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횡포의 자유’ 끝이 보인다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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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사람들’ 반격 정정보도 청구ㆍ소송 증가 “법원 판결 좀더 엄중해야”

 제 6공화국 들어와 권력의 사슬에서 풀려난 언론이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그동안 안중에 두지 않았던 ‘힘없는 사람들’의 반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권력의 탄압보다도 무서운 것이 일반 대중의 비난이다. 권력으로부터 받은 탄압은 정치상황이 바뀌면 훈장이 될 수도 있지만 힘없는 사람들의 지탄은 영원히 언론의 도덕성에 흠집을 남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작기사를 게재했다가 편집인 기자 자료 제공자 등 3명이 구속되고 결국 자진 폐간한 여성지 《웅진여성》사건은 이같은 언론환경의 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 같다.

 언론중재위원 정진석 교수(외국어대ㆍ신문방송학)는 “언론의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일반 국민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한 피해자의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청구건수가 매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횡포의 자유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명예 및 사생활 침해 1백72건, 단연 으뜸
 정정보도 청구를 받는 법정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에 올해 접수된 신청건수는 12월9일 현재 모두 1백95건으로 지난 82년에 비해 무려 4배 가까이 늘어났다(25쪽 도표 참조). 신청건수는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는 추세인데 89년부터 3년간의 신청건수가 모두 4백75건으로 지난 11년간 전체 신청건수 9백4건의 절반이 넘는다. 올해 신청건수를 유형별로 보면 명예 및 사생활 침해가 1백72건으로 단연 으뜸이고 기업의 신용권 침해가 23건이었다. 매체별로는 신문(1백31) 주간신문(22) 월간지(15) 방송(13) 등의 순위였다. 신청인 유형별로는 개인(1백12) 회사(39) 일반단체(16) 공공기관(15)의 순이었는데 그동안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기피해왔던 기업들의 신청건수가 대폭 늘어나 것도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도 크게 늘었다. 과거 수십년 동안 언론 관련 소송은 시국사건외에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 수년 동안 판례가 양산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월간중앙》의 가짜 사진 게재사건과 여성지《마드모아젤》의 미스코리아 김성희씨와 관련한 허위ㆍ왜곡보도 사건이다.

 《월간중앙》사건은 이번 《웅진여성》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88년 3월 《월간중앙》편집진은 복간호를 내면서 광주민주화운동화보를 특집으로 싣기로 하고 백방으로 관련 사진을 수집했다. 그러다 자유기고가 ㅈ씨로부터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을 한 장 제공받았다. 공수부대 제복을 입은 군인 3명이 시신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사진으로 ‘광주학살’의 잔학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해찬 의원(당시 평민당)이 이 책을 청문회의 증거물로 제시하는 바람에 사진의 주인공들이 69년 흑산도 공비진압에 참여했던 특전단 요원들로 밝혀지고 말았다. 《월간중앙》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고 ㅈ씨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됐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며 1년7개월여를 끌었는데 ㅈ씨는 결국 89년 11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의 실형을 확정 선고받았다.

 《마드모아젤》사건은 “연예인 관련 기사는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타성에 젖어 있던 여성지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 잡지는 88년 5월호에 미스코리아 김성희씨가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장 전경환씨와 내연의 관계에 있다고 독자들이 오해할 만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김씨는 이 잡지를 상대로 5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는데 지방법원은 1천만원, 고등법원은 2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민간단체도 생겨났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지난 7월 언론감시단체인 언론대책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8월에는 법조인 기업인 등 20여명이 언론피해구제협회를 창립했다. 특히 언론피해 상담과 대리소송에 주력하는 언론피해구제협회 강동호 회장은 “협회가 발족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언론공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무려 1백65건의 상담요청이 들어왔다. 개중에는 큰 언론사가 관계돼 있는 굵직한 사건도 있다. 때가 되면 사례발표와 아울러 대대적인 토론회도 열 생각이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린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인권침해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이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는 있으나 사실은 아직 문제제기를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언론중재위원인 최영도 변호사는 “우리 법원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값을 귀하게 매기지 않는다. 죽거나 다쳐도 위자료를 4백만~5백만원으로 판결하기 일쑤인데 하물며 사람의 명예값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만약 미국에서 김성희씨 사건 같은 것이 일어났다면 대언론사라도 문을 닫아야 할 만큼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법원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언론의 인권침해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론사, 옴부즈먼 제도 검토해볼만  
 최변호사는 또 “언론사가 고집을 부려 중재위원회에서의 합의를 거절할 경우 피해자는 법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 판결을 받으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법원에 가서 승소판결을 받더라도 그때는 이미 승소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업의 신용이 걸려 있는 문제는 1~2년 뒤에 정정을 받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다. 중재위에 최소한의 강제권한을 부여하는 등 제도적 보완을 고려해봄 직하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보완 못지않게 언론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언론사 자체의 노력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는 시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옴부즈먼(ombudsman) 제도를 채택하는 언론사가 많다.

 옴부즈먼이란 언론사로부터 급여를 받고 독자들의 불만을 접수, 처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대개의 경우 옴부즈먼은 독자와 편집자의 중간 입장에 서서 양자간의 갈등에 대해 공정한 판정을 내린다. 언론사에 따라서는 옴부즈먼의 칼럼을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곳도 있다. 옴부즈먼 제도를 채택하면 기사의 사실 여부에 대한 판정뿐 아니라 시각의 차와 같은 추상적인 문제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우리 현실에서 옴부즈먼 제도가 바람직할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옴부즈먼 제도의 정신만큼은 이제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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