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예산만 성역일 수 없다
  • 장성원(동아일보 논설위원) ()
  • 승인 1990.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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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17일부터 5일간 모스크바에서는 유엔 주최로 ‘군축과 산업전환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미·소를 비롯한 40개 국가의 정부관계자 학자 산업계대표 등 1백50여명이 참석한 이번 회의에서 소련의 스미스로프 국가계획위원회 부의장은 소련이 현재 4백개의 군사기업을 민생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중국은 지난 79년 군사기업의 생산 중 민생품 생산이 8%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7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미국은 앞으로 5년간 군에서 매년6만8천여명씩 전역하여 실업자가 늘어날 것이 예상되므로 이들의 전직훈련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년 12월 지중해 몰타의 미·소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는 동서냉전시대에서 융화와 평화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이같은 평화 분위기를 타고 세계 각국은 군비축소 및 군수산업 전환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오데사 군관구의 장병들 앞에서 내년부터 대폭적인 군개혁에 착수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그는 냉전이 종료된 지금 군개혁은 시의 적절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군의 규모, 군비의 질, 군의 구성 등을 대대적으로 개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3년 복무의 징병제를 지원병제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군축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7월14일 프랑스혁명기념일을 맞아 행한 대국민연설을 통해 “군복무기간 단축계획을 확정, 오는 92년부터 현재에 12월에서 10개월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95년의 대통령선거 출마를 계획하고 있는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은 “아예 징병제를 폐지하고 직업군인제도를 채택하자”고 제의, 앞으로 군복무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쟁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7월 내년도 예산 중 방위비예산 요구액을 놓고 이시가와 방위청장관과 하시모토 장상 사이에 절충이 있었다. 이 절충은 예산을 총괄 조정하는 대장성이 예산을 요구하는 행정부처사이의 예산액 조정 절충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이었다. 방위비를 많이 증액시키기 위해 해마다 집권 여당 자민당의 국방족(국방위 소속 국회의원)까지 가세하여 대장성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올해의 절충은 싱겁기 짝이 없을 정도로 단 10분만에 끝나고 말았다. 그것도 예년에는 유례없이 내년 국방예산을 올 예산 4조1천5백93억엔(약20조8천억원)보다 불과 5.8%(2천4백30억엔) 증액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시가와 방위청장관의 증가율 요구는 6.3%였다. 이같은 결정은 냉전종결과 긴장완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국방부와 경제기획원이 내년도 국방예산 증액규모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국방부가 내년도 방위예산을 올해 6조6천3백78억원에서 18% 늘린 7조8천3백여억원을 요구한 데 대히 기획원측은 10.4%증액으로 맞서고 있다. 두 부처는 절충을 계속하고 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해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팽팽한 힘겨루기는 결국 대통령이 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들이다.

 국방부는 내년 국방예산 증가액 1조2천억원은 일반운영비 8천5백억원과 전력증강비 3천억원 등이 계상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운영비 증액은 물가 및 임금인상에 따른 방위산업물자 조달가격 인상과 병사 급식비 인상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전력증강비 3천억원 87년 서독에 발주한 잠수함 구입과 92년부터 8년간 이루어질 차세대전투기 구매 및 공동생산계획 추진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예산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예산요구액 공개돼야 국민이 납득

 일반국민은 국방부측의 이같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왜18%의 증액이 긴요한지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한다. 예산요구액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납세를 세입으로 하여 운용되는 예산은 국가의 큰 기밀이 아닌 이상 반드시 자세하게 공개돼야 마땅하다 국민의 알권리가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국방예산이 장막에 가려진 채 집행돼온 것이 사실이다. 비단 국방예산만 성역일 수 없다.

 국방부 주장대로 18% 증액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다른 나라의 예에서 보듯이 긴장완화에 따른 국방예산 절감 노력이 이번 예산요구에 충분히 반영됐는지 검토해볼 일이다. 물론 우리는 남북이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보아 냉전체제의 종식에 따른 국방예산의 절감노력과 대책이 경시되어서는 안된다.

 노태우 대통령이 제시하고 있는 ‘3단계 군축안’에 따라 남북한 당국이 상호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방예산의 대폭 증액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한쪽이 국방예산을 대폭 늘리면 다른 한쪽도 그를 따라 대폭 증액하는 경쟁이 벌어지게 마련이므로 신뢰기반이 조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폭 증액보다는 우리 국방예산이 합리적·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전반적으로 종합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군의 규모는 과연 적정한 것이며, 방위력의 질은 어떠하며, 방위비 지출이 산업발전과 기술개발에 적극 연계되어 있는가. 사병들의 의무복무 연한은 단축 가능성이 없는가 등이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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