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인권 등 가치의 미국화
  • 앙드레 퐁텐느 (르 몽드 고문)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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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정적 판단은 믿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한 세기 전에 독일의 위대한 사상가 니체가 자신의 저서《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던 문장을 알고 잇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에 의해 폐쇄됐던 수천개의 교회가 알바니아에서까지 다시 문을 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행할때마다 그를 만나려고 몰려드는 군중보다 더많은 인파를 모았다고 뽑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 이슬람교의 교세와 확장주의에 견줄 수 있는 인류의 세력은 없다.

 근자에도 위의 예에 못지 않은 또 한 예가 있다. 역시 단정적이고 잘못된 예언이었다. 1989년 가을, 일본 출신 미국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에나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을 만난 후 헤겔이 ‘세계의 정신’을 예고했던 것처럼 ‘역사의 종말’을 선언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몇 달 후 걸프만 위기를 넘기자 그에게는 반론이 쏟아졌다. 소연방의 와해와 붕괴에 따라 인류 역사의 새 장이 열리고 있음을 지금 이 시각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영어가 미래의 에스페란토
 다른 예를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인류가 반복해온 예언의 취약성은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성급히 공표하려는 사람들의 욕구에 제동을 걸기에 충분하다. 특히《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저서에서 카를 마르크스가 사용했던 의미, 한 사회 또는 한 국가가 그에 따라 표현하며 그에 따라 질서를 잡아가는 생각의 전체라는 의미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때 그렇다. 이렇게 볼 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단위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가 갖고 있는 필수적 특징의 하나로서 북미사회가 의존하고 있는 가치체계의 일반화를 들 수 있고, 들어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이미 업턴 싱클레어는 “영화 덕택으로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다. 즉 미국화되고 있다”라고 썼다. 세계인 모두가 진을 입고 핫도그를 먹고 코크를 마시며 랩뮤직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고 매일 저녁 텔레비전에서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시리즈에 몰입해 있는 오늘날, 그는 뭐라고 말할까 한 세기가 끝나는 이때에, 영어가 점차 미래 세기의 에스페란토가 돼가고 있는 이때에 미국의 가치라고도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은 모든 권력에게 강요되는 가치의 본보기로 등장했다. 지구상의 사실상의 두 개 지도기관인 유엔안전보장이사회와 선진 7개국에 대해서도 워싱턴은 어머어마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집단행복에 대한 미국식 해석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꿈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형태가 갖는 매력과 세력과시에 의해서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패배는 지구가 겪었던 모든 혁명 가운데 10월혁명(1917년)이 가장 야심적이었음이 틀림없기에 더욱더 엄청나보였다.

 과학이 모든 것에 해답을 주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던 시대에 살았던 19세기의 인간인 마르크스는 ‘확고한 역사의 비밀’을 공산주의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 덕택에 세계는 물리학 또는 수학 법칙만큼이나 정확한 법칙을 가질 수도 있었다. 이 세계의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근 75년 동안이나 이 환상에 매달려 있었다. 사라진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바로 이 환상이다.

강하고 집요한 종교와 같은 공산주의
 중국과 북한, 쿠바에 남아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우리의 눈을 속일 수 없을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서일 뿐이다. 그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이데올로기를 실천해왔으므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등소평 김일성 카스트로가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세 사람 모두가 어떤 방법을 상상은 해보았을 것이다. 중국은 남쪽지방을 외국자본과 대만을 포함한 해외거주 중국인들에게 개방함으로써, 북한은 놀랍게도 남한정부와 화해함으로써, 피델 카스트로는 지난 7월 멕시코 방문 도중 “우리는 모든 것이 될 수도 있었으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모든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상당부분’이었다. 강하고 집요한 종교와 같은 공산주의는 수십년 동안 거행된 종교의례를 통해 공산주의를 위해서는 살상도 자살도 할 수 있는 사람들 수백만명이나 동원했다. 이 국가의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는 아무도 그 도그마는 물론 오랜 기간 살상을 자행한 전능한 최고 ‘성직자’에 대항할 권리가 없었다.

 혁명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한 공산주의자들과 레닌·스탈린 체제가 전체주의의 극단적 형태라고 믿은 반공주의자들은 다같이 공산주의체제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취약성 때문에 세계전체로 확장되거나 또는 오랫동안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민족주의에 바탕한 선동적 민중주의
 이는 하나의 사회도 태어나면서부터 죽게돼 있는 인간의 운명과 공통점을 갖고 있음을 망각한 결과다. 공산주의가 인간본성에서 벗어난 개념에 기초했으며 커져버린 관료주의가 모든 개혁을 막아버렸음을 망각한 결과다. 경제와 기술분야에서 엄청나게 앞선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를 향해 군비와 우주산업등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강대국 경쟁을 계속하고 싶어한다면 쇠진해서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음을 망각한 결과이다. 또한 소련이 내부의 다른 민족이나 유럽 절반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유일한 세력으로서 세계 파수병(미국)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이 세력이 사라지면 헤게모니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은 결과이다.

 연방의 배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 파급은 하도 엄청나서 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기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주 무모한 사람만이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 물결은 다시 일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플라톤 이후 이의 구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사회주의적 이상의 기초인 평등에 대한 염원은 《자본론》의 저자나 그의 정신적 제자인 레닌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으므로 이 염원이 다른 형태로써 살아남지 않는다면 놀라운 일일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동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평등개념의 부활보다는 민족주의가 주요 구성요소가 되는 선동적 민중주의가 출현하고 있다. 이 선동적 민중주의가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던 제2차세계대전 직후 사람들은 그 이데올로기는 사라졌다고 성급하게 말했다. 현실적으로 이 민중주의는 금세기 주요현상의 하나로 남게 될 탁식민지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 전동적 대제국이 사라진 다음 바르샤바조약뿐 아니라 소연방자체가 분열한 것도 필연적이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89년부터 시작된 유럽 공산체제 붕괴 사태가 같은 해 2백주년을 맞은 프랑스혁명을 이끌어낸 사건을 반복하고 있음을 입증해보는 것은 멋진 일이다. 프랑스혁명이 남긴 자유·평등·박애라는 교훈은 분명 ‘정신’을 요약한 것이지만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진단을 필요로 한다. 첫째 자유와 평등은 잘 맞지 않는 것이었다. “형등과 횡포(독재군주제)는 은밀한 연관성이 있다”고 19세기 초 프랑스의 작가 샤토브리앙은 적은 바 있다. 둘째 자유개념 못지 않게 국가개념이 당시 프랑스인뿐 아니라 그 이웃 국민들을 불태웠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계급의 권리확대라는 유일한 방법을 통해 국가간의 반목을 없앨 수 있다던 공산주의가 붕괴했으므로, 그 폐허 위에 프랑스혁명이 똑같은 활기를 갖고 다시 피어나야 했다. 유고슬라비아 코가서스와 몰다비아를 피로 물들게 한 분쟁은 마르크스가 얼마나 착각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에 동시에 영항을 미치는 오늘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불행하게도 국적간의 충돌을 감소시키는 본질은 전혀 갖고 있지 못한 듯하다.

 세계가 이 지고한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데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도달할 방편만 연구하면 된다. 세계와 세계를 화해시켜 지속해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해줄 이데올로기를 세계에 찾아주는 방법만 강구하면 된다. 권리에 대한 모든 요구가 인류의 도덕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않고는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목표에 도달할 기회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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