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의 정치경제학
  • 주학중 (ADB 경제발전연구센터소장) ()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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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3일 동서 양독은 평화통일을 이룬다. 1년 전만 하더라도 까마득해보이던 일이다. 같은 분단국으로 동병상련하던 우리로서는 부러움을 금치 못할 일이다.

 외신은 독일통일을 ‘순발적’(instantaneous) 통일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평화통일을 주도해온 서독의 포석과 수순은 냉정하게 계산되고 오랜 준비와 인내를 거친 것이었다. 그동안 서독은 20세기 전반 세계를 두번씩이나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戰犯國으로 인류의 지탄을 받으면서 겸허한 자세로 경제력 증강에 힘을 기울여왔다. 오늘날 서독은 6백억달러의 외환보유국이고 2천억달러의 대외순채권국이다. 또한 연간 3천억달러 이상의 수출과 8백억달러 가까운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그러나 통상마찰로 일본과 신흥공업국을 비난하는 미국까지도 서독은 비난하지 않을 정도로 대외경제정책을 원만히 전개해오고 있다.

 동독에 대한 자세도 관대와 인내로 일관, 원만한 관계를 지속해왔다. 동서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에서 수많은 비극이 연출되었으나 동독에 대한 정치적 비난을 삼가했다.

 

서독 ‘통일비용’에 경제력 총동원

 물론 우리와 같이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었기 때문에 보다 쉬웠겠으나 서독은 국제무대에서 동독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또 지난 20년 동안 동독에 대하여 꾸준히 경제원조를 제공해왔고, 교역도 상당한 규모로 확대하였다. 그동안 11억달러로 추정되는 원조는 동독의 폐쇄성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통일되었을 때 어차피 부담하여야 할 도로ㆍ통신 등 사회간접자본 형성이 그 원조의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동독의 수출 가운데 국제통화로 대금을 받는 것은 1백억달러 미만의 대서방수출인데 이 가운데 서독에 대한 수출이 약 40%로 서구제국에 대한 수출과 거의 맞먹는 규모이다. 많은 외국의 식자들은 봄날에 눈 녹듯이 독일통일의 실마리가 쉽게 풀린 것은 이렇게 오래전부터 다진 서독의 포석과 굳힘에 힘입은 바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내외여건의 성숙으로 통일의 호기를 맞은 서독은 그동안 축적하였던 경제력을 총동원, 아직 아무도 정확하게 추정하지 못하는 엄청난 통일비용을 감수하면서 통일을 서둘러왔다. 통일의 첫걸음으로 금년 6월1일 시행된 통화교환에서 동독의 성인 1인당 4천마르크까지 3대1의 공정환율이 아닌 1대1로 바꿔줌으로써 4백억마르크(약 2백58억달러)의 부담을 감수하였다. 또한 1천8백억마르크의 개인저축과 2천7백억마르크에 이르는 동독은행의 부채와 현금잔고에서 개인교환액을 제외한 금액을 2대1 환율로 교환해줌으로써 약 1천3백억마르크(8백40억달러)를 추가 부담하였다. 아울러 사회보장제도의 통합과 동독의 전몰자 유가족 및 상해자에 대한 특별수당지급 등과 더불어 동독의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하여 금년 8월까지 3차에 걸쳐 3백억마르크(2백억달러) 이상의 추가경정예산을 배정하였다.

 

“모두에게 속한 것은 함께 자라야 한다”

 앞으로도 동독의 낙후된 생산시설 및 주택 도로 통신시설의 개선과 확충, 에너지의 70%를 갈탄에 의존하는 데 따른 공해대책 등으로 천문학적인 투자소요가 예상된다. 예를 들면 서독의 전화보급률은 98%인데 비하여 동독은 7%에 불과하다. 생산시설은 설치된 지 수십년이 지나 생산성이 서독의 40%에 불과하다. 막상 통일이 이루어지면 동독의 많은 생산업체는 경쟁력이 달려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1백만명 정도의 실직자가 생겨나 상당기간 사회보장비의 큰 부담이 생길 것도 예상된다.

 이밖에도 동서독간 협정문서에도 명확한 규정없이 얼버무려 넘어간 재산권에 대한 문제가 있다. 많은 이해당사자가 개입된 이 문제가 원만한 해결책을 찾는 데에는 상당한 재정부담이 추가될것으로 보이며 국내외적으로 장기간에 걸친 복잡다단한 재산권분쟁이 야기될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서독의 콜 총리가 소련을 위시한 인접 동구제국으로부터 통일에 대한 합의를 얻어내면서 약속한 상당한 규모의 경제원조와 차관이 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중동위기에 40억달러를 미국에 지원한 것으로 미루어 동유럽에 대한 지원액도 방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독은 이렇게 엄청난 통일비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서 통일을 서두르는 것은 아니다. 영향력있는 제 3국의 태도변화로 失機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모두에게 속한 것은 함께 자라야 한다”라고 동서독의 공동발전과 공동운명을 강조한 바 있지만 통일을 위한 경제적 부담에 대해서 서독국민 모두가 감수할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서독은 동독에 비해 인구가 3.4배, 면적이 2.3배, 1인당 소득수준이 3배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1인당 소득수준이 서독의 4분의1인 우리가 인구 2천만에 면적은 더 넓은 북한과의 통일을 오늘 이룬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 경제력으로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통일에 대한 뜨거운 마음으로 흥분하여 들떠서는 안된다. 냉정과 인내를 되찾고 무역흑자의 기조 위에 경제력을 계속 축적해나가야 한다.

 지금은 정치적ㆍ경제적 역량에 바탕한 평화통일의 장기적 방안을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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