무거운 걸음
 어쨌든 이같은 이유로 미국은 이번 총리회담이 핵에 관한 부문에서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고 합의하는 선에 그치고, 미국의 이해와 직접적 관련이 많지 않은 합의서 채택에 주력한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연합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합의서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서 핵문제의 해결은 미행정부가 결정적 요소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번 합의로 인해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 조처를 취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핵문제에 관해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일본 역시 내년 1월 하순으로 예정된 6차 북한ㆍ일본 수교회담에서 핵사찰 수락을 촉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정부대로 “합의문 채택에 급급한 나머지 핵문제를 슬그머니 피해가는 것 아니냐”라는 식의 질책을 안팎에서 받아야 했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핵문제 협의를 위한 대표접촉에서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같은 주변국의 ‘우려’가 남북한 내부적 관계의 진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점들을 고려해볼 때 이번 합의서가 상대방을 인정하고 교류와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민족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긴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핵고리가 풀리지 않는 한 교류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힘든 상황임이 분명하다.

 앞으로 가능한 모든 노력이 기울여져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동맹국과의 공동보조와 민족내적 과제의 완수라는 이중 부담을 지고 있는 정부가 얼마나 자주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통일의 관건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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