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교육마케팅’에 유학생 골탕
  • 시드니ㆍ김삼오 통신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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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충격’으로 학위 취득 어려워…귀국 후 취업 ‘미국 학위보다 훨씬 불리


89년 봄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는 호주유학전이 열렸다. 호텔 한층 넓은 로비에 마련된 전시장 각방 앞에는 호주의 주요 대학과 영어학교 로고가 나붙고, 그 안에서는 호주인과 한국인 직원들이 화려한 안내책자를 나눠주며 상담에 응했다. 신문광고를 보고 쇄도한 고객 가운데 상당수는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이었다. 매년 한번씩 열리는 이 행사를 주축으로 시작된 호주 정부와 대학의 유학생 유치전략은 주효해서 89년 호주대사관이 접수한 호주 유학 신청 비자 수는 갑자기 늘어 2천명에 달했고, 그후 3천명으로 늘어났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호주로 간 한국인 유학생 수는 유학자유화 조처 이전인 87년 2백19명에서 90년 1천4백67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영어 사용국 지역으로서는 미국 다음이고 전세계적으로는 일본 프랑스 독일 대만에 이어 여섯 번째다.

 이와 같은 호주유학 붐은 국내에서 갖가지 오해를 불렀다. 그 첫째가 유학을 대학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의 도피처로 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대체적으로 틀린 것 같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호주유학이 도피가 아닌 증거는, 한국에서 학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호주에 오면 쉽게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필자가 얼마 전까지 호주 국립한국학연구소(National Korean Studies Center)에 있으면서 교육 중심지인 멜버른과 시드니 지역 한국유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원하는 학위과정에 들어가지 못했고 대학 과정에 들어간 사람 가운데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수준을 낮춰 대학 준비과정 또는 비정규대학으로 옮겨간 경우가 많았다.

 교육부 소속 시드니주재 한국교육원(원장 이부응)이 각 대학 유학생회장을 통해 추정한 정규 유학생 수는 약 1천5백명이다. 그런데 호주 문교성 통계에 따르면 91학년도 각 대학 정규과정에 등록한 한국 유학생 수는 5백33명이다. 이 숫자는 문교성이 전국 35개 대학 학무과로부터 직접 받아 취합한 것이다. 이렇듯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일부 자료수집상 착오 말고는 앞에 언급한 사정 때문일 것이다.

 호주가 유학을 외화획득 산업으로 육성하고 유학을 극성스럽게 판촉한다고 해서 입학 조건을 쉽게 하거나 자격 미달자를 졸업시키는 것은 아니다. 멜버른 스윈번대학교 경영대학의 한국비즈니스과장인 바바라 에반스 교수는 “호주 문교성이나 각 대학 행정담당자는 유학생 유치에 신경을 쓰지만, 교수들은 외국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나 요청을 받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기초과정’서 걸리는 유학생 많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호주가 벌이는 교육마케팅이 갖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각 대학은 최근 서둘러 국제학생과를 설치해 교육전에도 참가하고, 한국의 사설유학원과 제휴하여 세미나를 연다. 이들의 마케팅전략은 주로 비디오와 화려한 팜플렛을 이용해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캠퍼스, 안정된 사회분위기 등을 보여주는 것 위주이다. 정작 유학생에게 중요한 공부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따로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는다. 유학은 관광이 아닌데도 말이다.

 한 유학담당자는 지난 4년 동안 호주에 온 많은 유학생을 “불빛을 보고 쫓아온 하루살이”에 비유한다. 학생들이 현지에 도착하면 한국에서 기대했던 낭만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강의를 하루 몇시간씩 들어야 하고 수시로 써내야 하는 논문, 세미나 발표 등 압력 속에 지내다보면 아름다운 경치고 뭐고 다 소용이 없게 된다. 따라서 실망이 따른다. 호주는 영어를 사용하는 앵글로 색슨 백인문화권이다. 이는 미국 캐나나 영국과 같다. 대학교육제도는 미국보다 영국에 가까우며 교수들은 미국보다 보수적이고 원칙주의자들이어서 유학생이 적당히 점수를 받는 일은 드물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학생을 많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호주 대학들도 여러가지 기발한 방안을 도입했다. 그 한가지가 대학 정규과정 입학을 조건으로 일정기간 기초과정(foundation course) 이라는 준비과정을 이수토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정의 점수를 받으면 정규대학 입학이 가능한데, 이것이 1년 또는 그 이상 걸릴 수 있다. 또 호주판 토플이라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영어시험을 호주영어학교를 마친 후 치러 일정한 점수를 받아야 각 과정 입학을 허가한다. 호주에 있는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아직 그런 공부에 머무르고 있다.

 호주 내 한국 유학생들의 두번째 불평은 귀국 후 취업전망과 관련된 것이다. 호주에서 받은 학위가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 일변도인 한국 사람들은 미국 대학이면 모두 다 좋다는 생각을 갖는데 부당하다”라고 이곳 유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국은 좋은 대학, 못한 대학간 격차가 심하지만 호주의 대학은 한 학교를 제외하면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으로 교육기준과 시설이 모두 같다. 학위 취득이 미국에서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쉽지 않다. 그런데 한국에 가면 미국 학위 소지자를 우대한다는 것이 이들의 걱정이고 불만 요인이다.

 실험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대부분 호주의 대학시설이 한국의 대학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유학생들은 주장한다. 스윈번대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곧 받을 예정이며 내년부터 호주 정부자금을 받아 콜로이드 화학분야를 연구하게 될 김승록씨에 따르면, 호주는 이 분야에서만 세계적 권위자를 여러 사람 배출했다. “그런데도 호주의 학위는 한국 것과 같다느니, 못하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기가 막힌다”고 말한다. 또 같은 문화권인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안에서는 이론과 기술의 전환이 빨라 학문수준의 차이는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영어 사용 국가에서 아시아 유학생들이 공부하는데 겪는 어려움은 언어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구체적으로 어디까지가 언어이고 어디까지가 지식인가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유학을 오면 고생한다. 가장 높은 토플 점수를 받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유학생은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하는가. 현지에서 자란 2세가 아닌 경우 한국사람이 최고 잘할 수 있는 영어의 한계는 공식언어이다. 문법에 맞고 또박또박 말하는 영어이다. 문제는 대학 밖에서는 물론 대학 안에서도 외국인을 위해서 그런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영어실력이 약하다고 한다.

 그들에게 영어를 쉽게 천천히 말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영ㆍ미인들이 한국에 유학하여 영어로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아가는 것을 보면 언어에 있어서 국제관계가 얼마나 불평등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외국에서 우리말로 공부하고자 유학을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유학생들이 영어의 강박관념 속에서 고생하거나 자기의 비위에 안맞으면 “이 학생은 영어가 약해 가르칠 수 없다”와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곳 식자층 한국인의 생각이다.

 

호주인은 무로, 유학생엔 수업료 받아

 호주국립대 바라드 교수에 따르면 아시아 학생들의 문제는 언어 못지않게 공부방식과 요령에 있다. 이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서양과 동양은 지식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그는 아시아 지역의 교육 특징을 재생적이라고 본다. 학생들은 지식을 암기하며, 실력의 평가는 전달된 지식을 얼마나 아는가를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영ㆍ미식 교육은 전달보다는 분석, 이에 더하여 해석하고 비판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는 공부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공부 충격’(study shock)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지식에 대한 접근방법은 논문을 쓸 때 나타난다. 아시아 학생들은 논문에는 아는 사실을 백과사전식으로 잘 정리한다 .그런 논문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서부 시드니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홍성묵 박사는 “아시아 학생들은 사실을 많이 알고 이를 정리하는 데는 우수하다. 그러나 논평에서 호주 학생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자기 생각이 없는 논문에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호주는 대학교육이 원칙적으로 무료이다. 그러나 외국 유학생에게는 전액수업료제도를 몇년 전부터 도입하여 산업화했다. 그렇지만 유학시장에 관한 한 아직은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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