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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출판의 새 장르 여는 ‘만화’

이문재 기자 ㅣ 승인 1990.09.1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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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서 한국사, 증권까지 다양…작가부족, 일본 저질만화 유입 등이 문제
 전후세대 즉 ‘만화세대’가 기성세대로 진입하면서 만화는 일회용 혹은 아동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만화가 출판의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계몽사와 웅진미디어 등 대형출판사가 한국사를 만화로 엮어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사회과학 출판사들도 최근 들어 만화와 손을 잡기 시작했다. 만화를 펴내면서 출판계에 첫발을 내딛는 신생출판사도 늘고 있다. 한국 및 세계의 역사를 비롯 마르크스, 모택동 등의 생애와 사상, 동양 고전, 환경문제, 국내 장편소설은 물론이고 증권, 영화, 종교, 외국어 등 출판의 각 분야와 만화는 만나고 있다(목록참조).

 물론 만화계 전반은 현재, 위와 같은 ‘출판으로서의 만화’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 살펴보면 그야말로 위기상황이다. 한 중견만화가는 “우리의 만화역사 30년은 발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고 탄식한다. 그간 청소년문화를 좀먹는 암적 존재라고 일방적으로 홀대받아왔던 만화는 한때 새로운 문화 영역으로 인정받는가 싶었다. 70년대 말 선보였던 건강한 성인만화와 80년대 중반 정치풍자만화의 등장으로 박수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포츠신문들의 ‘무제한 경쟁’에 만화가 볼모로 잡히면서 다시 그 뿌리가 뒤흔들리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두 대형출판사가 풀어쓴 우리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계와 출판계 한쪽에서는 만화의 역기능을 지적하는 것과 아울러 만화의 순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시청각 이미지에 익숙한 세대가 바로 오늘의 독자이며, 정보가 범람하는 대중사회에 적합한 매체가 다름 아닌 만화라는 인식을 토대로 만화를 문화의 전면에 떠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화를 그리는 한편으로 활발한 만화평론을 펼치고 있는 李元馥교수(덕성여대)는 “영상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만화는 영상매체의 일과성을 보완하면서 만화의 시장은 물론 매체적 역량과 문화적 위상을 확대,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출판과 만화가 결합하는 현상은 거역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요청이라는 것이다.

 만화의 순기능을 강조한 결과물은 우선 계몽사와 웅진미디어가 최근 거의 동시에 내놓은《학습만화한국사》(전21권)와 《한국의 역사》(전18권)가 손꼽힌다. 우리출판·만화문화의한 사건으로 평가되는 이 두 전집은 대형출판사들이 수억대의 예산을 들여, 장기간 제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3년 전 《학습만화세계사》를 펴내 ‘학습만화’의 노하우를 축적한 계몽사의 《학습만화한국사》는 국민학교 고학년생을 주요 독자층으로 삼고 새로 개편된 중·고교 교과서의 내용을 수용했다. 기본 자료와 집필은 역사문제연구소 신진학자들이 맡았고 이원복교수가 구성, 이를 만화가 박흥용, 오 수씨가 그렸다. 선사시대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를 다룬 20권의 본책은 각권 1백60면이고 별책《학습한국사사전》은 3백36면이다. 이 전집은 각 시대의 대표적 사건·사실을 중심 줄거리로 하되, 페이지마다 주와 해설을 달고 각 권마다 권말에 학습자료관을 실어 충분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전집의 팀장을 맡았던 계몽사 편집부 김택춘차장은 “단편적 지식보다는 역사의 흐름을 알려 역사의 인과법칙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밝힌다.

 웅진의《한국의 역사》는 본책 16권과 두 권의 별책 《간추린 한국사》《국어용어사전》으로 엮어졌다. 국민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을 주독자층으로 한 이 전집 역시 암기식, 나열식을 배제하고 역사의 내적 연관성과 큰 흐름을 파악하기 쉽도록 꾸며졌다. 원시시대부터 8·15이전까지를 수록한 본책은 각 권마다 역사자료실과 연표를 권말에 수록하여 역사상식과 그 현장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했다. 국사전공학자들로 연구위원회를 조직해 자료조사와 편찬 방향을 세웠고 이를 바탕으로 만화가 김세영, 드라마작가 김성룡, 국어교사 조현우씨 등이 구성했다. 원화와 채색은 만화가 이희재씨가 맡았다(인터뷰 참조).

 이 두 전집을 읽은 젊은 역사학자 鄭泰憲(수원대 강사)씨는 ‘역사학의 대중화’가 현실적으로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고 전제하고 위의 두 전집이 “재미없고 딱딱하다는 편견을 갖기 쉬운 한국사에 대해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부담없이 책을 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익한 기획물이며 특히 민중들의 생활상을 비중있게 다룬 점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천년 역사속에서 각 시대별로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면서 전개되어온 민중들의 생산력 창조와 문화발전에 대한 서술 부분은 대단히 부족”하며 “고대사와 현대사 부분의 애매한 서술 등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기왕의 다른 한국사 개설서보다 낫다고 평한다.

 

웬만한 사회과학 이론은 다 다뤄

 위의 두 전집 이전에 나온 한국역사 만화는 3종 정도가 있다. 지난 4월에 삼성당이 출간한 《엘리트 학습만화 한국의 역사》(본책16권 별책2권)가 그 가운데 하나인데 박화목씨가 글을 썼고 조봉업프러덕션이 그림을 그렸다.

 역사 이외에도 국민학생층을 대상으로 한 만화는 다양한 편이다. 예림당이 펴낸 《과학생활 만화학습》(전10권)은 사진과 만화를 곁들여 어린이들에게 우주 지구 생명과학은 물론 컴퓨터에 이르는 과학상식을 전해주고 있다. 이외에도 과학을 다룬 학습만화는 지경사의 《과학학습만화》(4권 속간중), 우람문화사가 펴낸 과학학습만화 《만화 자연과학 척척시리즈》, 글수레의 《자연교과서만화》등이 있다. 삼성출판사의 《학습만화시리즈》(전20권)와 교학사의 《큰별 큰빛 세계위인전집》(전1백권)등 세계 위인전도 만화로 소개되고 있다.

 한편 민서출판사, 지경사, 키출판사 등에서는 고사성어나 《삼강오륜》《명심보감》《탈무드》등을 어린이독자에 맞게 만화로 구성하여 시리즈로 펴내고 있다.

 막대한 제작비와 방대한 외판조직을 필요로 하는 전집만화에 비해, 기존의 서점 유통구조를 통해 보급되는 단행본 만화는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연말부터 일기 시작한 사회과학 출판사들의 만화서적 출간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87년부터《알기쉬운 오월의 책 만화시리즈》(전10권)를 펴내온 도서출판 오월대표 金濟完씨는 “80년대의 10년 동안 사회과학 출판계는 변혁이론에 방향을 제시하는 책을 출판했으나 80년대 후반 북한서적을 내면서 방향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이제 웬만한 사회과학 이론서는 거의 다 소화해낸 것이다. 사회과학 출판계는 지금까지 펴낸 이론서들을 ‘9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각에 맞게 풀어쓰는’ 쪽으로 편집방향을 잡고 있다. 그 이론을 대중화시키는 매체가 만화이다.

 멕시코의 저명한 만화가 리우스의 작품을 번역한 오월의 사회과학 만화를 비롯해 이 분야의 만화는 다양하고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영국의 만화전문 출판사의 세계적인 만화시리즈인 《훠 비기너스》](for beginners)를 번역한 범우사의 《자본론》외 5권, 비교적 일찍부터 만화를 출판해온 형성사의 교양만화문고 시리즈(전11권)와 《친미양요1,2》《갑오세 가보세》, 핵문제를 우리 시각으로 접근해 국내 사회과학 만화의 한 성과로 일컬어지는 친구의《핵층이 나타났다》(신기활 글·그림)와 박재동의《한겨레 그림판 모음》, 이땅출판사의 《1회용 지구》등이 올 상반기에 나온 사회과학 분야의 만화들이다.

 그러나 사회과학 분야의 만화들은 일반 교양만화가 그러한 것처럼 적절한 국내 필자 확보가 시급한 과제이다. 상업만화가들에 비해 기술적인 능력이 뒤떨어져 있는 것이다. 또한 독자들도 사회과학서적을 읽어온 독자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아무리 만화와 사진 등을 동원해 쉽게 풀어써도 내용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이원복교수가 펴낸 《자본주의 공산주의》(동아출판사)는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 고전을 중국 현대작가들이 만화화한 시리즈가 최근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도서출판 눈이 펴낸 《고전 만화시리즈/당시》(전8권. 어부 지음, 천현경 옮김)와 《장자》, 중국 현대만화가인 채지충의 작품을 번역한 두성출판사의《만화총서시리즈》(전30권)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자유시대사의 《만화삼국지》(전60권)는 중국 고전이지만 일본작가의 만화를 번역한 것이다.

 

황색저널리즘과 ‘만화학’ 부재도 문제

 사회과학 분야에 비하면 일반 교양, 실용만화는 거의 개발되지 않은 형편이다. 80년대 후반증권 열기를 타고 증권입문서를 만화로 엮은 책들이 몇 종 나왔을 뿐이다. 외국어 분야에서는 학일출판사가 꾸준하게 여러 나라의 일상회화를 만화로 풀이하고있고, 컴퓨터 만화 입문서는 두 종밖에 없다. 문학도 의외로 만화화되지 않고 있다. 《장길산》《인간시장》등이 장편만화로 출간되었을 뿐이다. 종교 만화도 활발한 편은 아니다.

 우리 만화를 언급할 때 일본의 만화는 빠지지 않는다. 정부 문서까지도 만화로 작성될 정도로 일본의 만화는 모든 분야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엄청난 만화소비시장을 자랑하는 ‘만화왕국’ 일본은 우리 만화 현실에 ‘빛과 그늘’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나 빛은 제외되고 그 그늘만 침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즈음의 단행본 만화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도서출판 열린책들 대표 洪池雄씨는 “40대 이하 세대는 만화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어서 만화의 앞날은 밝다”고 말하면서도 “일본만화의 유입과 만화학(비평)의 부재가 문제다”라고 지적한다.

 일본 저질만화의 유입, 스포츠신문의 황색저널리즘과 일부 ‘기업만화가’들의 비윤리적 형태, 대본소만화의 유통구조 등 우리가 지금 안고 있는 만화계의 구조적 모순은 심각하다.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 개선하면서 동시에 만화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장을 살려나가야 할 때이다. 그때 만화는 독자들의 서가에 꽂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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