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사생아’성남의 오욕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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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립·환경개선 아득

시장의 ‘善政 표창’에도 불구
삶이 고달픈 서민은 시큰둥

 지난달 官界에서 뜻밖의 뉴스 하나가 날아왔다. 오성수(55)성남시장이 청와대 특명사정반에 의해 ‘수범공직자’로 선정돼 표창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의례적인 걸로만 여겨지는 공직자 표창이 이번에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지위와 표창이유 때문이다. 위성도시들 중 가장 큰 실패작으로 꼽히는 도시의 시장이, 현역의원과 상급자의 청탁을 과감히 물리쳤을 뿐 아니라 소신껏 ‘없는 자들’을 위한 善政을 폈다는 것이다. 현 야당의원인 이모씨가 그린벨트내 불법건축과 관련, 압력을 행사하자 그를 건축법 위반혐의로 고발한 용기, 이에 따른 고위 관리의 질책에 초연하게 대처한 태도, 보증금 없는 시영아파트 1만가구 건립 추진, 소년·소녀가장과 영세민 자녀들을 위한 장학기금 조성 등 오시장의 부임 이후 행적은 ‘청백리’로서의 면모 그대로이다. 특히 오시장이 관사(수정구 단대동)부지 8백여평을 “시장 혼자 쓰기엔 너무 넓다”며 아파트건립 후보지로 내놓고 23평짜리 신흥 주공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것에 대해 성남시민들은 감격하고 있다. 중원구 은행2동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김인정(43·남)씨는 “오시장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 같다”며 “그런 분이 표창받게 돼 정말 잘됐다”고 기뻐했다. 김씨는 또 얼마전 시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배수관을 교체해줘 높은 지대인데도 수돗물이 잘 나온다는 자랑을 잊지 않았다.

 

상 · 하수도 갖추기 전 철거민 이주 강행

 그러나 이같은 오시장의 행적과 일부 서민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성남시민들은 이번 표창건에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이다. 관심이 없는 층은 성남시민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영세민들로 ‘여전히’ 먹고살기에 바빠, 자기들 손으로 뽑지 않은 시장이 상을 타든 벌을 받든 신경쓸 여력이 없다. 반면 성남의 지식인들은, 오시장이 부임한 지 불과 8개월여밖에 되지 않아 업적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시기상조이며, 지금껏 그가 베풀었다는 善政내용도 마땅히 시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시 재산으로 추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시장이 유선방송관리법 위반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발돼 있는 상태여서 표창상신이 과연 시기적절한 것이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인사는 ‘생색내기 쇼’ ‘장난치곤 지나친 장난’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같은 지식층의 냉소적인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성남시가 역사적으로 갖는 비극적인 특성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성남은 서울에 난립해 있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구상, 개발됐다. 철저하게 서울의 인구팽창 억제와 분산의 필요성에 의거한 계획이었다. 64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성남출장소가 설치됐고 68년 성남출장소 관할지역 3백만평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개발산업이 시작됐다. 당시 이 사업의 공식명칭은 ‘일단의 주택지 경영사업’. 택지조성은 물론 상·하수도 도로 전기 등 기본 생활여건이 채 갖춰지기도 전인69년 5월부터 서울 철거민들의 집단이주가 이루어졌다. ‘선이주 후도시계획’이었기에 당연히 생활상은 비참했다. 초기에 옮겨온 이주민들은 천막이나 판자집에서 위생시설 하나없이 장마철을 지내느라 곤욕을 치렀고 전염병에 시달리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이주민의 어려운 사정은 외면한 채 분양토지가를 높게 책정하고 취득세까지 부과함으로써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분양지 불하가격 시정 투쟁위원회’까지 조직했던 이주민들은 71년 8월10일 당시 양택식서울시장과의 접촉이 무산되자 궐기대회를 열었는데 이 대회가 공공사업소 파손 등 폭력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사건은 성남 역사의 가슴아픈 한 장으로서 ‘광주대단지8·10사태’로 기록되고 있다. ‘8·10사태’이외에도 일종의 토지사기사건인 ‘모란단지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터지는 등 갖은 말썽을 겪으면서 마침내 73년 성남은 41개동을 가진 시로 승격되었다. 이후 성남의 인구는 급속히 늘어 73년의 19만여명에서 현재는 50여만명에 이르고 있다. 인구수로만 따진다면 전국73개 도시 중 9위에 해당하는 거대한 규모인 것이다. 또 각 사회시설도 속속 설치돼 발전상을 자랑하고 있다(표 참조).

 하지만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 성남시가 애초부터 잉태하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들은 거의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75년 직장을 따라 성남으로 이사왔다가 88년부터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는 김태연목사(상대원3동 소망교회)는 “개발 당시 높은 언덕을 제대로 깎지도 않고 한가구당 8평단위로 분양했기 때문에 지금도 성남시민들의 주거환경은 열악한 형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목사는 이어 “도시성장률을 예상치 못한 좁은 도로폭 때문에 교통이 혼잡하고 주차난이 극심한 것은 물론 시내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 많은 주민들이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사를 해보려고 71년 성남에 들어왔다는 전건수씨(47·금광1동 부동산중개업)도 “마치 소나무 껍질 벗기듯 겨우 산껍질만 벗겨내고 산모양을 따라 집을 지어 놓은 게 성남시의 주택가”라며 “이제는 집이 들어설 대로 들어섰기 때문에 재개발하기도 어려워 슬럼화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분당 개발바람’에 영세민 가슴 썰렁

 지난3월 ‘성남시 오욕해결운동본부’(이하운동본부)라는 이색적인 민간단체가 생겨난 것이 바로 이런 본질적인 문제들의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운동본부는 성남의 나쁜 특성을 크게 다섯가지로 꼽고 있다. 심한 경사도(비탈), 가난, 부정부패, 먼지 및 공해, 부도덕성이 성남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고쳐나가야 할 오욕이라는 것이다. 전해중 운동본부장은 이중에서도 특히 주거지와 직결되는 비탈과 기본적인 생활기반이 미약해 야기되는 가난 등 두가지 문제를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본부장은 “강제성을 띤 집단이주였던 만큼 정부에서 마땅히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며 만약 20년전의 일을 왜 새삼 문제삼느냐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법적 소송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본부측은 비탈주택과 빈곤에 대한 개선 대책으로 보증금 1백만원 정도에 월3만~4만원으로 영세무주택자가 우선적으로 입주할 수 있는 소형영구임대아파트 1만가구 이상을 정부예산으로 지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성남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아파트건립기금은, 좋은 조건(10년 거치 20년 상환, 연리3%)이라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가 갚아야 할 ‘부채’로 남기 때문에 당초 엉터리 도시계획을 세운 정부에서 자금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또 영세기업 위주로 형식적인 공단을 조성, 일자리가 제한되고 그나마 저임금이 지급되므로 우선 단대천을 복개해야 한다는 제안도 하고 있다. 단대천이 복개되면 영세주민의 상업장소나 유료주차장으로 조성하여 직접적으로 생활에 도움을 주게 하고 주차장에서 얻는 수익금은 복지기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작년 6월 경원대학교 산업기술연구소가 주최했던 지역발전세미나에서도 성남이 안고있는 문제들에 대한 진단이 있었다. 당시 주제발표에 나섰던 이철화 성남시 지역경제국장에 따르면 76년 소위 5·4조치로 건축통제에 의한 수도권인구 억제정책이 시행되는 바람에 성남시 주거지비율은 전체면적의 7.7%, 상·공업지역비율은 1.7%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또 87년 기준으로 직업별 취업현황을 살펴보면 단순노무자가 23.9%로 으뜸이며 산업별로는 서비스업인 3차산업 종사자가 76.1%로 나타나 생산도시가 아닌 소비도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처럼 대도시에 밀려난 사람들의 도시로 출발한 성남시는 20여년이 지나도록 자립경제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중산층 유출·영세민 유입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인구유동이 심한 관계로 전통이 없고 주민들 사이에 애향심이 희박한 것도 성남시 발전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73년 서울에서 옮겨와 제값을 치르고 9만원에 사들인 8평과 돈이 급하다는 철거민에게 헐값 5천원을 주고 산 8평을 합친 공간에서 7식구와 함께 살아오고 있는 임순택(53·목수)씨는 성남시의 인구유동 상황을 이렇게 전해주었다. “저랑 같이 들어왔던 사람들 중 웬만큼 돈을 번 사람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오래 사는 사람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뿐이에요. 저도 서울에 집만 마련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여길 떠나고 싶습니다.”

 경원대학교 김형철교수(도시계획학)도 “성남의 대학생·교직원은 물론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까지도 대부분 성남이 아닌 서울에 살고 있으며 능력만 닿으면 서울로 나가려 하고 있는 현실에서, 애착과 끈기를 가지고 성남문제에 매달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지 의심스럽다”고 반문했다.

 서울시립대 김원교수(도시계획학)는 성남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더 회의적이다. “성남시의 탄생배경 자체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주거환경이 열악함은 물론 주민들이 ‘쫓겨났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물질적인 보상과 아울러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성남은 ‘서울로 나가기 위한 전진기지’신세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또 하나 성남이 새롭게 봉착하게 될 문제는 성남과는 정반대의 조건을 갖춘 분당신도시 조성입니다. 이번엔 철거민이 아니라 서울의 중산층이 대거 이주할 텐데 그렇게 되면 성남 주민들의 소외감은 더욱 심해지고 문제도 더 복잡해질테니까요”

 ‘태어나서는 안될 도시’였다는 성남시. 그러나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고질병을 치유하긴커녕 이제는 ‘분당’이라는 혹 하나를 더 붙이게 됐다. ‘분당바람’은 이미 성남 영세민들의 황폐한 가슴에 세차게 불어닥치고 있다. 땅값, 전세·월세값이 턱없이 올라 ‘있는 사람들’은 재미를 봤지만 집없는 서민들은 또다시 보따리를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의 ‘시장표창’이 이들에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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