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전문경영인보다 진했다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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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 김채겸 정계 진출…대그룹 ‘머슴’들 도중하차한 사연

 머슴은 머슴이다. 머슴 중에는 주인만큼이나 집안을 아끼는 머슴이 있다.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주인보다 몇배 더 열심히 땀흘리는 경우도 있다. 머슴의 역할이 점점 커지다보면 남들이 보기에 누가 주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주인은 주종관계를 확실히 해둘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때에 이르면 머슴은 신분의 벽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기에는 몸집이 너무 커졌다. 머슴은 “이제 정든 주인집을 떠나 나의 길을 가야 할 때가 됐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국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으로 손꼽히던 李明博 전 현대건설 회장과 金埰謙 쌍용그룹 총괄부회장의 정계진출 속사정을 재계의 소식통들은 위와 같은 ‘머슴론’으로 설명한다. “누가 누구를 버렸다”는 식의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기업풍토 속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차분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7월 이명박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주영 회장과 내가 오래 같이 있어서 굉장한 인간관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을 위해 만났기 때문에 일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 겁니다. 재벌이란 냉정한 겁니다.”

거의 ‘창업→성장→守成→퇴역’ 신세
 이 말을 할 당시 이명박씨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 〈야망의 세월〉을 통해 ‘머슴 이명박=현대의 신화=주인 정주영’이라는 등식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런때 이명박씨의 입에서 결별을 알리는 발언이 나온 것은 뜻밖이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요즘 관계를 예고하는 첫마디였다. 현대그룹쪽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왜곡시키려 한다며 《시사저널》에 항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로 증명됐다. 이명박씨와 정주영씨의 정치행로는 달랐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씨가 국민당에 참여하지 않은 데 대해 의아해 했다. 한동안 언론도‘정주영=이명박’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이명박씨의 신당참여를 점쳤다.

 재계 일각에서는 80년대 초부터 정주영씨와 이명박씨의 틈이 벌어졌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인천제철 경영권 요구를 둘러싼 불화설이 파다하다. 이 불화설의 배경은 이렇다. 78년 인천제철을 인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명박씨는 81년 8월 그를 견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천제철 사장직을 물러났다. 다음해 4월 인천제철 사장으로 있던 정주영씨의 큰아들 夢弼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정주영씨는 핏줄을 챙기기 시작했으며 친자식처럼 여기던 이명박 회장과는 거리를 두었다는 것이다.

 정주영씨가 지난해 국세청의 세금추징에 불복하겠다는 폭탄선언을 내놓을 때나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했을 때 이명박씨가 적극 반대한 사실도 두 사람 사이의 멀어진 관계를 읽게 해준다. 가족이라면 또 모르되 측근의 입장에서는 총수의 결심에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물러날 때가 됐다고 판단한 이명박씨가 물러나는 대신 인천제철을 떼어달라고 요구했으나 정주영씨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 ‘인천제철 경영권 요구설’의 골자이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재계의 한 소식통은 “이명박씨는 머슴이다. 머슴은 주인이 헤아려주기를 기대하는 입장이지 자기가 직접 얼마를 떼어주시오 하고 요구할 입장이 못된다. 이명박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현재 이명박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삼가고 있다. 이명박씨의 한 측근은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하고 있다”면서 “특히 정주영씨와의 관계에 대해 이명박씨로서는 언급하기가 곤란하다”고 입을 닫았다. 그는 27년간 현대그룹과 운명을 같이해온 두 사람의 관계를 상식적인 수준에서 추측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이명박씨의 입단속은 비록 정주영씨와 갈라서기는 했지만 ‘협상할 것이 남아 있는 것 아니냐’하는 관측을 낳고 있다.

회사 규모 커지면 오히려 설 자리 잃어
 김채겸 쌍용그룹 총괄부회장의 정계진출도 전문경영인의 입지축소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이명박씨의 경우와 같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아직 현직을 떠나지 않았으며 관계 정리도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이명박씨의 경우 현재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김 부회장은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부지런히 기반을 다지고 있다.

 쌍용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으로서의 한계를 느낀 김채겸 부회장이 김석원 회장의 경영영역을 넓혀주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심하고 평소 뜻을 두었던 정치의 길을 택한 것으로 분석한다. 89년 이후 쌍용의 김석원 회장은 고급 스포츠카 메이커인 팬더사를 인수하고 벤츠와 상용차 계약을 맺는 등 자동차 사업에 큰 의욕을 보여왔다. 김채겸 부회장을 비롯한 일부 사장단은 자동차 사업은 투자규모가 커서 위험이 크다며 이 계획에 반대했다. 반대의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높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회장의 뜻은 관철되었다. 김석원 회장은 김 부회장의 공로를 봐서 당시의 불편함을 털고 1~2년 더 회사를 돌보아달라고 부탁했으나 김 부회장으로선 한계를 느끼던 차에 민자당의 출마제의가 들어와 결심을 굳혔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의 측근도 이같은 기류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등 관계에 있다가 69년 쌍용양회에 입사한 김 부회장은 81년 쌍용양회 사장으로 승진했고 90년에는 쌍용그룹 부회장이 됐다. 쌍용그룹 내에서는 지난 23년간 김채겸 부회장이 회사에 기여한 업적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75년 김석원 회장체제가 출범한 이후 80년대를 거치면서 회사 안팎의 어려운 일을 도맡다시피해 그룹을 안정시킨 것은 그의 가장 큰 공로로 꼽힌다.

 김채겸 부회장의 경우도 이명박씨와 마찬가지로 전문경영인이라는 머슴의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덩치가 너무 커지면서 오히려 설자리가 좁아졌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 전문경영인의 역할은 매우 크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경영업무의 양이 폭증하고 질적인 비약도 요구되는데 창업주나 2세가 판단력과 전문지식 등 경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를 빠른 시일에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안정되면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이 머슴론자들의 견해다.

 70년대에 한국 3대그룹 중 한 그룹사의 전문경영인으로 이름을 드높였던 ㅂ씨는 계열사의 최고지위에 올라 자기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중 갑자기 회의에 빠졌다. 그는 그 무렵 한 친지에게 “갈수록 의사결정에 제동이 걸리고, 피붙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도 전문경영인은 책임추궁을 피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한국의 전문경영인에겐 권한은 적고 책임은 무거울 뿐이다.

 전문경영인과 기업 소유주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도 존재한다. 전문경영인은 회사를 내손으로 키웠다는 자부심 속에서 산다. 그러나 소유주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의 인식 속에는 ‘내가 있기에 그 그늘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클 수 있지 않았느냐’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인식차이가 표면화될 경우 전문경영인의 존재 의의는 송두리째 부정될 수 있다.

전문가에게 권한 주어야 기업 발전
 이명박씨와 김채겸 부회장은 그래도 전문경영인으로서 성공한 편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지난 87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범양상선 朴健碩 회장과 韓相淵 사장의 파국에 비할 때 더욱 그렇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전문경영인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고 그동안 쌓은 경륜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기업 풍토가 조성되려면 세대교체가 더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소유주 가운데서도 경영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경영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전문경영인을 믿고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업풍토를 볼 때 아직은 주인을 평가할 머슴이 존재하기 어려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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