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고 막는 묘수
  • 공병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9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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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이란 무지 편리한 것이다. 너무나 엄청난 일을 많이 겪어온 까닭에 오늘을 사는 한국인은 웬만한 일에 대해서 놀라지도, 그렇다고 오래 기억하지도 않는다.

 흘러가는 한강물처럼 성수대교 사건도 몇 사람을 구속하고 약간의 소동을 피운 끝에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잊을 만할 때가 되면 또다시 대형 사고가 터질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것이다.

 달구지 몰던 시절에는 다리 하나 정도 무너져도 손실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자동차가 생활 속에 자리잡자 그 비용이 무척 커졌다. 고속 전철이나 항공기를 타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사가 될 때 대형 사고로 치를 비용은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를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현재와 같은 관행을 계속한다면 이같은 불행을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86년 독립기념관 화재 사건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독립기념관 화제사건 이후 부실 공사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전문가를 총동원하여 종합 대책을 마련한 적이 있다.

87년 2월, ‘건설공사 제도 개선 및 부실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보고서는, 부실 건설 문제에 관한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보다 바른 제도 만들기부터
 만약 이 보고서가 제시한 대로 제도가 개선되어 왔다면 지금쯤 많은 문제가 고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이 종합 대책도 전시성 행사로 끝났고, 우리는 오늘날 부실과 대형 사고라는 악순환을 계속 치러내고 있다.

 이웃 일본의 고속 열차인 신칸센이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지 30주년을 맞았다. 시속 2백70㎞로 달리는 고속 열차가 그동안 사고가 한번도 없었던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사람이 하기에 따라서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사람이 이루어낸 또 하나의 기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 시카고 교외에 있는 모토롤라사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들은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었다. 불량률을 백만개당 3,4개로 낮추는 운동이었다. 80년대 중반 이 운동을 시작할 때는 불량품이 백만개당 6천개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4개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한 것은 물론, 2000년에는 10억개 중2개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결국은 제도의 문제로 볼 수 밖에 없다. 기업이나 개인은 제도라는 환경에 적응해 나가게 마련이다.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행동이 결정된다.

 부실 공사를 할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는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면, 그리고 부실 공사를 해도 벌이 그다지 엄하지 않다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부실 공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윤과 생존을 목적으로 뛰는 기업들과 사람들에게 단순한 충고나 분위기를 잡는 정도로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게 할 수 없다. 대통령의 입을 빌린 몇마디 사과나 경고로, 그리고 몇 사람이 물러나는 일로 부실 사고를 방지할 수는 없다.

이익 집단 물리칠 추진력 필요
 바른 제도가 중요성을 가지게 된 것은 경제학계에서도 최근의 일이다. 93년 노스 교수는 제도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구명(究明)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제도는 기업이나 사람의 행동에 대해 신호등 구실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좋은 제도가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그 제도가 유인하는 쪽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제도를 개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제도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이익 집단과 관료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고려되고 있는 감리 시장 개방만 하더라도, 특정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때문에 제도 개선 작업이 진행된다면 이익 집단이 관료 집단을 매수하여 기존 제도를 유지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설 공사 과정에 얽힌 부정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지대(rent)라 불리는 뇌물이 공사 과정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뇌물을 없애는 쪽으로 제도가 개선된다면 힘을 가진(뇌물을 받아온) 집단이 제도 개선을 과연 원하겠는가.

 그러나 반드시 회의적이지만은 않다 .금융실명제나 공직자 재산등록제와 같은 제도 개선을 추진했던 용기와 추진력을 갖는다면 능히 건설제도 개선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번 정권이 초기에 보여줬던 담대함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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