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내키지 않는 선택
  • 표완수 국제부장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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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웬사냐 마조비에츠키냐” 대통령 자리 놓고 맞붙은 자유노조 ‘옛 동지’

마조비에츠키냐 바웬사냐. 폴란드 국민은 고민에 빠져 있다. 두 사람 다 버리기 아깝지만 대통령 자리는 하나뿐이다. 타데우스 마조비에츠키(63) 현 총리와 지금도 자유노조를 이끌고 있는 레흐 바웬사(47) 중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폴란드의 앞날이 비관스럽다. ‘바웬사 대통령’도 생각할 수 없지만 그의 낙선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상원 부의장 쿠라토프스카가 한탄한 것에서 폴란드인들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11월25일 폴란드에서는 직접·보통선거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마조비에츠키와 바웬사 외에도 농민당의 로만 바토쉬체, 사회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꾼 구 공사당의 발도르지미에르 치모세비치 등 모두 6명의 후보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다. 마조비에츠키 총리와 자유노조의 대명사 바웬사가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자유노조의 지원 아래 작년 7월 임기 6년의 대통령직에 올랐던 보이체흐 야루젤스키를 도중 하차시키고 대통령선거를 앞당겨 실시키로 한 것은 폴란드 하원이 지난 9월현 대통령의 임기 단축 및 금년내 선거실시를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데 따른 것이다. 폴란드에서는 지난 4월초부터 바웬사의 대통령 출마설이 나돌았으며 그 이후 야루젤스키는 “임기를 완전히 채울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바웬사 대권야망에 후보단일화 물거품

 지난 4월 바웬사의 대통령후보 출마설이 나돌 즈음 바웬사의 대 야루젤스키 비난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폴란드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산당 시절의 잔재를 해소해야 하는데도 야루젤스키 대통령은 그 문제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바웬사의 주장이었다. 마조비에츠키 정부는 출범시 개혁일정이 확실치 않은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다수의 공산당출신들을 기용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바웬사의 대권도전 의사가 밝혀지면서 당황한 것은 야루젤스키가 아니라 마조비에츠키 총리측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웬사의 공격대상은 형식적으로는 야루젤스키 대통령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마조비에츠키 정부의 완만한 개혁정책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웬사는 급진적 개혁추진과 구 공산세력의 완전한 제거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폴란드가 맞고 있는 경제적 난국이 마조비에츠키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폴란드의 국민생활 수준은 공산당 출신 레스체크 발체로비치 재무장관이 지난 1월 시장 경제 도입이라는 원칙 아래 정부 보조금 중단, 가격 자유화 및 임금동결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여행객들로 붐비던 국영항공사의 접수대는 1월 이후 파리를 날리고 있으며 약 10만명의 자가용차 소유자들이 번호판을 반납했다. 연료비와 보험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내 교통난도 사라졌다. 폴란드인의 생활수준이 적어도 20%는 하락했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같은 생활수준의 악화는 특히 노동자들의 불만을 불러 지난 봄부터 마조비에츠키 정부에 대한 비난이 구체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불만을 집약하여 증폭시킨 것이 자유노조의 노동자그룹이다. 이같은 양상은 자유노조 분열의 배경이 된다. 물론 그이면에는 바웬사의 대권도저이라는 야망이 숨겨져 있지만.

 결국 공산독재에 대항해 함께 싸웠던 자유노조 연합세력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마조비에츠키 지지파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바웬사 지지파로 갈라서게 됐다. 바웬사 지지파는 5월에 ‘중앙동맹’을 결성, 간접적으로 일찌감치 선거전에 들어갔으며 마조비에츠키 지지자들은 7월 ‘민주행동을 위한 시민운동’을 결성, 정당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자유노조의 분열을 피하고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제3의 인물을 내세우자”는 마조비에츠키의 제의를 바웬사는 거절했던 것이다. 그 자신이 대통령을 할테니 마조비에츠키는 총리로 계속 남아달라는 게 바웬사의 답변이었다.

 폴란드인들 중 많은 사람이 바웬사의 이같은 독선적 태도를 못마땅해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행사하고 있는 그에 대해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인물이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자유노조 기관지에 지난 5월초 게재된 한여론조사 결과는 바웬사가 마조비에츠키는 물론 게레멕, 심지어 야루젤스키보다도 차기 대통령감으로 적합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는 사람들이 그의 야망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됐다. 바웬사는 유권자들에게 보낸 첫 텔레비전 연설에서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으나 운명이 그렇게 밀고 있다”고 말한 바 있으며 미국의 한 계간잡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군중의 박수 쥐어짜내는 바웬사


 바웬사와 마조비에츠키. ‘한 뿌리의 두 가지’로 비유되기도 하는 두사람은 서로 성격이 다른 만큼 선거운동 양상도 매우 대조적이다. 바웬사가 각종 집회를 열어 정열적으로 유세를 벌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마조비에츠키는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바웬사가 군중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쥐어짜내는 데 반해 마조비에츠키는 “장례식에서 의무적으로 애도를 표하는 문상객”처럼 선거유세를 ‘안할 수 없어서 하는’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조비에츠키와 바웬사가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폴란드 정치상황의 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작년 8월 바웬사가 야루젤스키 대통령에게 비공산연립정부의 총리후보로 마조비에츠키 노조기관지 편집장, 의회내 지도자 게레멕(57), 법률담당자 야체크 쿠론(55) 등 3인을 추천했을 땜나 해도 그들은 모두 동지였다.

 여론조사는 바웬사와 마조비에츠키가 인기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실시된 국영 텔레비전 방송의 조사 결과 바웬사가 33대 26으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그 일주일 전 정부의 여론조사기관이 밝힌 인기도는 43 대 33으로 마조비에츠키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진개혁파와 온건개혁파의 싸움이 소련에서처럼 폴란드에서도 한창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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