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망가진 동독 정치국원들
  • 베를린·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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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장 등 8명 질병에 시달려 크렌츠, 저서 출간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지금 민주화 이전의 동독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옛 공산당 지도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해 10월 민중봉기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난 구 동독의 정치국원들은 그들이 과연 1년전까지 동독을 좌우하던 사람들이었는가 의심이 갈 정도로 대개 지금은 폐인이 되었거나 사경을 헤매고 있다.

 반란 직권남용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구속된 해리 티쉬, 에리히 밀케, 빌리 슈토프, 헤르만 악센, 베르너 크롤리콥스키, 게랄트 괴팅 등 6명의 정치국원은 검찰의 지시와 동독보건부의 위임에 따라 그들의 정신능력을 검사받기 위해 지난 5월말에 베를린에 있는 경찰병원의 신경과 전문의 5명에게 보내졌다.

 그곳에서 옛 정치국원들은 9일 동안 산책시간에 정기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모임을 가졌는데, 동태를 살피던 감시자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마치 정치국 회의를 다시 여는 듯했다”고 한다. 이같은 정기적인 구수회의는 이들을 진찰한 의료진이 “현시점에서는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이유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지난 8월중순에 재수감되었는데, 그중에서 공안담당이던 에리히 밀케는 그를 다시 연해하러 온 경찰관 앞에서 기절했기 때문에 24시간이 지나서야 연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직권남용과 부정 이외에도 동독에 ‘수용소’를 건설하려 했고 서독 적군파 테러리스트에게 도피처를 제공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미 금년초에 구치소 안에서 장난감 전화기를 들고 몇 시간 큰 소리로 명령하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또한 뇌기능 약화, 기억력 감퇴, 항상적 긴장상태로 인해 내일 4가지 종류의 약을 반씩 복용해야 하는 병약함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구치 가능한”고 결론을 내렸다.

 노조위원장이기도 했던 해리 티쉬 (63)의 건강상태도 비슷하다. 의사들은 그가 계속 우울증에 빠져 있고 알톨중독에 걸려 있다고 진단했다. 총리를 지낸 빌리 슈토프 동맥경화증과 고혈압 때문에 5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그는 기억력이 갈수록 희미해질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다.

 외교담당 정치국원이었던 헤르만 악센(74)은 소련에서 눈 수술을 받은 후 구속되었는데 심장박동기를 착용하고 있으며 당뇨병에 시달리고 있다. 제1부총리였던 베르너 크롤리콥스키(62)는 심장박동이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항상 의사가 옆에 붙어 있다. 동독 기민당 당수였던 게랄트 괴팅(67)은 83년에 발생한 자동차 사고에 따른 후유증과 알콜중독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정치국원 6명의 건강상태는 귄터 밋탁(73)과 에리히 호네커(77)에 비하면 양호한편이다. 경제담당 정치국원이었던 귄터 밋탁의 경우 심한 당뇨병 때문에 양쪽 종아리 절단 수술을 받았는데 근위축증이 심해 의족마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고혈압까지 겹쳐 있어 의사들의 진단에 따르면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 상태”이다.    

 

종양 제거 수술 받은 호네커 ‘건강 최악’

 에리히 호네커 전 서기장은 담낭 대장 신장 등의 종양제거수술을 받았으며 매일 13알 반의 약을 복용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판단력이 쇠약해졌고 심문이 진행될수록 답변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며 한두 시간 지나면 화를 냈다고 한다.

 정치국원들을 위한 특권적 주거지였던 반들리츠 지역이 2월중순에 재활원으로 바뀌면서 여기에서 쫓겨난 호네커 부부에게 거처를 마련해주도록 모드르 전 총리는 동독 기독교계에 부탁했었다. 이에 고트프리트 포로크 주교가 우베 홀머 목사에게 지원을 요청해 홀머 목사가 자신의 사택에 호네커 부부를 받아들이면서 방 2개를 제공해주었다. 홀머 목사는 동독 기독교가 베를린 근교의 모베탈에서 운영하는 요양소의 주임목사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를 이해해주는 기독교인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놀라움 내지 분노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홀모 목사는 동독 기민당 기관지인 〈신시대〉에 투고한 글에서 호네커 부부를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결코 호네커에 대한 법적 절차에 개입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그렇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자신의 결정을 방어했다. 또한 홀머 목사는 과거의 체제를 지지하기 때문에 호네커 부부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홀머 목사는 구체제하에서 탄압당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의심을 품는 기독교인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호네커 부부는 홀머 목사 사택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곳에서도 그들은 돌을 던지는 주민의 분노를 피할 수 없었다. 3월말에 모드르 총리는 당시 후임 총리로 내정되었던 드 메지에르와 협의한 후, 호네커 부부에게 거주지를 마련해주고자 했으나 이 소식을 들은 주민의 시위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호네커 부부가 새로 입주한 집앞에서 인근 주민이 “호네커 꺼져야 한다” 고 외치면서 밤새도록 시위를 하는 바람에 다시 홀머 목사 사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琥珀속의 파리’ 크렌츠 뺨 맞기도

 홀머 박사 사택에서 며칠을 지낸 호네커 부부는 소련군의 보호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건강마저 급속히 악화되자 마침내 4월초 순 베를린 남서부 숲속에 있는 소련군 요양소로 옮겨졌다.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아직 그에 대한 소송은 계류중이므로 통일독일 정부가 원할 경우 그를 인도해주겠느냐는 서독출신 기자의 질문에 요양소 당국은 “그는 늙은 사람이다. 그는 감옥에 가서 2년6개월 후에 죽을 수도 있고, 여기에 머무르면서 3년 후에 죽을 수 도 있다. 무슨 차이가 잇는가”라고 답했다.

 지난 8월에 호네커는 칠레에 거주하는 딸을 방문하기 위해 입국비자를 신청했으나 칠레정부가 서독 정부에 문의한 후 비자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독 정부는 그가 도피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마지막 서기장을 지낸 에곤 크렌츠는 지난 4월초에 그의 저서인 《장벽이 무너지면》서를 선전하기 위해 서독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원래 그는 오랜 동안 침묵하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동독에서 추방된 반체제 가수 볼프 비어만이 최근에 발표한 노래에서 크렌츠를 “琥珀 속의 파리”로 묘하게 비유한 데 자극받아 서기장으로서의 마지막 50일을 돌이켜보는 저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급기야 크렌츠는 동독의 한 동독 이주인으로부터 뺨을 맞는 봉변을 겪었다.

 공안담당 정치국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크렌츠는 “지도부가 원하는 일에 가담했을 뿐”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내 시대의 자식이다. 용기있는 사람도 있었고 용기가 적은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용기가 적었고 문제에 기회주의적으로 접근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는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는 동독역사를 정리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불행하게도 동독 역사에 있어서는 안될 일이 너무 많았으며 이에 대해 사죄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용기있게 장벽을 개방한 사람으로 독일 역사에 남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내비쳤다.

 지난 8월 베를린장벽 설치 29주년을 맞아 서독 정부는 베를린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동독인에게 발포 명령을 내려 20명 이상 사망케 한 사람들을 통일 후 재판에 회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9월중순에는 동독인 4백만명과 서독인 2백만명에 대한 동독 비밀경찰의 감시기록이 서독    정보부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독의 인권운동가들이 구 비밀경찰본부를 점령, 단식투쟁을 했다. 이들이 작년 가을의 민중봉기 때 섰었다는 도덕적 권의 덕분에 서류는 서독 정보부에 넘겨지지 않고 통일 후에도 동독의 가 주정부가 계속 관리하기로 결정되었다.

 동독의 최고 권력자들의 독재가 남긴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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